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인관계도 타고난 성격대로
#중학교
때는 90년대 초반. 교복은 따로 없던 남녀공학의 공립학교, 남녀공학이었지만 남자반과 여자반을 따로 구분지
어 운영되었던 학교였다. 인근 타 초등학교 아이들도 섞이다 보니 모르는 얼굴들도 많았던 데다 중학교라는 공간 자체가 주는 낯섦이 묘하게 설렘을 주기도 했던 것 같다. 새롭게 만나게 된 친구들, 초등학교 때부터 가까웠던 사이가 멀어지기도 하고, 더 가까워지기도 하고... 다만, 학창 시절의 나는 친구에 대해 그다지 큰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중요하지 않았다는 게 아니라 중요하지만 아주 중요하지는 않았다랄까... 그럴만한 계기가 있었다. 중1에서 중2 중반까지 꽤나 가까웠던 친구 하나가 있었는데, 이 친구와는 2학년에서 3학년 넘어가는 시기에 (아마도 사춘기의 절정이었던 시기였던지라...) 서로 색깔이 완전히 다른 그룹과 어울리게 되면서 멀어졌었다. 딱히 누가 먼저 배신한 것도 아니고, 그저 자연스레 서로의 스타일과 기호에 따라 어울리는 친구가 달라지면서 보다 가까워지지 못하게 된 상황일 뿐이었을 텐데... 어쩐지 당시엔 일종의 남모를 배신감, 서운함으로 시작해서 다른 친구에게 그 친구를 빼앗긴 상실감, 질투심 등등 온갖 불쾌하고 못마땅한 감정들이 피어났던 것 같다.
문제는 이러한 감정의 소용돌이보다도 굳이 필요 이상의 감정을 소모했던 것에 있었다. 서서히 자연스레 '멀어짐'이 발생할 수도 있는 관계가 친구관계임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 그리고 가만히 내버려 둬야 할 관계를 굳이 억지로 먼저 완전히 관계를 끊어내는 방식의 '손절'을 택했다는 것. 재차 가까워질 일도 없었겠지만, 설령 가까워진다 해도 예전 같을 수 없다고 판단한 게 이유라면 이유였다. 이러한 나의 대인관계 방식은 이제와 생각해 보니 중학교 시절로부터 약 30년 가까이가 흐른 지금까지도 내가 한결같이 사용하고 있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더니, 대인관계 방식도 타고난 성격 따라 취해지는 모양이다.
타고난 기질이라는 게 이렇게나 무섭다. 정말 무섭도록 쉽게 바뀌질 않는다. '사람 고쳐 쓰는 거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흔히들 '사람이 사람을 제 맘대로 고칠 수 없다.' 또는 '사람은 잘 안 바뀌는 존재이니 타인에게 내가 원하는 변화를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다.' 등의 의미로 쓰인다. 그런데 살다 보니 그 말이 의미하는 바를 잘 들여다보면 속뜻에 있어 더 올바른 해석이 되려면 포인트를 조금 다르게 둬야 할 것 같다. '사람'을 지칭함에 있어 '타인'을 기준으로 두고 해석하기보다는 앞서 자기 자신의 문제로 대입을 해서 봐야 할 것 같다. '내가 나 자신을 바꾸기도 정말 힘들고 어려운데, 타인을 바꾸기란 오죽할까? 서로 바꾸려들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라.'는 의미가 더 정확한 방향으로의 해석이 아닐까 한다.
(이어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