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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돌고래씨 Sep 16. 2020

우린 어디로 가나요?

   피아노 위 메트로놈이 생각났다. 메트로놈은 박자를 지정해주면 그에 맞춰 똑딱거리며 정확하고 어김없이 나타나고 사라진다. 피아노를 제대로 배운 적도 없고 나만의 피아노를 가진 적도 없는데 왜 메트로놈이 생각났을까? 앱스토어를 열고 메트로놈 앱을 다운을 받았다. 박자를 달리하고 음표를 바꾸고 반복되는 소리에 잠시 기대 보았다. 박자가 쪼개지고 음표에 달린 머리가 많아지니 나의 숨도 가빠진다. 사분의 일은 똑-똑-똑-똑-똑-똑-똑, 사분의 사는 똑-딱-딱-딱/똑-딱-딱-딱/똑-딱-딱-딱.


  살아있다는 것은 메트로놈처럼 빠르거나 느리게 또는 적당한 박자로 흐르는 것이다. 메트로놈이 멈추듯 숨이 멈추면 살아있음이 아닌 것처럼. 수정체로 들어오는 빛, 의식과 무의식에 반응하는 근육, 눈을 감고 발가락 하나 하나로 의식을 이동해본다. 메트로놈이 쏟아내는 그 순간의 진동처럼 살아있는 동안은 번쩍하는 그 찰나에만 머무는 것 같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지만 완전하고 온전하게 순간성 위에 존재한다. 왼손과 오른손을 맞잡아본다. 두 손으로 얼굴을 더듬고 무릎을 만져본다. 나를 구성하는 물질들은 애초에 어디에서 온 걸까? 너를 구성했던 그 모든 것들은 기억에서만 존재할 수 있을까? 


  사람이 아닌 것들, 또는 한때 사람의 모습이었던 것들을 보는 소설 속 여주인공이 있다. 놀이터를 떠나지 못하는 꼬마와 어린 시절을 보내지만 결국 그녀 혼자만 어른이 되어버린다. 어느 저녁엔 고등학교 친구였던 남자아이가 그림자도 없이 주인공을 찾아온다. 그립지는 않지만 보고 싶은 사람과 한 번만 더 이야기 나누고 싶은 사람, 그리고 영영 헤어지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생각난다. 무섭지만 한번 즈음 꿈이든 환상이든 나타나 주면 좋겠다. 사라짐의 예고가 있든 없든 슬픔의 무게는 줄지 않고 자꾸 더해지기만 한다. 


  언젠가부터 기쁨이 깃들어있는 날들만큼 영혼이 날아간 날들을 가만히 생각하게 된다. 푸른빛이 감도는 오월에 눈을 질끈 감아버린 친구, 시원한 가을바람 앞에서 멈추어버린, 계절과 계절 사이를 넘지 못한 사람들, 누군가의 머릿속에 박제된 사람들. 그리고 남아있는 사람들을 떠올려본다. 떠난 사람들의 발끝을 보고 흩어진 마음과 시간을 모은다. 입에서 나오지 못했던 말들이, 귀에 가 닿지 못했던 마음들이 바닥에 흘러넘친다.  


  아침에 생각하는 죽음은 결코 비릿하지도 바스락거리지도 않는다. 희미한 얼굴들과 옅어진 목소리들을 기억해보는 일. 슬픔 속에서도 반짝임을 발견한다. 해변의 모래알처럼 빛나던 작고 다정했던 순간들에 마음을 기대 본다. 끝없이 펼쳐진 시간의 천 위에 메트로놈의 박자로 무늬를 찍는다. 애초에 어디서 온 건지도, 결국에 어디로 가게 될지도 모르지만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는지는 알 수 있다. 무엇을 먹고 입을지, 무슨 책을 읽을지, 어디로 가서 누구를 만날지, 어떤 말을 하고, 어떤 마음을 지닐지는 알 수 있다. 사라짐을 기억하니 더욱 완전해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지금 여기, 이대로 순간과 순간 사이에 머문다. 나의 안녕과 너의 안녕, 우리들의 안녕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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