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토록 돈이 없는 호주머니는 이렇게 말한다.
“너는 돈이 없음으로 인하여 꿈을 얻지 않느냐!”
그것은 매우 옳은 말이다. 나는 돈이 전혀 없기 때문에 꿈만을 꾼다. 더욱이 좋은 것은 그 꿈속에는 어느 부자도 따르지 못할 만큼 돈이 매우 풍족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종종 내가 원하는 대로 땅을 사고 집을 짓는데, 신기한 것은 많은 돈만큼의 화려하고 웅장한 중세의 성과 같은 집은 절대로 짓지 않는다. 돈이 매우 풍족한 만큼 멋진 디자인으로 세워진 세계 제일의 고층건물까지도 지을 수 있겠지만, 그런 건물이라면 그저 준다 해도 사양한다. 층층 벽돌인 현대의 아파트는 아예 제외 대상이다. 돈 많은 사람으로서 바보짓 하는 사람이 되겠지만, 매번 내가 짓는 집은 오직 작은 초가집.
황토로 된 그 초가집에는 대청마루와 툇마루가 어김없이 있고, 돌담을 두른 마당에는 늘 맑은 샘물이 고이는 연못도 틀림없이 있게 된다. 연못 속에는 당연히 힘 좋은 굵은 붕어와 예쁜 피라미들이 한가롭게 놀게 된다. 이따금 정다운 꽃잎과 사색의 낙엽이 떠돌기도 하고.
연못 주변에는 작은 동산이 세워지고, 그 동산에는 온갖 야생화들이 피게 된다. 특히 좋아하는 동자꽃이나 솔체꽃은 당연히 있게 되거니와 종류가 다양한 제비꽃도 있게 되고, 나와 같은 홀아비꽃대나 어머니를 사모하게 될 할미꽃도 있게 된다. 두견새를 불러오기 위한 진달래꽃도 빼놓지 않고, 달밤의 사랑을 보기 위한 달맞이꽃도 있게 된다. 이러한 꽃들로 인해 나비와 벌을 절로 날아든다.
그러기 위해서 마당은 매우 넓은 편인데, 그 마당 절반쯤은 여러 종류의 활엽수가 듬성듬성 자라게 된다. 계절이 없는 대지는 삶의 운행을 뚝 끊어놓게 마련. 아예 나무가 없다거나 늘 푸른 상록수만이 자라는 것은 상상조차도 하지 못할 일이다. 인생의 불행은 거기서 더욱 빨리 자라는 법. 나는 현대 도시의 불야성이 불나방이라는 것을 이미 오래전부터 인정해 오고 있다. 인생이 희로애락을 거치는 것은 필연이다. 희로애락이 사계절과 같음은 진리이다. 그러니 어찌 사계절의 운행이 스치는 활엽수를 세워 놓지 않겠는가!
대문은 돌담에 걸치게 되는데 판자 대문이다. 때로는 마음의 길을 걷기 위해 굳게 걸어 잠그기도 하고, 때로는 바람에 마음껏 삐걱거리도록 놓아둘만한 그런 판자 대문. 싸리로 만든 사립문이 마음에 들기도 하지만, 자연미는 있으나 안정감이 없다. 궁상맞은 내 독신의 삶을 드러내는 구멍이 숭숭 뚫린 까닭이다. 아, 그렇지! 초가집 처마에 풍경(風磬) 하나를 다는 것을 빼놓지 않는다. 먼 곳에서 온 바람을 환영할 수 있도록 말이다. 아마도 나는 대문소리와 풍경소리로부터 시시각각 온 세상의 이야기를 듣게 될 것이다.
외출을 하고 돌아오는 날. 어느 언덕에선가 구비에선가 멀리 서있는 내 초가집을 보게 된다. 숲에 가려 잘 보이지는 않겠지만, 자기 집이 어디쯤 있는가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라고. 초가집은 적절한 숲의 그늘 아래서 붉은 노을이 반사되어 비치는 아늑한 호수를 내려다보며 서있게 된다. 호수에는 원앙새가 놀고, 그들도 근처 어느 나무에 내 집 같은 아늑한 집이 있을 터이다.
호수는 내가 노는 곳도 될 것이다. 아침 물안개가 자욱할 때 나는 작은 돌멩이를 던져 고운 동그라미 파도를 만든다. 동그라미 파도는 물안개 속으로 달려가며 아침을 깨우게 된다.
“일어나, 일어나, 모두 일어나!”
산새가 지저귀기 시작하고, 햇살이 반짝이게 된다. 이슬방울 달린 풀 잎 끝으로 작은 베짱이가 슬금슬금 기어오르고, 거미는 부지런히 이슬방울 털어낸다.
호숫가를 산책한 뒤 이슬에 젖은 나는 천천히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리고 집 앞에 흐르는 개울가에 서게 된다. 개울은 제법 넓고 아기자기한 구비를 이루는 개울이다. 또한 돌들이 많은 개울이기도 하고, 작은 모래사장도 더러 있는 개울이다. 그래서 물고기도 많이 살게 된다. 그들은 내 육식 탐미의 제물이 될 수 있겠지만, 그 마음 지니고 있어도 즐겨 행하지는 않으리라.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아침마다 세수를 하려고 매일 섰던 자리에 서서 먼저 낯익은 돌들에게, 돌 틈의 풀들에게 아침인사를 하게 된다. 물론 그 돌들과 풀들이 내 아침인사를 받는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자연스럽게 내가 인사하고 싶을 뿐. 그리고 세수를 하게 된다. 고요한 아침의 숲 속에서 얼굴에 닿는 개울물은 골짜기와 골짜기를 흘러 내려오는 동안 수없는 자연의 정령들과 인사를 나누며 흘러온 물. 내 얼굴에 화기애애한 정을 적시게 된다. 이때만큼은 절대 비누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래도 얼굴은 뽀드득뽀드득 소리를 낸다. 그 소리는 겨울이 오면 눈 밟히는 소리와 같다.
하얀 눈 덮인 산골짜기에 피어오르는 연기. 멀리서 지나가는 나그네는 잠시 서서 아련한 그리움에 젖겠지. 초가집 굴뚝의 연기야말로 삶의 영원한 향수鄕愁! 그리고 그는 참 멋진 풍경이라고 여기겠지. 그런 내 초가집이 있는 땅은 예전에 누군가의 소유였던 것. 나는 틀림없이 그 땅을 사는 데 돈 아까운 줄 몰랐겠지. 아마도 기쁜 나머지 더 많은 금액을 얹어준 기억이 남아있기도 하겠지. 꿈속의 돈은 이 세상을 다 사고도 남음이 있었으니까.
그러고 보니 여전히 돈이 많다는 것을 잊고 있었군! 하지만, 무엇에 쓸까? 내 땅이 있고, 그 위에 초가집도 지었는데 달리 필요한 것이 있겠나!
평생토록 돈 많은 꿈이 이렇게 말한다.
“너는 이제 네 꿈을 그렸으니, 그것을 이루기 위해 부지런히 일해야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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