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심, 그게 뭐라고....
#5학년, 그리고 6학년
앞서 3학년과 4학년 때는 담임 선생님이 고마운 인연이었다면, 5학년과 6학년 때의 선생님과는 이렇다 할 따뜻한 기억보다는 부정적 감정을 맺고 나눈 관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춘기가 그때 발발해서였는지 모르겠는데, 친구들과의 관계는 더없이 즐거웠고 학업 성적도 좋았었는데 말이다.
아마도 스스로에게 불리한 기억은 뇌에서 자체 소거를 해버린 탓인지, 당시 내가 무언가 잘못한 게 있었을 텐데 그게 뭐였는지는 도통 기억나질 않는다. 수업시간에 떠들어서였으려나? 학생답지 않았던 비행을 저지른 것은 분명 아니었고 교칙을 어겼던 것은 분명 아니었을 건데 여하튼 선생님으로부터 소위 싫은 소리(잔소리나 꾸중과 같은 기분을 나쁘게 했던)를 들었던 것(뭐라고 했는지도 모름). 다만, 또렷하게 요새 유행하는 쇼츠 콘텐츠처럼 동영상처럼 뇌리에 남아있는 건 선생님을 향한 나의 반항이었다.
우선, 5학년때 일이다. 요즘처럼 급식 시스템이 없었던 90년대 초에는 할애된 점심시간에 각자 집에서 점심을 챙겨 와 교실에서 친구들과 함께 먹던 시절. 위에 언급했던 뭐라 싫은 소리를 들었던 어느 날이었다. 담임 선생님을 상대로 그 점심시간에 나는 선생님 앞에 앉아 보란 듯이 점심을 먹지 않는 것으로 나의 기분 나쁨을 있는 그대로 표현했다. 억울함의 표시이자, 내가 지금 이렇게 심적으로 괴롭다는 것을 알아달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아니, 더 나아가 '내가 지금 기분이 나빠 식사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에요. 선생님도 이런 내 모습 똑똑히 봐두세요. 그리고 선생님도 나만큼 마음 불편해야 해요.'라고 시위라도 한 셈이다. 그렇게 그날 하교 후 며칠 뒤였을까, 엄마로부터 나는 이러한 얘기를 들었다. 선생님이 따로 엄마와의 상담을 유선으로 한 것인지 대면으로 한 것인지까지는 모르겠다. 엄마 가라사대 "선생님이 그러시더구나, 네가 감정에 지나치게 솔직한 것 같다고. ㅇㅇ야, 점심시간에 밥 안 먹고 그랬다며? 기분이 안 좋다고 그러는 건 너만 손해 같지 않니? 선생님은 우리 oo가 자신을 너무 사랑하는 아이라는데, 엄마가 보기엔 오히려 자신을 제대로 사랑할 줄 모르는 것 같아."
이어서 6학년 때. 아마도 5학년 때와 비슷한 상황이었지 않았을까. 어떠한 계기로 선생님과 상담을 했던 적이 있다. (그러고 보니 좋건 나쁘건 선생님과의 따로 개별 면담하는 것 위주로만 기억을 하는...) 그래도 5학년 대에 비해 기억이 조금 구체적인 것이... 학급 반장이었던 나에게 선생님은 공개적으로 아이들 관리에 따른 책임을 물으셨다. 당시 또 속으로 '내 잘못 아닌데 왜 나를 혼내? 기분 나빠!'의 감정이었다. 대답도 한채 만채 어김없이 표정 구겨가며 당일 체육시간에(담임 선생님이 심지어 체육과목 선생님) 발야구 플레이 중 기분이 좋지 않음을 또 한 번 온몸으로 표현했었다. 그날 방과 후 하교 전에 결국 따로 남아 가지게 된 담임 선생님과의 면담시간. 선생님 왈 "ㅇㅇ야, 아까 체육시간 그 행동은 뭐였지? 네가 잘못해서 너를 혼낸 것이 아니라 반장으로서 친구들을 위해 역할에 더 책임감을 느끼고 잘해줬으면 해서 주의를 준 건데 그게 기분이 나빴던 걸까? 근데 있잖아, 그렇다고 수업시간 내내 선생님과 친구들 마음 불편하게 한건 또 다른 문제 같은데..."
10대 그것도 속된 말로 내가 초딩일 때 겪었던 일화들을 이렇게 놓고 보니... 감정을 통제하지 못해 온통 감정으로 얼룩져있었다. 본디 타고난 게 위아래가 없고 눈치를 안 보는 성향이 짙은 편이라... 그저 내 감정만 소중했던 것 같다. 그렇다고 생글생글 잘 웃기라도 했으면 없었을 문제이기도 했었을...(이제와 생각해 보니)
마흔을 훌쩍 넘긴 나이인 지금의 나. 10대 때의 나와 별반 다르지 않다. 여전히 위아래 없고 남의 눈치 안 보는 편이다. 특히나 감정 중에서도 불쾌함을 선천적으로 참지 못하는 것 같다. 방어논리는 하나.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내가 좋아하고 나를 좋아하는 사람에겐 한없이 잘하려고 들지만, 그렇지 않은 관계는 전부 적이 되고 만다. 정의감이 뛰어나 불의를 보면 못 참는 것과는 또 다르다. 그저 '내가 보고 듣고 느끼기에' 객관적이지 못하고 상식에 어긋나는 것들에 대해서는 그야말로 분노가 터져 나온다. 그러나 그게 어디 나만 조심하고 잘한다고 될 일인가. 교통사고처럼 내가 차선과 신호, 속도를 준수한다 할지라도 사고는 언제 어디에서 어떤 변수로 인해 일어날지 모르지 않나. 서로 다른 사람끼리 어우러져 살아가는 세상, 더욱이 살아 움직이고 저마다 다른 기준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에 의해 비롯되는 감정과 관계는 늘 변화무쌍한 것이거늘. 이제는 그게 세상의 이치임을 안다.
받아들이고 이제는 인정해야 한다고 수도 없이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어본다. 남은 나와 다르다. 남은 나와 같을 수 없다. 심지어 가족조차도.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피어나는 감정을 통제하기 어렵고 내 주문이 안 들어 먹힌다면 차라리 문제해결에 집중하는 게 맞다는 것도 잘 안다.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고, 문제를 더 키운다는 것. 오히려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해결방법 중의 하나가 될 수도 있음을 이제는 배워서 알고도 남을 나이가 지났다. 진짜 나를 위한다면 나에게 있어 무엇이 득이고 실일지 가려내는데 집중하자.
자존심이 밥 먹여주지 않는다.
그리고 지나친 감정을 경계하기 위해서는 인간에 대한 기대나 이해를 바라지 않는 것으로도 족하다.
하나만 명심하면 된다.
.
.
.
타인은 지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