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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인 Sep 05. 2020

채드윅 보즈먼을 추모하며, 그의 흑인영화 다시 읽기

채드윅 보즈먼의 필모그래피를 통해 발견하는 진화하는 흑인 서사

 어느 비 오는 날, 영화배우 채드윅 보즈먼의 사망 소식을 접했다. 사망 소식을 믿을 수 없어 자꾸만 검색을 해보다가, 그의 죽음이 돌이킬 수 없는 사실임에 허망해하다가, 이윽고 최근 그의 외모가 날이 갈수록 수척했음이 떠올랐다. 그는 세상에 알리지 않은 채 자신만의 싸움을 하며 영화를 만들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며칠간 나는 다시 볼 수 없는 채드윅을 그의 영화를 통해 다시 만났다. 채드윅의 필모그래피는 흑인들의 인권에 대한 고민을 담은 영화들이 주를 이루었다.

흥미로운 점은 영화가 세상에 나온 순서대로 인종차별에 대한 고민이 진화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흑인 최초의 메이저리그 야구선수에 대한 전기영화인 <42>는 그동안 영화에서 주로 다뤄지지 않았던 인종차별을 주제로 하고 있지만, 시혜적인 백인의 관점에서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아쉬웠다. 이에 반해 2018년에 나온 <블랙팬서>는 흑인의 관점에서 인종차별에 대해 고민하고 더 나은 인종차별 철폐 운동을 고민한다. 이후 2020년 최근작이자 채드윅의 마지막 작품인 <Da 5 블러드>는 백인이 일으킨 베트남전에 흑인이 파병되면서 오히려 흑인 vs아시아인의 갈등 구도로 전개된 것을 인식하며 전지구적 인종차별 및 전쟁에 대한 비판적 성찰로 나아간다. 이렇듯 그의 영화들은 세상에 나온 순서대로 진화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통적으로 남성 중심적 서사라는 단점을 지닌다. 실제로 그는 성폭력을 저지른 영화감독 네이트 파커의 영화를 지지해달라고 연설하며 에둘러 성폭력 가해자를 옹호한 바 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채드윅 보즈만의 명백한 한계였다. 그렇기에 그의 영화들을 통해 그를 비판적으로 기억하며 추모해보고자 한다.



시혜적 백인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인종차별, 영화 <42> (2013)

영화 <42>

 2013년에 나온 영화 <42>는 흑인 최초의 메이저리그 야구선수 재키 로빈슨에 대한 전기영화이다. 그러나 <42>는 1940년대 흑인들이 겪는 인종차별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n-word가 귀에 박힐 정도로 많이 등장시켰고 노골적인 혐오표현(어떤 내용인지 굳이 묘사하고 싶지도 않다)을 그대로 사용하여 보기 불쾌했다. 아무리 그것이 1940년대의 혐오와 차별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고 하나, 실제 n-word를 들었을 채드윅 당사자의 기분은 어땠을까? 차별을 강조하기 위해 굳이 혐오표현을 그대로 차용하는 게으르고 폭력적인 연출이 필요했을까?

 최초의 흑인 메이저리그 야구 선수였던 재키 로빈슨은 야구선수이자 동료로서 인정받기 위해 뛰어난 기량을 증명해야 했다. 또한 자신의 인종을 빌미로 그를 비하하는 것에 대해 한 마디도 하지 못하고 모두 참아야 했다. 결국 팀을 우승으로 이끄는 그의 하드캐리 끝에 그제야 재키는 동료이자 선수로서 인정받는데, 그 인정이 백인 동료 선수들과 함께 샤워하는 것이었다. 이 영화에서 인종차별이 극복되는 상징적인 장면을 백인에 의해 흑인이 '포용'되는 것으로 제시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에서 주목하는 인물은 '관대하고 시혜적인 백인'이다. 재키가 있는 야구단의 단장은 40년대에 최초로 흑인을 발탁할 정도로 인종차별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는 인물이고 일부 동료 선수들은 재키와 경기장에서 어깨동무를 하며 함께 샤워하자고 손을 내민다. 그래서인지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유일한 흑인이었던 재키는 불쌍해 보이는데 반해, 먼저 포용하는 일부 백인들은 대단해 보인다.

그러나 포용은 평등이 아니며 연민은 연대가 아니다.

영화를 다 보고 난 후, 나는 이것이 백인 남성에 의해 만들어진 흑인 서사가 분명하다고 자신했다. 역시나였다.



