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년기 part 2

『어린 왕자』(Le Petit Prince)

by navygrey

# 4학년

이사를 간다는 이벤트보다 전학을 가야 한다는 것에 대해 아쉬움과 부담이 훨씬 컸던 3학년말 겨울방학.

교실에서 친구들과의 마지막 작별 인사가 있었던 날, 당시 담임 선생님(한*숙)께서는 내게 책 한 권을 선물해 주셨다. 책의 제목은 '어린 왕자'. 청소년 필수 권장도서라 주셨던 것으로 짐작되지만, 책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나는 마치 내가 사전적 의미로서의 '어린 왕자'라도 된냥 나를 예뻐해 주시는 의미로 이 책을 선물해 주신 거란 착각(망상에 가까운)을 했었다. 무엇보다 어린 내게 있어 책의 제목과 그림이 매우 인상적이었던 것은 분명했다. 집에 돌아와 그림책, 만화책 정도로 여기며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난 이 책을 접한 이전과 이후를 내 소년기의 전반부와 후반부를 나누게 된 계기로 삼게 되었다. 물론 시기적으로 초등학교 저학년과 고학년의 경계였기도 했다. 부모님과 선생님, 친구들만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알았던 내가 내 안의 세계를 마주하게 되고 더불어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세상이 너무도 다양함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이사와 전학을 겪었음에도 새로 등교하게 된 학교에서의 생활 적응 등에 있어 과정이나 결과만 보자면 대체로 무난했다. 4학년 첫 등교 직전에는 이전학교 친구들 10여 명이 새로 이사 온 집으로 놀러 와 주기도 했었으니 전학이 마냥 슬프지만도 않았다. '헤어짐'이라는 것은 아쉽긴 해도 힘들고 아픈 일은 아니라는 것, 오히려 '잘 헤어짐'이 보다 중요한 것을 알게 해 준 시절친구들이 새삼 고마운 대목이다. 이렇게 3학년 때 올라간 자존감 덕에 새로운 곳에서도 나름 빠르게 적응해 갔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학교에서 전학을 가자마자 부반장이 되었을 만큼. 그리고 또 한 번 중요한 인연이었던 담임 선생님을 만났다. 성함이 아버지와 비슷해서 먼 친척이신가 싶었던 4학년 담임 선생님. 적응에 어려움이 없도록 아낌없는 배려는 물론 참 많이 나를 예뻐해주셨다. 지금도 생각하면 감사하고 또 감사한 분. 돌이켜보니 그 마음에 대한 보답을 이제껏 못하고 사는 것 같아 죄송할 따름이다. 그리고, 내게 맞춤형 조언과 교육이 된 메시지 하나를 진하게 남겨주셨다. 어느 날 방과 후 따로 개인 상담차례가 되었던 때로 기억하는데, 상담 과정에서 다름 아닌 개인 숙제가 주어졌다. "우리 **는 참 몸가짐도 바르고 옷도 단정하게 입어서 영국 꼬마신사 같아. 근데 말이야, 예쁜 얼굴이 더 빛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 선생님이 숙제 하나 내주려고 해. 매일 집에서 거울보고 10번 이상 웃는 연습하기. 어때? 어렵지 않지? 우리 **, 할 수 있지?"


만 10세가 되지도 않았던 나는 숙제의 의미와 의도를 몰랐다. 다만 숙제라 생각하고 이행만 했을 뿐. 정말로 나를 위해 해주신 조언이자 당부의 메시지였음을... 그땐 왜 몰랐을까? 그나마 열심히 한 숙제의 효과로 웃을 때만큼은 어색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고, 미소 자체도 입꼬리가 위로 말려 올라가는 예쁜 미소를 가지게 되었지만... 그 속에서 어떠한 배움이 없이 숙제로만 끝났던 나의 웃는 연습은 5학년 올라가면서 더는 하지 않게 되었다. 항상 웃는 얼굴이길 바랐던 숙제는 4학년의 숙제가 아닌 인생의 숙제였음을 몰랐던거다. 해서인지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웃는 얼굴보다는 무표정의 냉소적인 얼굴로 평균보다도 미소에 인색한 삶을 살고있지는 않나 싶다. 인생이 훨씬 쉽고도 행복하게 펼쳐질 수 있는 맞춤형 치트키와도 같았던 숙제였음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


'웃으면 복이 온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이를 온몸으로 거부하며 산 꼴이다.


(이어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