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옥반지

50 넘으니 예쁜 것도 생기네요.

by lotus

작년 여름에 쓴 글이라 지금의 분위기와 조금 다릅니다...


나는 이제까지 엄마의 옥반지를 은행 금고에 넣어둔 줄 알고 지내왔었다. 그러다 우연히 화장대 서랍 깊은 곳에 빨갛고 촌스러운 상자를 발견한 후 '헉, 이게 여기 있었네...'하면서 열어보았고 예전 기억대로 거기엔 엄마의 옥반지 3개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왜 이걸 금고에 넣어두지 않았지? 하는 생각에 이어 찾은 김에 한번 껴 볼까 하고 그중 2개를 손에 끼워 보았다. 생각보다 시원해 보이고 예뻤다. 내가 할머니처럼 옥반지를 끼게 될 줄이야...


요즘같이 더운 날에도 외출 할 때 악세사리를 2가지 이상 하는 나지만, 요즘은 항상 끼던 결혼 반지와 손가락 사이에도 땀이 찬다는 걸 알고 결혼 반지도 잘 끼지 않았다.

근데 왠지 한복과 갖춰 입어야 어울릴 것 같은 엄마의 옥반지를 요 며칠간은 주구장창 끼고 돌아다녔다. 반바지에 민소매 입고, 플리츠 원피스에 쪼리 신고 잠깐 나갈 때도 껴 보았다.

이야~ 이건 이상하게도 땀이 덜 찬다. 손가락과 반지 사이의 찝찝함이 덜하다. 나는 원래 더위를 엄청 타고 땀까지 많이 흘리는 체질이라 여름을 무척 싫어하는데 이상하게도 엄마의 옥반지를 끼고 다니면 조금 시원한 느낌이 든다. 이건 느낌만이 아니라 실제로 옥이란 재질이 주는 차가운 성질 때문인 것 같다. 포털에서 찾아보니 옥은 2가지 종류인데 그중 하나인 연옥은 각섬석의 일종이고 경옥은 알칼리휘석의 일종이란다.


어쨌든 엄마의 옥반지를 처음 우리집에 갖고 올 땐 이거 말고도 엄마의 유품 몇 가지가 더 있었다. 낡은 귀걸이 세트(알고 보니 저렴이라서 얼마 안되어 변색되어 버리게 되었다)와 엄마가 쓰던 가방, 그리고 잠옷 등 당장 아파트 의류함에 버려도 괜찮을 것들이었지만 왠지 바로 버리고 싶지 않아서 쇼핑백에 꾸역꾸역 들고 집에 왔던 것이 어느새 햇수로 10년째. 엄마 잠옷은 구멍나고 카라가 늘어날 정도로 입다가 결국은 버렸다.


엄마가 갑자기 돌아가시자마자 혼란과 슬픔 속에서 장례를 치르고 우리는 엄마 집에서 엄마의 물건을 정리했다. 딸이 취업해서 사 줬다고 동네방네 자랑했던 엄마의 코치 가방을 열었는데 작은 포켓에서 나온 수첩, 단정히 접어둔 손수건을 보고는 갑자기 또 울컥했던 기억이 있다. 울 엄마가 이렇게 단정한 사람이었어. 난 진짜 왜 이렇게 엄마를 하나도 안 닮았지?


옥반지를 9년 전 갖고 올 때는 그냥 엄마에 대한 기억으로만 들고 왔다. 근데 이제 난 그 엄마의 기억을 이 무더위에서 다시 느낀다. 기분이 묘하고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