흑인 주체의 선언 <블랙팬서>(2018)

 지금까지 많은 영화들이 흑인을 인종차별의 피해자라는 객체로서 재현한데 반해, <블랙팬서>는 흑인을 서사 전개의 주체로서 내세웠다. <42>와 <HELP> 등이 백인의 관점에서 흑인을 동정적으로 바라보고 인종차별에 대한 대안으로써 백인의 시혜적 포용을 제시했다면, <블랙팬서>는 흑인의 관점에서 차별받는 흑인 동포들과 어떻게 연대하고 무엇이 더 나은 운동 방식일지 고민한다. 이에 따라 <블랙팬서>에서 채드윅이 연기했던 트찰라는, 배타적 흑인 민족주의를 주장하는 정체성 정치의 상징 킬몽거와 갈등하며 흑인 인권 운동 방식으로서 비폭력, 연대, 난민 포용 등으로 고민을 발전시켜 나간다. 한편 영화를 보는 또 다른 재미는 아프리카 문화의 주체적 재현이다. 흔히 아프리카 문화는 미디어를 중심으로 우스꽝스럽게 재현되곤 했다.

이미지 출처 <https://blog.naver.com/ibcltd12/90137417680>

그러나 <블랙팬서>를 보다 보면, 희화화된 아프리카 문화 재현이 재현 그 자체의 문제가 아닌, 존중 부족의 문제였음을 깨닫게 된다. 우스꽝스럽고 원시적이게 재현되곤 했던 아프리카 문화의 신앙, 의상, 타악기 리듬에 맞춘 춤, 분장 등은 <블랙팬서>에 이르러서야 또 하나의 '문화'로서 재현된다. 따라서 이 시선을 따라가는 우리, 즉 관객들은 <블랙팬서>에 재현된 아프리카 문화를 우스꽝스러워하기보다 아름답다고 생각하며 바라보게 된다. 이것은 아마도 <블랙팬서> 제작진들이 아프리카 문화를 아름다움과 존중의 관점에서 재현했기 때문일 테다.


 그래서인지 영화 <42>를 보다 보면, 백인에 비해 짙은 채드윅의 피부가 돋보였던 것에 반해, <블랙팬서>를 보다 보면 오히려 백인의 피부가 너무 밝아 보일 정도로 흑인의 외모가 피부색의 기준으로 보이는 낯선 경험을 할 수 있다. 이것은 역설적으로 백인만이 보편적인 인간 외형의 기준이었음을, 그에 반해 흑인, 아시아인, 히스패닉 등의 비백인 인종이 미디어에서 얼마나 타자화된 채 전시되었는지 역설적으로 증명하는 것일 테다. 흑인과 아프리카 문화를 존중의 관점에서 재현하는 것은 당연한 태도이지만, <블랙팬서>는 2018년에 이르러서야 이들의 문화를 주체적으로 재현하였다. 이로써 새로운 아름다움을 맛보는 즐거움은 관객의 몫이 되었다.



흑인과 아시안의 관점에서 재사유하는 베트남전, <Da 5 블러드> (2020)

 <Da 5 블러드>(2020)을 보다 보면, 백인과 아시안의 관점에서만 사유되었던 베트남전을 흑인의 관점에서 재사유할 수 있게 된다. 영화는 젊은 시절,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네 명의 흑인 참전 군인들이 분대장의 유해와 숨겨둔 황금을 찾기 위해 현대 베트남에 돌아오면서 시작된다. 영화에서 '숨겨둔 황금'은 베트남 전쟁이 돈 때문에 벌어진 더러운 전쟁이었음을 상징한다. 영화 내에서 참전 군인들은 베트남 현지인과 갈등하며 흑인 또한 백인이 일으킨 전쟁에서 총알받이로 희생된 피해자였지만, 동시에 베트남인들을 학살했던/할 수 있었던 가해자였다는 사실을 맞닥뜨리고 만다. 이렇듯 영화는 인종차별에 있어 흑인만이 피해자였다는 정체성 정치를 넘어서, 국민국가, 인종, 계급이 교차하는 국제 질서에서 흑인과 아시안이 가해자와 피해자로 만나야 했던 베트남 전쟁에 대한 성찰로 나아간다. 그곳에서 완벽한 피해자도, 가해자도 될 수 없는 분열된 정체성에 대한 흑인 참전 군인의 고뇌는 참전 군인 중 하나인 폴의 폭주로 상징적으로 드러난다.

 당연하겠지만, 여기에서 <블랙팬서>와 <Da 5 블러드>에 나오는 흑인들은 불쌍하지 않으며, <24>의 재키 로빈슨처럼 뛰어난 재능과 완벽한 인성을 갖추지 않았다. 완벽하지 않은 존재인 그들은 <42>의 재키와 달리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얻기 위해 완벽함을 증명할 필요가 없다. 차별 자체가 부당한 것이기 때문이다.


남성중심 서사의 한계

 물론 공통적으로 그의 필모그래피들은 유치할 정도로 남성중심적이다. <42>에 나오는 유일한 여성 인물은 재키 로빈슨의 아내 역할인데 영화에서 그녀의 역할은 재키와 결혼하기, 경기 관람, 임신, 육아, 힘들어하는 재키 위로하기, 마지막에 재키와의 키스 등이 전부이다. <블랙팬서>에 이르러 여성의 캐릭터는 그나마 주체적으로 발전하는데, 와칸다 왕국의 공주 슈리는 과학자로서 트찰라의 수트와 무기 등을 개발하고 여성인 오코예는 가장 강력한 전사이다. 이렇듯 고유한 능력과 서사를 지닌 그녀들이지만, 블랙팬서라는 히어로의 후보가 될 수는 없다. 블랙팬서가 될 수 있는 후보는 그의 남성 사촌, 킬몽거뿐이다. 게다가 <Da 5 블러드>에서는 비중 있는 여성인물을 찾아보기 힘들다.

