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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베짱이 Oct 16. 2024

불과 누나

실 만드는 공장의 큰 불

씨꺼먼 연기가 마치 리듬 없이 춤을 추는 악마들처럼 긴 대열을 이루며 하늘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동네 사람들은 그 춤을 조금 더 가까운 위치에서 구경하려는 듯 이리저리 자리를 잡다가 똥끼의 집 대문을 방패 삼아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똥끼 또래의 장난꾸러기 몇몇은 똥끼의 집 야트막한 담장 위로 올라가 걸터앉기 위해 바둥거리고 있었다. 똥끼네 가족은 거실마루 현관 유리문을 통해 그러한 풍경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똥끼의 집 바로 앞 실 공장에서 큰 불이 발생한 건 똥끼네 집에 도둑이 들고 난지 며칠이 지나지 않은 어느 날 오후였다. 똥끼는 엄마가 자주 끓여주는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를 맡고는 저녁식사가 준비되었음을 형과 누나에게 알렸다. 이어서 마당에 담배를 피우러 나간 아빠를 부르려 거실 문을 열었다. 거실 문과  똥끼의 키 두 배

쯤 되는 커다란 담장 사이로 좁고 기다란 마당이 이어져있었고, 그 너머로 아파트 3층 높이는 됨직한 회색빛 공장 건물이 떡하니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평소에 그 큰 건물의 존재감을 모르고 지냈던 똥끼는 오늘따라 이상하리만치 거대한 실 공장의 모습이 괴기스럽게 느껴졌다. 며칠 전 집에 들었던 도둑놈의 상상 속 형상이 투영된 듯 실 공장은 스며든 어둠 속에서 똥끼를 쏘아보고 있었다. 그때, 똥끼는 그 거대한 도둑놈의 뒤통수 부분에서 검은 연기가 콸 새어 나오는 것을 보았고 순간 누군가 뒤에서 등을 떠밀듯 튕겨나가며 아빠를 불렀다.


"아빠~ 저기~ 연기 나요~


아빠는 위장 깊은 곳에서 퍼올린 마지막 한 모금의 연기를 뿜어내고는 다 타버린 담배꽁초를 발로 비벼 끄면서 똥끼가 가리키는 공장지붕 쪽을 바라보더니 놀란 눈으로 대문을 향해 뛰어갔다.


"똥끼야 공장에 불이 난 것 같으니까 집으로 들어가 있어. 엄마한테 얘기하고~"


아빠는 다급하지만 단호하게 소리치면서 곧장 공장을 향해 뛰어나갔다똥끼는 그제야 공장에 불이 났다는 걸 깨달았고 거실로 뛰어 들어가며 큰 소리로 불이 났다고 소리쳤다.


똥끼네 담장 너머로 번쩍이는 불빛과 사이렌 소리, 사람들의 뒤엉킨 소음들이 두어 시간째 이어졌지만 끝나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검은 연기는 어둠에 잡혀 먹히고 어느새 공장에서는 거대하고 무시무시한 불꽃이 시뻘건 핏물처럼 튀어 오르며 점점 그 덩치를 키워가고 있었다. 똥끼는 저 불꽃이 담장을 뛰어 넘어와 우리 집을 삼키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며 엄마 팔을 꼭 붙들고는 기대어 기도를 하고 있었다. 형이 엄마에게 걱정스러운 말투로 물었다.


"엄마... 이제 실 공장에서 일감 더 못 얻겠네요?..."


"휴... 그러게... 걱정이야..."


엄마의 근심 가득한 얼굴에 불꽃이 추어대는 그림자가 어른거리며 똥끼의 마음을 휘젓고 있었다. 똥끼는 엄마가 어디선가 몇 타래의 실을 가지고 와서 손질하는 모습을 자주 보았지만 한 번도 어디서 가지고 왔는지 또 무엇을 하는지 궁금해한 적이 없었다. 형과 나누는 대화를 듣고서야 엄마가 지금 불타고 있는 저 공장에서 실을 가지고 와 일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똥끼네 아빠가 버는 불규칙한 생활비로는 다섯 식구가 도시에서 생활하는 게 버거워 엄마는 실 공장에서 받아온 소일거리로 생활비를 보태고 있었다.


"엄마... 아빠는 언제 와...?"

 

똥끼는 불을 보며 달려 나간 아빠가 아직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는 걸 문득 깨닫고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혹시 아빠가 불을 끄러 공장에 들어갔다 갇혀서 못 나오는 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몰려왔다.

 

"그러게... 저 양반은 왜 저기 가서 안 오고 있는지 모르겠네... 밥도 안 먹고..."

"민철아 아빠 찾아서 밥 먹으러 들어오라고 좀 해~ "


"알았어요~"


형도 걱정이 되었던지 엄마 말을 듣자마자 벌떡 일어나 신발을 다 신지도 않은 채 현관문을 열고 나갔다.


