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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우나우 Nov 30. 2021

이직 = 능력?

가늘고 긴 커리어우먼을 꿈꾸며

"왜 퇴사하셨나요?"


오늘 면접에서도 어김없이 질문받았다. 좋게 포장해서 "왜 퇴사하셨나요?" 솔직히 말하면 "여기서도 얼마 못 버티는 거 아닌가요?"



* 지원자 경력 사항


2012.06 ~ 2016.04  A회사 마케팅팀

2016.05 ~ 2017.05  B회사 마케팅팀

2017.11 ~ 2019.05  C회사 전략사업부(마케팅)



이직은 능력이라고 믿었다



퇴사 이유를 묻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싶어서 도전했었다. 많은 것을 배웠으며, 이런 경험들이 쌓여서 내가 할 수 있는 업무의 범위가 넓어졌다. 그만큼 업무 성과도 높아질 것이라 생각한다'라고 답변했다. 넓은 경험과 업무 스콥(scope)이야말로, 직장인으로서의 내 가치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지난 면접까지는 분명 잘 먹혔었다. 근데 이번 면접은 좀 다르다. 가운데 가장 높은 분으로 추정되는 면접관이 다시 묻는다. 


"그런데, 그 경험과 능력을 기존 회사에서 더 펼칠 수는 없었나요? 새로운 도전도 가치 있지만, 불합리한 현재를 극복하려는 노력도 중요한 것 아닐까요?"


순간 식은땀이 났다. '정말로 새로운 도전을 위한 이직이었나?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그것을 회피하기 위해서 도망친 것은 아니었느냐?'라는 물음이었다. 어떻게 답변하느냐에 따라서, 나는 '경험 많은 숙련자'에서 '문제를 회피하는 비겁자'로 전락할 것이었다. 잠시 고민하다가, 어설픈 논리로 변명하느니 차라리 솔직하게 대답했다.


"말씀 주신 부분은 제가 미처 생각지 못했습니다. 도전은 새로운 환경, 외부에서만 하는 것으로 너무 좁게 생각했습니다. 아직은 눈앞의 문제 처리에만 급급하여, 넓고 길게 보는 안목과 인내심이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주니어 사원인 제 한계이며, 시니어로 성장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역량이라고 생각합니다. 기회를 주신다면 이 회사에서 시니어로 성장하여, 더 큰 성과를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질문의 의도를 맞췄나 보다. 면접관의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다행히 '잦은 이직'에 대한 질책성 질문은 끝이 났고, '다양한 경험에 대한 구체적 사례'를 묻는 후속 질문으로 넘어갔다.



견디는 것도 능력이다



면접 결과는 어땠을까? 다행히 나는 합격했다. 실무자를 뽑는 자리인 만큼, 내가 가진 여러 가지 프로젝트 참여 경력이 좋은 평가를 받은 것 같다. 2주 후 연봉계약서에 사인하면서, 나는 4번째 이직에 성공했다.


이번 면접은 나로 하여금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주니어 레벨을 넘어갈수록, 회사가 내게 요구하는 역량은 단순한 실무 경력만이 아니었다. 선임급 실무자로서, 기간이 더 길고 중요한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는 인내력이 있는가? 현재를 버텨냄으로써 내일을 준비할 수 있는 '견디는 힘'이 있는가? 내게 요구되는 새로운 역량이었다.



5번째 이직은 많이 미뤄야겠다. 위로 올라갈수록, 내게 불리한 환경일지라도 내 자리를 지켜내는 뚝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얼마나 버티는 게 뚝심이고, 어느 타이밍에 탈출하는 게 도전 기회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그냥 견디다 보면 알게 되지 않을까? 시간은 사람을 성장시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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