 채드윅은 성폭력 가해 전력이 있는 네이트 파커 영화감독의 영화 <국가의 탄생>을 지지해달라고 연설한 바 있다. 그러나 그의 의견대로 창작자의 '과거'(실제로 그는 이렇게 말했다)와 별개로 영화의 작품성에만 집중하려 하더라도, 네이트 파커의 영화 <국가의 탄생>에서 여성을 대하는 방식은 너무나 졸렬하다. 영화 내에서 여성들의 역할은 거의 전무하며, 굳이 중요한 사건이 있어봤자 여성 캐릭터의 잔혹한 성폭력 피해가 남성 주인공을 각성시키는 동기로서 소비될 뿐이다. 또한 과연 채드윅의 주장대로 창작자와 작품을 별개로 볼 수 있을까? 이것만은 분명하다. 솔로몬이 한 명의 아이를 두고 다투는 여인들에게 해결책으로 아이를 둘로 나누는 것을 제시하지 못했듯이, 창작자의 재능을 인정하는 것과 성폭력 가해 창작자를 사회적으로 용인하는 것이 분리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성폭력 가해 창작자에 대한 인정은  정도 (젠더)폭력은 사회에 용인될  있다고 인정하는 것과 분리될 수 없다. 무엇보다 왜 유독 남성 젠더폭력 가해자에 대해서는 작품과 그의 가해 경험은 별개의 것으로 봐야 한다는 옹호가 나오는지에도 의문을 갖을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몰젠더적인 흑인 서사 영화를 만드는 창작자들에게 묻고 싶다. 흑인 인권을 주제로 하면서도 젠더 관점 또한 잃지 않는 것, 주체적 여성 캐릭터를 등장시키는 것이 그렇게나 어려운 일인가?


젠더 관점에서 다시 쓰는 흑인 서사, 씨유 예스터데이(See You Yesterday) (2019)

꾸준히 흑인의 인권에 대한 관심을 잃지 않았지만 남성중심적이라는 한계를 지울 수 없던 그의 필모그래피들을 다시 보며,  영화 <씨유 예스터데이(See You Yesterday)>가 인종 차별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잃지 않으면서 젠더 관점에서도 훌륭하게 이야기를 풀어냈던 것이 떠오른다. 참고로 이 영화는 채드윅의 출연작이 아니다.

 영화 <씨유 예스터데이(See You Yesterday)>는 현대 미국에서 젊은 흑인 남성들이 경찰 총격에 의해 사망하는 것을 문제적으로 다루고 있다. 충분히 남성 중심적으로 만들어질 수 있는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사망한 흑인 남성의 '여동생'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그러한 한계를 가뿐히 뛰어넘었다. 흑인 여학생 c.j.는 백인 경찰의 총격으로 사망한 오빠를 구하기 위해 과학기술 실험을 통해 시공간을 뛰어넘는 시도를 한다. 하지만 수많은 순간 이동 시도에도 불구하고 늘 어이없게 실패하는데, 영화는 그 원인으로서 촘촘하게 짜인 미국 사회의 인종차별을 제시한다. 이렇듯 <씨유 예스터데이(See You Yesterday)>는 흑인 인권을 주제로 하면서도 여성을 성역할 고정관념에 가두지 않고(<42>), 지우지 않으며(<Da 5 블러드>) 충분히 주체적 캐릭터로서 극을 전개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씨유 예스터데이(See You Yesterday)> 는 흑인 서사를 다루느라 젠더 관점까지 담을 수 없다는 변명이 변명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꾸준히 흑인서사 영화를 했던 채드윅의 필모그래피를 따라가다 보면 흑인서사를 다루는 영화 자체도 진보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의 필모들은 언제나 유치할 정도로 남성중심적이라는 한계를 지닌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래서 더 보고 싶은 배우였다. 흑인뿐만 아니라 아시아인 또한 전쟁의 피해자였음을 직시하며 인종차별에 대한 사유를 확장해가는 그의 필모그래피는 채드윅 보즈먼 개인의 인권 감수성뿐만 아니라 영화를 만들어내는 이 사회의 인권 감수성 또한 성숙했음을 증명한다. 그렇기에 살아있었을 그는 변화하는 세계와 부딪혀가며 스스로 남성중심적이라는 한계를 맞닥뜨리거나, 비판받으며 고쳐나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변화하는 그를 더 이상 볼 수 없다. 그렇기에 그를 비판적으로 기억하며 추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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