나의 소년기 part 1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by navygrey

사진출처: 픽사베이


거의 기억이 없다시피 한 나의 유년기를 뒤로 하고, 이후 학생의 신분으로 살았던 10대의 (청)소년기는 비교적 꽤나 여러 상황들과 사람들을 겪었던 바람에 풀어낼 수 있는 이야깃거리가 한가득이다. 하지만, 앞서 돌아보고자 했던 주요 상황들 중심으로 기억을 되짚어 보려 한다.


먼저,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당시엔 국민학교)는 하나가 아닌 둘이다. 저학년(3학년) 말미에 이사를 감과 동시에 전학을 가게 되었다. '서울'에서 '지방'으로가 아닌 '서울'에서 '서울'로의 이동이었다. 그것도 한강의 '남쪽'에서 '북쪽'으로. 그중 나의 저학년 시절은 무척이나 단순하게 묘사할 수 있다. 너무 오래전이었던 데다 사진이 많지 않기도 하거니와 스스로 불필요한 기억을 지워버린 탓인지 어린 마음에 큰 동요를 주었던 상황 몇몇만으로도 나의 7세에서 10세에 이르기까지의 풍경은 순식간에 그려낼 수 있는 듯하다.


# 1학년

빠른 생일이라 또래보다 학교를 1년 일찍 들어가는 바람에 다소 적응이 쉽지 않았다. 선생님 말씀을 받아 적고 기억해서 집에 돌아와 전달하는 것에도 애를 먹었고, 친구들보다 체구도 작았을 뿐만 아니라 말이 서툴고 하다 보니 어려서부터 말수도 많지 않았다. 게다가 남들과 조금은 다른 외모(사진을 보면 엄마의 취향이겠지만 셔츠나 카디건, 면바지 차림의 착장 스타일이었고, 남자아이 치고는 많이 하얀 피부, 머리는 왜 꼬부라지게 파마를 시켜놓았는지 모르겠지만 핑클파마된 머리에 쌍꺼풀 눈매까지...) 때문에 당시(1980년대다) 아이들이 조금 낯선 외모를 두고 '미국에서 온 아이'라는 식으로 반은 놀림, 반은 경계의 대상으로 나를 대했던 것 같다. 정말 혼혈아같이 이국적으로 생긴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이해할 수 없는 놀림이었지만, 꼬마였던 나는 학교라는 세상이 일종의 '벽'같았고, 학교 가는 것이 두렵고 싫었다. 더욱이 난 아파트 단지 내 놀이터에서 흙과 모래를 가지고 노는 것도 싫어했던 아이였으니 그 친구들 입장에선 여러모로 이질감을 느꼈었을 테지만.


# 2학년

유치하디 유치한 1학년 때와는 달리 2학년 올라가서부터는 전처럼 '미국아이'라는 식의 놀림 등은 없었다. 1학년 때만큼 학교에 가기 싫거나 생활에 적응하는 것이 아주 어렵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만... 태어나 처음 창피함이 뭔지를 경험했던 나의 2학년... 공식적인 반장을 선출하는 학년이 아니었음에도 담임선생님의 재량으로 자체 반장을 뽑겠다고 했던 그 사건이 바로 내게 충격과 상처를 주었으니... 반장이 뭔지도 몰랐을 텐데 반에서 가장 인기 있는 친구가 된다는 상징적 의미로 이해를 시켜주던 선생님, 후보로 나가보라는 제안에 별 고민 없이 '네' 한마디가 불러온 처참한 결과 때문이다. 1학년 때보다는 나았던 2학년이었지만 여전히 소통과 적응에 친구들보다는 어색함과 무리가 있었던 것은 생각도 못하고 나섰다. 그 결과 투표 득표 수가 1표였던 것. 가장 활발하고 친구들과 잘 노는 친구가 되는 거였는데 난 거꾸로 반장이 되면 가장 인기가 많아지는 것으로 쯤 착각했었던 것 같다. 될 거라는 기대는 안 했지만 1표라는 게 너무 창피하고 충격적이었다. 이때부터였나 보다. 내가 성격이나 외모, 행동 등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던 것이.


# 3학년

1, 2학년과는 완전히 다른 나의 3학년 시절. 이젠 제법 몸도 마음도 성장을 해서였는지 외적으로도 키가 평균만치 커졌고, 고치거나 변하려고 할 것도 없이 자연스레 친구들과 어울림이 잦아지고 익숙해지더니 급기야 정식으로 반장에 선출되었다. 2학년 때 1표를 받아 무너져있던 내가 3학년 되어서는 반 전체 아이들로부터 압도적인 추천과 지를 받아 반장이 되었던 것. 어리고 부족해서 학교에 적응도 잘못하고 친구들과 어울림에 있어 어려움이 있던 아기 티를 벗자마자 내가 아닌 주변이 달라지는 경험이었다. 먼저 내게 다가와 친해지자던 아이들이 생겨나고 서툴러도 적극적으로 대화를 주고받는 등의 변화만 있었을 뿐이데 큰 노력을 기울이지도 않았던 것에 비해 꽤나 큰 보상이었다. 무너져있던 자존감을 단 1년 만에 만회 수준이 아니라 넘치게 채워질 수 있었으니... 하지만 2학기가 끝나갈 무렵 이사를 가고 전학을 가야 한다는 날벼락같았던 시간이 찾아왔다. 그마저도 학기 중간이 아니었던 것이 불행 중 다행이었다.


(이어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