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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인 Nov 12. 2021

기억 저편의 세계를 대하는 예의

김소영, 『어린이라는 세계』(사계절, 2020)를 읽고 (ebook을 참


  존재하되 미처 존재하는지 몰랐던 어느 존재는, 기필코 새로운 세계로 직조되어 결국 발견되고 만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대부분의 물리적・사회적 요소가 어른 중심적으로 구성된 사회다. 어린이 영화를 상영함에도 어른의 몸에 맞춰 만든 극장 좌석, 그렇기에 발이 땅에 닿지 않아 다리를 움직이는 아이를 짜증스러워하는 어른들. 그렇기 때문에 어린이라는 세계는 겸허한 존중의 관점에서 관찰해야만 발견할 수 있는 어느 세계다. 그래서 어른이 되고 만 시민들에게 너무나 낯선 공간이다. 어린이의 세계를 발견하고 어린이를 대하는 예의를 다정하게 알려주는 진중함, 김소영의 <어린이라는 세계>가 더없이 소중한 이유다.    


      

1. 어린이는 왜 세계인가.     

  어린이의 공간은 늘 ‘어린이의 세계’로 빚어진다. 어른과 어린이의 공간이 차별적으로 구획되기 때문이다. 먼저 노키즈존처럼 노골적으로 어른과 어린이의 공간이 분리되기도 한다. 어린이에 대한 혐오와 차별 때문이다. 동시에 어른 중심적인 공간에서 어린이도 함께 그 도시를 즐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린이의 공간은 놀이터, 학교, PC방 등으로 제한된다. 

언니, 내가 독일 갔을 때 낯설었던 게 뭔 줄 알아? 길에 장애인이 있다는 거야.


  비장애인과 장애인, 어른과 어린이가 함께 다니는 선진국과 달리 한국의 길엔 어린이가 없다. 장애인도 없다. 따라서 대부분의 어른은, 그리고 글을 쓰는 나조차도 어린이를 많이 접하지 못했고 그 점에서 우리는 어린이라는 세계가 낯설다.

  나는 이 점에서 어린이라는 세계를 가시화한 김소영의 글이 힘을 지닐 수 있다고 생각한다. 보이지 않았던 세계, 기억 저편에 묻어 두었던 세계, 더 이상 어린이가 아니기에 어린이의 타자화를 모른 척할 수 있는 어른의 특권, 김소영의 글은 이 모든 것을 파헤친다. 그리고 기어코 ‘어린이라는 세계’를 발견해내고 만다.  

        

2. 어른은 왜 상처받지 않는가

  인간이라면 필연적으로 ‘어린이’라는 시기를 경험한다. 그러나 어린이라는 이유로 타자화되었던 경험은 어른이라는 신분증을 발급받는 순간, 이내 잊혀지고 만다. 어린 시절의 경험을 기억 저편 어딘가에 넣어둔 채, 어린이라는 존재로 살아가며 느낀 불편함을 쉽게 잊어버릴 수 있는 이유가 있다. 어린이를 타자화해도 지금의 나는 어린이가 아닌지라 상처받지 않을 수 있어서다. 어린이라는 시기가 단순한 시간적 기간이 아니라 사회적 범주와 관련된 '위치'인 이유다.     


부끄럽지만 인정해야 하는 사실이 한 가지 더 있었다. 그동안 나는 불편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격차에 대해서 고민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이 세상에 그런 영역이 얼마나 많을까? 어린이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민 등 여러 소수자들에 대해 내가 얼마나 무지하고 둔감했는지 깨닫게 된다. (ebook을 참조함) 

  

  ‘노키즈존’이라는 공간이 있다. 말 그대로 ‘노키즈존’. 어린이는 들어올 수 없는 공간이라는 뜻이다. 김소영은 노키즈존과 관련하여 질문한다. ‘세련된 노인’, ‘깨끗한 남성’ 등은 선별하지 않으면서 왜 유독 어린이에 있어 얌전함을 강조하고 끝내 입장조차 거부하는가? 소수자로서의 어린이는 과연 어른들과 동등한 시민권을 누리고 있는가?      

‘얌전한 어린이’를 선별해서 손님으로 받아들이겠다는 것 자체가 혐오이고 차별이라는 데에 어떤 논의가 더 필요한 걸까? 돈을 내고 사용하는 공간에서조차 심사를 받아야 하는 것이 차별이 아니면 무엇이 차별인가. ‘세련된 노인’이나 ‘깨끗한 남성’, ‘목소리가 작은 여성’만 손님으로 받는다고 하면 당장 문제라고 할 것을, 왜 어린이는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차별하는 걸까? 중요한 차이가 있긴 있다. 그들에게는 싫은 내색을 할 수 없고, 어린이 그리고 어린이와 함께 있는 엄마에게는 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바로 약자 혐오다.(ebook을 참조함)      

  김소영이 관찰한 어린이라는 세계는 충분히 배울 시간이 필요하다. 어린이들은 공공장소에서 조용히 하기, 타인의 물건을 함부로 만지지 않기 등의 낯선 규칙을 익히는 동안, 다소 미숙한 행동을 이해받는 충분한 경험과 시간이 필요하다. 어린이라는 세계에 있어 어른의 몫을 발견할 수 있는 지점이다. 바로 기다려준다는 것.          

