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의 식물에 눈길을 보내는 산책자의 일기
작은 꽃들을 가까이서 봐야 더 예뻐 보인다
고진하 글 [야생초 마음] I 디플롯 출판
p23 나는 권력이나 재력 같은 인간의 힘을 숭상하지 않지만 식물의 강한 힘은 숭상하고 싶다. 그 강한 힘은 남을 무찌르는 힘이 아니라 남을 살리는 힘이기 때문이다.
P205
초록 땅별의 지속 가능성이 위태롭고 기후 위기가 눈앞에 어른거리는 이즈음, 나는 내 식구들의 호구를 채워주는 소농이 희망이라고 믿는다. 귀농한 후배도 돈벌이가 안 되는 소농의 힘든 과정을 잘 견디기를!
관계를 재발견하는 시인, 겸허한 목회자, 그리고 땅에 뿌리박은 사람으로서 야생과 눈높이를 맞추며 빚어낸 생명 예찬이 도시적 삶에 안주하는 우리의 심사를 복잡하게 만든다. 반갑고, 그립고, 기쁘고, 부끄럽고, 뉘우치고, 안타깝고... 나는 이 책이 촉발하는 '불편한 마음'에서 내일로 가는 길을 찾으려 한다. 이 책의 어떤 대목이 우리 안에 잠들어 있는 그 무엇을 건드려 우리를 불편하게 만든다면, 그리하여 이런 삶은 뭔가 잘못돼도 크게 잘못됐다는 깨달음에 이른다면 그것이 바로 '생태 영성'의 새싹일 테다.
'밥이 하늘'이라는 생태 영성은 초월적 관념이 아니다. 멀리 있지 않다. 지금 우리 앞에 있는 밥상을 보자. 이 음식들이 대체 어디서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물어보자. 자문자답을 서너 차례 이어간다면 '내 몸 또한 우주'라는 세계감을 붙잡을 수 있을 테고, 그때 그 순간부터 우리는 '다른 미래'를 꿈꾸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니 이 책은 강원도 땅에서 온 나물 꾸러미가 아니다. 우리의 미래가 보내온 '씨앗 보따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