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좋을까
나는 명절이면 어김없이 KTX를 타고 고향으로 간다. 좌석이 모두 매진되어 입석으로 가는 한이 있더라도 나는 버스보다 기차를 절대적으로 선호한다. 시속 300km/h로 달리는 KTX가 버스보다 당연히 빠르기도 하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 바로 기차에는 있지만 버스에는 없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화장실이다. 나에게 차량 내 화장실의 존재 여부는 마음의 평안, 좀 더 극단적인 표현을 빌리자면 생사와 관련된 문제다. 차를 타기 전에 무엇을 먹었는지 혹은 차 안에서 무엇을 먹는지에 따라 몸과 마음에 전쟁과 평화가 여러 번 찾아온다. 아마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을 법한 일이며, 어느 술자리에서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그냥 웃고 지나가는 안주거리용 에피소드일지 모른다. 하나 나에게는 마치 트라우마같이 남아 삶의 습관을 바꿔놓았다. 어느 유행가의 노랫말처럼 습관이라는 게 얼마나 무서운지는 잘 알고 있었지만 이런 식으로 몸소 체험하니 확 와닿는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이십 대 중반의 나이였던 것 같다. 고속버스를 탔는데 출발한지 얼마 되지 않아 비둘기를 잡아먹었는지 뱃 속에서 꾸륵꾸륵대는 소리와 함께 임산부의 진통처럼 짧은 간격을 두고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통증으로 자리에 앉은 채 진땀을 빼다가 달리는 버스를 멈춘 적이 있다. 뱃 속의 장기들이 전날 마구 퍼부은 술과 안주들을 괘씸하게 여겨 나에게 복수를 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것도 완벽한 타이밍에 말이다. 창피함을 따질 겨를없이 어서 빨리 버스 기사님께 나의 변고를 알려야 했다. 나는 괄약근 조임에 모든 힘을 쏟고 있었는데, 하필이면 버스 중간 즈음에 앉아 있었기에 흔들리는 버스에서 기사 아저씨가 앉아 있는 운전석까지 한발 한발 내딛는 걸음은 인류에게는 하찮지만 한 인간에게는 위대한 도약이었다. 지금도 그때의 그 아슬아슬함만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괄약근에 힘이 빠지는 듯하여 다시 한번 정신을 차리고 조여본다. 그렇게 힘들게 운전석까지 접근한 나는 테러범의 버스 인질극처럼 기사 아저씨한테 협박조로 빨리 버스를 휴게소에 세우라고 이야기했다. 그래도 이성은 남아있었는지 달리는 고속도로 위에 당장 세우라는 무리한 요구까지는 하지 않았으니 나름대로 최소한의 체면은 차린 것 같다.
앞서 주절이 적어 놓은 우스운 연유로 나는 버스보다 기차를 더 좋아한다. 그렇다고 버스가 매력이 없는 것은 결코 아니다.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어로 휴게소를 넣어보면 연관 검색어로 휴게소 맛 집이 나오고 각 휴게소 별로 파는 이색 음식들이 무수히 쏟아진다. 분명 휴게소에 들려서 먹는 음식들(특히 나는 호두과자를 좋아했다)은 정말 버스만이 갖고 있는 매력일 뿐만 아니라 휴게소에 가기 위해서라도 버스를 타야 한다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호두과자 한 봉지 먹자고 사선을 넘어갈 생각은 추호도 없다. 휴게소에서 먹는 호두과자가 내 인생에 또 있으려나. 목이 막히지만 눈물의 작별을 해야겠지.
먼 길은 마음을 편안히 먹은 상태에서 여유를 갖고 가야 한다. 그래야지 고불고불 오르내리는 산길에서도 녹음이 보이며 엉덩이가 배기는 것도 휴게소에서 먹을 맛나는 음식을 생각하며 참을 수 있고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목적지에 도착하리라는 믿음도 생긴다. 불안과 초조함은 진땀을 흘리게 만들고 호흡도 가빠지면서 눈앞을 흐리게 만들기 일쑤다. 갈 길이 먼데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길을 나서기 전에 혹은 길을 가는 중간에 있더라도 평온한 마음을 잃지 않도록 애써야겠다.
왠지 오늘은 시집 한 권 들고 화장실에 앉아 시 한 구절 읽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