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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우나우 Nov 26. 2023

출근하는 엄마를 외면하는 아이


1. 출근 첫날, 떠나는 엄마와 오열하는 아이



아들 생후 6개월, 친정엄마에게 아이를 부탁하고 회사에 복직했다. 일과 육아를 모두 놓치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출산 전부터의 계획이었다. 출근 전날 밤, 미리 머리를 감고 말리면서 내일의 출근길을 시뮬레이션했다.


'6:50에 일어나서 세면/양치/옷을 입고 아이를 깨운 후, 기저귀/내복 먼저 갈아입혀야지. 타이니모빌을 틀어주고 그 사이에 화장을 마무리하면 대략 7:30. 친정까지 10분 거리니까, 엄마한테 아이 인계하고 나오면 7:50, 회사에 8:30까진 출근할 수 있겠다.'


계획을 점검하고 침대에 누웠다. 설레고 걱정되는 가슴을 다독이면서 간신히 선잠을 잤다.


첫 출근 아침. 정확히 6:50 알람에 벌떡 일어나서 시뮬레이션대로 출근 준비를 마친 후, 안방으로 다. 아들은 세상 편안한 표정으로 숙면 중이었다. 차마 깨우기 미안한 마음에 조심히 안아 들고 볼에 뽀뽀했다. 아이는 입을 쩝쩝대면서 꼬물거렸다. 3분, 아니 4분쯤 지났을까? 살짝 눈을 뜨고 엄마를 확인하고는 쨍얼거렸다. 다시 한번 꽈악 안아준 후, 바운스에 눕히고 타이니모빌을 틀고 얼른 옷방으로 달려가서 화장을 마쳤다. 시계는 벌써 7:30을 가리켰다. '기저귀는 엄마한테 부탁해야지'라는 불온한 생각을 하며 아이를 안고 서둘러 친정으로 향했다.


"엄마, 바빠서 민준이 기저귀 못 갈아줬어. 기저귀 갈고 로션 바른 다음에 요거 내복으로 입혀주면 돼. 나 늦어서 얼른 갈게, 잘 부탁해!"


친정엄마에게 속사포 잔소리를 쏟아낸 뒤, 얼굴 표정을 가다듬고 웃으면서 아이와 마주 봤다.


"민준아, 엄마 회사 다녀올게. 할머니 말 잘 듣고 있어. 엄마가 얼른 올게."


엄마가 떠난다는 것을 알아챈 건지 아니면 잠이 덜 깨서 졸린 건지, 민준이는 뿌앵 울음을 터트렸다. 울음소리가 꼭 '엄마 가지 마'처럼 들렸다. 성공적인 커리어우먼의 야심은 사라지고 오직 속상하고 미안한 마음만 남았다. 억지로 웃는 표정을 지으면서 '엄마 갔다 올게' 인사하고 친정집을 나왔다. 아이도 곧 적응할 것이라는 자기 암시를 되뇌며 지하철까지 빠르게 걸었다.



2. 출근 일주일, 엄마를 외면하는 아이



우리의 눈물겨운 출근길 분투는 며칠 째 계속됐다. 아이는 울고, 엄마도 울고, 할머니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바라보는 휴먼 드라마의 장면 같았다. '그래도 점점 울음 그치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는 친정엄마의 위로가 첫 며칠을 버티게 해 주었다.


다시 돌아온 월요일 아침, 모든 출근 준비를 마치고 크게 심호흡을 했다. 환하게 웃는 엄마 얼굴을 만든 뒤, 매트 위에서 놀고 있는 아이를 찾았다. 안아서 눈을 맞추고 밝은 목소리로 인사했다.


"엄마 회사 갔다 올게. 우리 민준이, 엄마가 사랑하는 거 알지? 이따 보자."


아이는 눈을 꿈뻑이면서 무표정하더니 고개를 휙 돌려버렸다. '엄마 미워!'의 휙 고개돌림이 아닌, '그러든가 말든가'의 무관심한 외면이었다. 칭얼대며 할머니만 찾았다.


"민준아? 엄마 회사 갔다 올게?"


혹시나 화가 난 건지 걱정되는 마음에 다시 한번 인사를 건넸다. 아이는 엄마의 인사를 거부하는 듯, 기어이 할머니 품으로 넘어가서 갖고 놀던 장난감만 만졌다. 울지도 않고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나를 외면했다.


"민준이가 오늘은 웬일로 안 우네? 아이고, 이제 좀 적응하나 보다."


친정엄마가 안심인지 아님 위로인지 모를 말을 건넸으나 내 귀엔 웅웅대는 소리로만 들렸다. 아이에게 미안했던 마음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끝내 나를 외면해 버린 것에 대한 서운함만 몰려왔다. 나는 우리 모두를 위해서 기를 쓰고 노력하는데 너는 고작 일주일 만에 엄마를 거부하는 거니? 나만 좋자고 출근하는 거야? 내 속에서 나온 네가 어떻게 이럴 수 있어? 차마 입으로 내뱉지 못할 원망이 목까지 차올랐다. 결국 화난 표정으로 집을 나왔다. 날 외면한 아이에게 화가 난 건지 아니면 이런 상황에서도 회사로 출근하는 나 자신에게 화가 난 건지 알 수 없었다.


