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 음성은 몇십 분 동안 거의 판에 박힌 듯이 건조하게 울려댄다. 고정된 악보처럼 읊조리는 내용이 세상과 절연한 듯 정 냄새가 없다. 몇 마디의 구호만 계속해서 반복된다.
“발바닥을 땅에 붙이세요.”
“도착하면 빨리 밖으로 나가세요.”
“어른 출발!”
“친구들 출발!”
음악이 없다면 어느 종목의 훈련장쯤으로 오해할 만한 분위기다. 다행스럽게도 내 눈앞의 풍경은 즐거운 눈썰매장의 풍경이다. 엄마 아빠 품에 안긴 즐거운 아이들이 있고, 그 아이들 입에서는 끊임없이 터져 나오는 신나는 비명이 있다. 또 절로 몸이 움씰거리는 경쾌한 음악 소리도 있다. 찰칵 찍어 액자로 걸어놓으면 분명 「백설 위의 낙원」이라는 제목이 달릴 풍경이다. 당연히 나는 웃고 있다. 행복해서 견딜 수 없는 몸부림처럼 연신 입꼬리가 올라가고 있다.
정말로 그렇다. 좀처럼 발을 떼지 못하고 울타리를 부여잡고 선지 벌써 삼십여 분이 되었다. 보고 또 보아도 자꾸만 웃음이 피어오르는 것이 영 벗어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이렇게 이곳의 분위기는 행복하다.
그런데 오직 청년의 음성만이 아무런 감정 없는 기계처럼 건조한 구호를 반복하고 있다. 그리고 우습게도 그런 기계화된 구호가 이 낙원을 움직이고 있다.
청년은 겨울 눈썰매장이 열리는 시간에만 와서 일하는 여러 명의 아르바이트생 중 한 명이다. 아르바이트생은 이곳 눈썰매장의 안전요원 업무를 맡고 있는데, 그중 한 명은 출발선에 서서 사람들의 출발을 조절하고 지시하는 역할을 한다. 지금 건조한 음성을 내뱉고 있는 청년이 바로 그 역할을 맡는 중이다.
이 즐거운 분위기의 장소에서 건조한 음성을 내뱉고 있는 청년을 나무라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노는 것, 구경하는 것, 일하는 것 모두가 자기 입장이 있는 법이다. 썰매를 즐기는 사람, 그것을 구경하는 사람이야 잠시 왔다가 떠나갈 뿐이지만, 청년은 하루 종일 차가운 눈 위에 서서 같은 구호를 수백 번 반복해야 한다. 그의 삭막한 음성이 이해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해의 여부를 떠나 사실 큰 문제도 없다. 까닥 잘못하다가는 분위기를 망칠 수 있는 건조한 음성인데도 눈썰매장 자체가 너무 즐거운 장소인 탓인지 그런 일이 일어날 낌새는 전혀 보이질 않는다. 게다가 더욱 안심하게 된 것은 한 가지 신기한 사실을 발견하고서다.
한 번씩 청년의 음성이 묘하게 바뀌는 때가 있다. 우는 아이 사탕을 물리면 그 달콤함에 분위기가 삽시간 평화롭게 되듯이, 그의 음성도 어느 순간에 그런 분위기로 바뀐다. 지시하듯 딱딱하게 “어른 출발!”이라고 반복하던 구호가 갑자기 혀를 있는 대로 굴려 “자~ 어른 분들~ 추울 발~~~” 하며 정말 부드럽고 달콤한 음성으로 바뀌는 것이다. 갑자기 그렇게 바뀌는 음성에 어리둥절할 정도다.
그런데 나는 이내 그런 변화의 곡절을 알게 되었다. 내 눈도 동그래질 정도로 예쁜 아가씨가 출발선에 앉아 있을 때마다 청년의 음성이 달콤하게 변한다는 것을 말이다. 재미가 있어 몇 번 관찰해 본 결과 그것은 틀림없다.
사실 당연한 일일 수밖에 없었다. 내 청년 때를 생각해 봐도 예쁜 아가씨 앞에서는 내 모든 행동이 변하지 않았던가. 청년의 본능도 그렇게 작동한 것이었다. 예쁜 아가씨를 향해 느끼는 이성적 감정, 그에 따라 음성도 속절없이 부드러워진 것이다. 다른 대기자들은 덤으로 그 달콤한 음성을 듣게 되는 셈이고. 나 또한 그만큼 즐거운 미소를 지을 수 있게 되었다.
아름다움을 보고 마음이 풀리는 이런 상황은 악인에게도 속수무책일 것이다. 실제로 이곳 눈썰매장에서는 어떤 악의도 없다. 모두가 초승달 눈매를 하고 즐겁게 웃을 뿐이다. 여기에 사랑의 감정까지 나타나 달콤한 음성까지 울리니 낙원이 더욱 낙원으로 느껴진다.
“자~ 어른 분들, 추울 발~~~”
몇 번 건조했던 청년의 음성이 다시금 달콤하게 울린다. 아니나 다를까 참 예쁜 아가씨가 새롭게 나타나 출발선에 앉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