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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베짱이 May 04. 2023

분노의 주먹

1982년 똥끼


1982년 국민학교 3학년 똥끼는 깡촌에서 지방 도시로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낯선 도시 생활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있었던 상태였다.

학교에서 집으로 오가는 길도 낯설어 종종 길을 잘못 들거나 잃어버리기 일쑤여서 차라리 집 주변에 사는 몇몇 친구들을 따라다니는 게 편할 무렵이었다.


그날도 마을 입구에서 친구들과 헤어진 후에야 마음이 놓인 똥끼는 삐그덕 거리는 녹슨 철문으로 들어서고 나서야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

마당을 지나 안방으로 들어가기 전 지금의 거실처럼 외부에 놓인 마루 앞에서 똥끼는 안방문이 자물쇠로 잠겨있는 것을 보고는 엄마가 외출했음을 직감했다.

아직은 낯선 집에 혼자 있게 된 똥끼는 다시 불안한 마음이 엄습하며 기분이 우울해졌다.

엄마는 집 근처 실을 뽑는 공장에 자주 나가 일거리를 받아오곤 했는데 그날도 그랬다.

똥끼는 엄마가 외출 시 안방문이 잠겨있으면 마당 뒤편 부엌으로 들어가 안방과 붙어있는 쪽문을 통해 들어가야 한다는 걸 몇 번이나 반복해 들었었다.


마당을 삥 돌아 뒤편으로 향하던 똥끼는 부엌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똥끼는 부엌 앞 바닥에 시커멓고 커다란 발자국들이 선명하게 찍혀있는 모습을 보고는 의아해했다.

그 발자국은 연탄재를 밟아서 생긴 검은색 발자국이었는데, 그 당시 연탄에 익숙하지 않았던 똥끼에게는 꽤나 강렬한 모습으로 느껴졌다.

게다가 부엌문을 채워두었던 자물쇠와 경첩은 엿가락처럼 구부러진 상태로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이제 겨우 9살인 똥끼의 눈에도 무엇인가 안 좋은 일이 벌어졌다는 걸 느낄 정도로 부엌의 밖의 모습은 평소와 달랐다.

부엌문을 열자 바닥에는 똥끼의 불안한 마음처럼 검고 하얀 연탄들이 부서져 뒤범벅이 되어있었다.


잠시 주변을 살펴보던 똥끼는 용기를 내어 신발도 벗지 않은 채 부엌에서 안방으로 들어가는 낮은 턱에 올라섰다.

부엌에서 안방으로 통하는 나무 합판으로 만들어진 작은 쪽문도 이미 반쯤 열려 있었다.

쪽문을 슬며시 열고는 고개만 내밀어 안방을 살피던 똥끼의 눈에는 부엌 앞에서 목격했던 그 시커멓고 커다란 신발자국들이 더욱 선명하게 들어왔다.

옷장과 서랍장들은 모두 열려있었고 그곳에서 흘러나온 옷가지들은 시체처럼 널브러져 처참한 모습이었다.


더 이상 혼자 서 있을 용기가 나지 않은 똥끼는 재빨리 부엌을 빠져나와 마당을 지나 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골목어귀에 웅크리고 앉았다.

그곳은 그나마 지나가는 사람들이 있고 자동차가 있어서 똥끼에게 덜 무섭게 느껴졌다.

언제든지 사람들에게 살려달라고 소리칠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여서 똥끼에게는 안전한 피난처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나자 고등학교에 다니는 형이 지친 모습으로 가방을 을러메고는 골목 안으로 들어섰다.

똥끼는 형의 모습이 너무 반가워서 한걸음에 달려 나가 형의 손을 잡았다.

형에게 집안상태를 정신없이 일러바치던 똥끼는 점점 일그러진 모습으로 변하는 형의 얼굴에 잔뜩 겁을 먹고 침을 꼴깍 삼켰다.


형은 씩씩거리며 빠른 걸음으로 부엌 쪽으로 갔고 똥끼는 형과 떨어지지 않으려고 뒤를 바짝 따랐다.