3. 어른은 어떻게 어린이를 대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나의 동료 시민이자 동시에 배워나가는 존재인 어린이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우리는 어떻게 어린이에게 무례를 범하지 않을 수 있는가? 김소영에 의하면 어린이를 대하는 예절은 특별하되 평범하다. '같은 듯 다르게' 대하는 것이다.


“주변에 어린이가 없어서 어린이를 잘 몰라요” 하는 분들을 종종 만난다. 그러면 나도 여전히 어린이가 어렵다고 솔직히 대답한다. 그리고 어린이에게 존댓말을 쓰는 데서 시작해 보라고 권한다. 이웃 어린이와 마주쳤을 때, 조카의 친구를 소개받았을 때, 어쩌다 어린이 친구를 사귀는 행운을 얻었을 때 꼭 존댓말로 관계를 시작하라고. 말을 놓는 게 친해지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은 철없는 어른의 생각이다. 다른 사람이 우리에게 그렇게 말할 때의 기분을 생각해 보면 될 것이다.(ebook을 참조함)      


  처음 만난 동료 어른을 대할 때, 우리는 그의 매력을 이유로(귀엽다는, 혹은 예쁘다는 이유로) 반말로 대하지 않는다. 낯선 관계에서 상호 존중은 전제이기에 그리고 어른이기에 존댓말은 당연하다. 우리는 잊고 있었다. 그리고 배우지 못했다. 어린이도 우리와 마찬가지의 수평적 존중을 반가워하는 동료 시민임을. 김소영은 이렇듯 어린이를 대하는 기본적인 태도가 너무나 당연한 존중의 태도임을 알려준 후, 동시에 어린이를 대하는 특수성 또한 고려해야 함을 알려준다.  

   

내가 우산을 씌워 주면 겁먹지 않을까? 반대로 나 때문에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허물어지면 어떡하지? 그런데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더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일단 우산을 씌워 주고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요 앞에서 독서교실을 하는 선생님이에요. 어린이, 어디까지 가는지 모르지만 저 가는 데까지라도 우산 같이 쓰면 어떨까요?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중략) “저한테 집은 알려 주면 안 되니까 집까지 데려다주지는 않을게요. 대신에 길 건너서 ○단지 입구까지 같이 가요.” (중략) 나는 그길로 돌아서서 집으로 왔다. 비를 조금 맞았지만 어린이는 덜 불안했을 것 같고, 나는 어린이가 젖은 것이 안쓰러웠지만 조금 뿌듯했다. 거짓말이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너무 좋아서 목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ebook을 참조함)     


     

나가며기억 저편의 세계는 어떻게 현재의 세계가 될 수 있는가

  어린이라는 세계는 어른 중심적인 세계에서 아무도 몰랐던 낯선 세계였다. 그러나 김소영은 조심스러운 존중의 관점에서 이 세계를 발견해냈고 어린이라는 세계에 대해 다정하고 진중하게 해설해 주었다. 어쩌다 우리가 어린이라는 세계를 잊게 되었는지, 그러면 어떻게 어린이를 대하면 되는지. 

  김소영을 통해 만난 어린이라는 세계는 기꺼이 초대되고 싶은 몽글몽글한 공간이었다. “이 책이 선생님한테 있잖아요? 하지만 다 똑같은 책이어도 이 책‘앤’ 제 마음이 있어요”라는 다정한 속삭임이 놓인 공간, ‘존중’이라는 단어는 아직 몰라도 ‘서로 몸이 달라도 같이 놀자, 반겨 주자’라고 말하는 공간. 즉 마음과 마음이 만나는 공간. 

  나는 이 세계가 더 이상 낯선 세계가 아니라 친숙한 공간이었으면 한다. 어린이의 따뜻한 말도, 미숙한 행동도, 시끄러운 울음소리도 어른과 어린이의 공간에서 뒤엉켜 만났으면 한다.    

 

  김소영의 <어린이라는 세계>를 만난 뒤 생각해 본다. 어린이를 동료 시민으로 여기는 세계, 어린이를 존중하는 세계. 그 세계가 바로 지금 우리의 세계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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