지하철까지 뛰는 듯이 빠르게 걸었다. 3월 바람이 차갑게 얼굴을 때렸다.



3. 슬픔을 이겨내는 방법



아이의 외면은 계속됐다. 대놓고 고개를 휙 돌리진 않아도, 방금 전까지 잘 웃고 놀다가도 '엄마 회사 갔다 올게'라고 인사하면 쳐다보지 않고 제 할 일만 했다. 처음엔 서운했으나 나도 점차 적응했다. 그저 슬픔을 극복하기 위한 아이 나름의 방법이려니 여겼다.


'그래도 퇴근하면 기쁘게 반겨주니까. 날 싫어하는 건 아닐 거야.'


생각해 보면 나 역시 슬프고 서운한 상황을 마주칠 땐 눈을 돌리며 외면한다. 서러우면 눈물부터 나는 성격이라서 당황스러운 감정이 올라오면 상대방의 시선부터 피한다. 다른 곳을 바라보면서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고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생각한다. 이런 내 성격을 민준이가 닮았나 보다. 엄마와 떨어진다는 사실에 당황해서 일단 시선을 피함으로써 슬픔을 가라앉히나 보다. 날 닮아서 나와 똑같은 방법으로 스스로를 위로하는 것이라면, 결코 엄마가 싫거나 미워서 외면하는 건 아니다. 당장의 슬픔을 숨기기 위한 민준이 나름의 노력일 것이다. 민준이를 향했던 서운함은 사라지고 대신 미안하고 안쓰럽고 사랑스러운 감정이 올라왔다.


다음 날 출근길, 화장하고 가방을 멘 엄마를 또다시 외면하는 아들과 마주했다. 그래도 밝게 웃으면서 말했다.


"민준아, 엄마 회사 갔다 올게!"


아이는 나를 힐끔 돌아보더니 다시 고개를 돌려서 원래 갖고 놀던 자동차를 만졌다. 그 모습에 슬며시 미소가 지어졌다. 아이 앞으로 다가가서 무릎을 꿇고 눈높이를 맞춘 후, 다시 인사했다.


"엄마 얼른 갔다 올게? 이따 퇴근하고 엄마랑 신나게 놀자!"


인사를 마치고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이는 잠시 나를 쳐다봤지만, 가지 말라고 안기거나 칭얼거림 없이 다시 본인 일에 집중했다. 잠시 마주친 시선에서 '엄마 잘 갔다 오세요'를 읽은 건 나만의 착각일까? 평소보다 조금 더 포근한 마음으로 집을 나왔다. 오늘도 출근이다.



4. 현재에 충실한 삶



복직 초반엔 '출근하는 엄마를 외면하는 아이' 때문에 걱정이 컸다. 혹시 육아 전문가의 연구자료를 찾아볼까 인터넷을 검색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이내 인터넷을 닫고 깊게 파고들진 않았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 무서웠다. 혹시라도 초기 애착형성에 실패할 것이라는 경고가 뜨면 어쩌지? 설령 위험 경고를 받더라도 내가 과연 회사를 그만두고 육아에 전념할 수 있을까? 내겐 불가능한 일이었다.


회사를 그만둘 순 없었다. 지난 출산/육아휴직 6개월 동안 나 스스로의 엄마 그릇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아무리 내 아이일지라도, 나는 온전히 다른 사람을 위해서 내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집 안에만 있으면서 나는 무력하고 우울해졌다. 다시 회사에 가고 싶었다. 빠르고 눈에 띄는 성과를 바랐고 그것이 온전히 내 자산으로 쌓이길 원했다. 집안일과 육아로는 충족될 수 없는 성취욕이었다. 나는 사회에서 돈을 벌고 커리어를 쌓아야 하는 사람이었다.


'민준이를 믿자. 날 많이 닮은 아이니까, 내가 그랬던 것처럼 금세 서운함을 극복하고 다시 즐겁게 지낼 수 있을 거야. 금방 적응해서 우리 모두 지금보다 훨씬 행복해질 거야.'


워킹맘 애착 실패를 걱정하던 마음을 다독였다. 영유아 정서불안을 검색하려던 시도도 그만두었다. 어차피 벌어진 일, 나와 아이 모두의 마음 그릇을 믿기로 했다. 변화에 잘 적응해서 우리 모두 건강하고 독립적인 사람으로 한층 더 성장할 것이다. 현재에 충실한 만큼 훨씬 더 밝고 즐거운 미래가 올 것이라고 믿는다.



PS. 생후 26개월 어린이가 된 민준이는 밝고 활발하게 잘 웃는 장난꾸러기로 자랐다. 엄마와 아빠는 물론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 삼촌 등 많은 가족들의 사랑을 받을 줄 안다. '나도 사랑해'라고 대답하며 '민준이는 엄마를 좋아해'라고 자주 마음을 표현한다. 기대와 계획대로 우리는 한층 더 행복해졌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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