형은 조금 전과는 다르게 부엌에서 안방으로 통하는 쪽문을 살며시 열고는 고양이처럼 조심스레 발을 들여놓았다.

똥끼도 그런 형의 모습에 주눅이 들어 형을 방패 삼아 뒤를 바짝 쫓아 들어갔다.


형은 마주 보이는 서랍장에서 쏟아진 옷들을 쓸어 올리며 서랍장 안에서 보물 찾기라도 하는 듯 무언가를 찾는 것 같아 보였다.

그리고는 옆에 우두커니 서있는 반쯤 열린 옷장을 열고는 그 안에 헝클어져 있는 옷들을 하나하나 꺼내더니 바닥까지 샅샅이 뒤졌다.

그러던 형은 갑자기 미친 황소처럼 흥분하며 소리를 질러댔다.

"아이 씨X 어떤 개XX야! 잡히면 가만 안 둔다!"

"아이~~ 씨X 다 없어졌네  와~ 미치겠네  씨X"


똥끼는 그때서야 그 안 좋은 일이란 게 도둑이 들었다는 걸 깨닫게 되었고 공포감은 더욱 극대화되었다.

갑자기 어디선가 검은 복면을 한 도둑놈이 불쑥 튀어나와 칼 같은 무기로 위협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오금이 저렸다.


형은 똥끼에게 엄마가 평생 모아놓은 금반지나 귀금속 등이 모두 사라졌다면서 울먹였다.

똥끼는 믿음직스러운 형이 눈물을 보이자 덜컥 겁이 나 아까부터 참았던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부엌으로 나간 형은 아가리가 심하게 벌어진 연탄집게를 주워 들고는 혼잣말을 했다.

"도둑놈이 이걸로 자물쇠를 뽑아버리고 들어왔나 보네... 아 열받네 씨X"

형은 명탐정이라도 된 듯 부엌의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가만히 앉더니 바닥에 찍힌 발자국도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간간히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그렇게 한참을 심각하거나 씩씩거리던 형은 갑자기 쪽문을 향해 주먹을 날렸고, 그 주먹은 방안에 웅크리고 앉아있던 똥끼의 머리 위로 불쑥 튀어나왔다.


똥끼는 그때 형의 주먹이 쪽문을 뚫는 거친 소리에 놀라 움찔 바지에 오줌을 지렸다.  

하지만 똥끼는 무서운 도둑놈 때려잡을듯한 형의 용감한 모습에 이내 마음이 든든해짐을 느꼈다.

"야 똥끼야 내 팔 좀 빼줘 봐~"

똥끼는 순간 형의 말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형의 주먹을 반대편으로 밀어내주면 될 것 같아 곧바로 자리를 털고 일어나 형의 주먹을 반대편으로 밀었다.

그때 형의 외마디 비명소리에 놀라 똥끼는 동작을 멈추었다.

"아앗~ 야 인마 형 손 찢어진다  살살 밀어야지~"

부엌에서 안방으로 통하는 쪽문은 얇은 합판으로 만들어졌는데, 안방으로 뚫고 들어온 형의 주먹 주위로 찢어진 합판 조각이 칼날처럼 곤두서 있었던 것이다.


어린 똥끼가 어찌할 바를 몰라하자 형은 칼이나 가위를 찾아서 날카로운 부위를 자르라고 소리쳤다.

하지만 형은 어린 똥끼에게는 무리인 작업인 것을 이내 깨닫고 그냥 엄마가 올 때까지 기다리자고 했다.


그렇게 형은 외출에서 엄마가 돌아올 때까지 꼬박 두어 시간 을 어정쩡한 자세로 쪽문과 한 몸이 되어 알아들을 수 없는 욕설을 하고 있었다.

똥끼는 가끔 그날의 기억이 떠오를 때면 무서웠던 도둑보다도 혈기왕성했던 학창 시절 형의 분노의 주먹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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