얼마나 지났을까?... 똥끼는 엄마 무릎을 베고 누워 건물을 에워싸고 있는 불꽃들을 멍하니 보면서 꿈뻑꿈뻑 졸고 있었다. 처음 보는 어마어마한 불꽃과 검은 연기, 매캐한 냄새, 소방차와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 수많은 사람들의 탄식과 웅성거림... 들이 똥끼에겐 점점 재미없는 영상이 반복되는 듯 느리게 돌아가고 있었다.


"아이고 얘가 왜 이래~ 왜 이래~"


엄마의 놀라고 다급한 목소리에 눈을 뜬 똥끼는 꺼지지 않은 바깥 영상을 배경으로 쓰러지듯 주저앉은 누나의 모습이 마치 귀신처럼 보였다. 눈은 흰자가 커져 있었고, 머리카락이 땀에 젖은 채 헝클어져 있었으며 온몸의 피가 다 빠져나간 듯 창백한 얼굴로 몇 차례 엄마를 부르다 바닥에 완전히 쓰러졌다.


형보다 한 살 어린 똥끼 누나는 중3이었는데, 한참 불구경을 하다 슬그머니 사라져서 한참을 안보이더니 저 꼴로 나타난 것이다. 똥끼 누나는 불구경을 하다 졸려서 자기 방에 들어가 잠이 들었다가 바닥에서 새어 들어온 연탄가스를 맡고 두통과 매스꺼움으로 잠에서 깨어 비틀거리며 거실로 나오게 된 것이다. 


하지만 어린 똥끼는 누나가 불타고 있는 실공장에서 연기를 마시고 왔거나 불이 붙어서 죽는 걸 수도 있다는 무서운 생각과 공포감에 놀라 졸면서도 울먹였다. 그때, 아빠와 형이 들어왔고 열린 현관문으로 실공장에서 불이 붙은 도둑놈이 함께 집안으로 뛰어들어온 것처럼 거실 벽과 마루는 버얼건 색으로 물들었다. 집안은 쓰러진 누나와 누나를 보고 놀란 아빠, 엄마, 형의 비명과 소란으로 난리법석이었다.


꿈인지 생시인지 알다가도 모르겠지만, 잠시 후 눈을 뜬 똥끼의 눈에는  집안 분위기가 평온하게 바뀌어 있었다. 여전히 누워있는 누나의 얼굴은 아까보다는 덜 하애 보였고 가만히 수건으로 얼굴을 닦아주는 엄마, 코에다 무엇인가를 주기적으로 갖다 대는 아빠, 그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는 형...

누나가 죽은 것일까?라는 생각에 겁이 났지만 처음과는 다른 가족들의 모습에서 이내 걱정은 잦아들었다.


그렇게 다시 잠들었다 새벽에 안방에서 눈을 뜬 똥끼는 옆에서 곤하게 잠든 아빠, 엄마의 모습을 가만히 쳐다보다 문득 창백한 누나의 모습이 떠올라 일어나 안방에서 마루로 나가보았다. 마루에서 누나는 잠에 푹 빠진 듯 뒤척이면서 이를 갈고 있었고, 형은 형 방에서 대자로 뻗어 자는 모습이 평소와 같았다. 현관마루 창밖에서 밤새 일렁이던 붉은빛과 소음도 언제 그랬냐는 듯 제자리를 찾았다. 다만, 실공장은 거대한 숱덩이처럼 변해있었고 동이 트는지 햇살은 서서히 실공장 모퉁이를 환화게 비추며 흑백여운을 몰아내고 있었다.


아침을 준비를 위해 제일 먼저 일어난 엄마를 보고 똥끼는 물었다.


"엄마~ 누나 어젯밤에  왜 그런 거야?..."


"어... 연탄가스 중독이야... 조금만 늦었으면 큰일 날 뻔했네~ 너도 갑자기 머리 아프고 어지럽고 그러면 바로 말해야 해~알았지?"


엄마는 다짐을 받으려는 듯 똥끼의 눈을 힘주어 바라보며 대답을 기다렸다.


"알았어... 근데 그거 연탄에.. 중독인가.. 그러면 죽어?"


"그럼~ 많이 마시면 죽어~ 큰일 나는 거야~"


똥끼는 부엌 쪽문을 열고 나가면서 대답하는 엄마를 따라가 쪽문에 기대어 앉다가 부엌 한편에 쌓인 새카만 연탄과 다 타버려 어젯밤 누나 얼굴처럼 허옇게 변한 연탄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똥끼야~~ 또 내 칫솔 썼어?!!~미치겠네~ 정말~"


평소 누나의 앙칼지고 매서운 잔소리가 오늘은 듣기 싫지 않게, 아니 정겹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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