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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석빈 Aug 14. 2024

TO THE FAR EAST IN ASIA (EP11)

Guarda

한량한 추위만 도는 객주에  주모는 덕신이 아버지 쪽으로 더 달라붙는다. 덕신이 아버지는  흠칫 놀라는 표정이지만 싫은 눈치는 아니다.


 ""덕신이 아버지, 이리 오셔서 막걸리 한잔 더 하이소."

" 진주목까지 가야 하는데 막걸리를 더 마시라꼬? 이 여편네 무슨 속셈이 있노."


 아버지는 못 이기는 척하며 탁주 한 사발을 더 받아 든다. 주모는 작은 종이를 접어  덕신이 아버지에게 건넨다.

" 이게 뭐꼬?"

""진주목 관기방에 있는  화심이라는 기생 있을낀데. 분 칠하는데 쓰는 꽃가루라카던데 나도 잘 모르겠다. 전번에 어떤 양반이 부탁했던건데 전달해도."

 

아버지는 의심쩍어 열어보려 하더니  주모가 손사례를 친다.

"어히, 그거 청나라에서 온 거라카데!"

"그냥 전달만 해주면 되잖아."

"안된다, 나도 관기들 직접 만나기 힘들다 아이가!"


" 덕신아범, 우리끼리 이러면 안된다 아이가. 토끼 구워 먹는 거는 내가 먹어야 되는 거 아잉교?"

  아버지는 고기 먹는다는 생각에 좋아죽는 날 보며 물끄러미 본다.

"내가 그냥 공짜로 해달라 카는 거 아니잖아!"

엽전 꾸러미 닷냥을 줄에 꿰어 주모는 아버지 앞에서 흔든다.

"뭔가 있는기라. 뭔가가 있어."

"그냥 화심이라는 관기한테 주고 오면 되는 거 아이가."

"맞다, 그냥 주고 오면 된다."

"돈은 다녀오는 길에 줄끼다."


 아버지는 비린내 나는 토끼고기를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아부지는 왜 안 먹는데요?"

"덕신이 니나 먹어라."

"나는 토끼고기 별로 안 좋아한데이."


나는 국물하나 남김없이 시큼 내 나는 토끼고기를 다 먹어치웠다.


아버지의 얼굴에는 뭔  근심과 걱정이 교차한 듯 창호지 뭉치를 꼭 껴안고 발을 한걸음 한걸음 옮기고 있었다. 왠지 모를  불안함에 싸여있는 아버지의 뒷모습에 나도 빈지게를 매고 덜당아 불안함 걸음을 걷고 있다.


진주 시내는 한겨울의 추위와 배고픔으로 인해  사람들이 힘없고  외지인에 날카로운 경계를 보내는 시민들로 북적였다. 사람들의 얼굴에는 절망과 분노가 서려 있었고,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긴장감이 도시에 감돌고 있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아버지와 나는 앞만 보고 저잣거리를 걷고 있다. 어느덧 눈은 녹아  짚신에는 진흙더미로 다리가 천근만근처럼 느껴졌다.


"아부지, 사람들이 왜 이리 우리를 째려보노?"

덕신이 물었다. 그의 눈에는 호기심반 두려움반 가득했다.

아버지는 귀찮다는 듯이 대답한다.

"덕신아, 사람들은 배고프고 날씨도 추워서 지쳐 있다 아이가. 먹을 것도 없고, 따뜻한 데도 없으니, 그냥 쳐다봐도 우리가 보기엔 우리를 잡아먹을라 하는 거처럼 보이는 기라. 갈 길 바쁘다. 어서 가자."


 부자는 2시간 남짓  길을 따라 걷다가 진주목 관아가 보이는  길목에 들어섰다.   겨울에 진주목은 차가운 바람과 함께 고요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두꺼운 기와지붕 아래서 눈에 덮여 있었고, 마당에는 눈이 소복이 쌓여 있는 눈을 관노들이 열심히 치우고 있었다.

  진주목대문 앞에는  포졸 2명이 추운 겨울에 사시나무 떨듯 서있었고 대문 너머로 넓은 마당이 펼쳐져 있는 것이 보였다. 

    

  바깥의 추위는 여전히 추웠으며 아전들은 두꺼운 옷을 입고, 손을 호호 불며 이리저리 바쁜 듯이 서성거렸다. 아버지는  추위에 떨고 있는 문지기 앞으로 다가갔다. 그들  역시  아버지를  날카로운  눈으로  위아래를 훑었다. 그들이 보기에  허름한 옷차림에, 얼굴은 추위로 인해 붉게 상기된 아버지를  보며  귀찮은 듯 물었다


"무슨 일로 왔노?"


"이방 나리 좀 뵈러 왔심더."


"지게 위에 있는 하얀 거는 뭔데?"


"이방 나리 드릴 창호지입니다."


경비병들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그를 바라보았다. "누구 명령인데? 그런 소리 들은 적 없데이. 여기는 아무나 들어올 수 있는 데가 아이다."


아버지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난처한 듯 나를 바라보셨다. 그때 군불을 때던  나이가 있는 문지기가  아버지를  쏘아붙이던 문지기에게  소리친다


  "부랄 다 얼어붙겄다. 적당히 좀 해라. 진서방 왔나… 간만이구먼. 이 추운 날씨에 이곳까지 어떻게 온겨? 자네 덕분에 우리 집 겨울 채비는 잘 하였네"


아버지는 그제야 화색이 돌며

 " 형님. 안녕하셨습니까? 이방나리 창호지 드리러 왔습니다"


 그제 서여 문지기는  움츠린 몸을 피며  

"이방 놈은 부엌에서 전부치는 아낙내와 희희낙락 거릴 거야. 저기 뒷문으로 가서  내 이름 데고 싸게 싸게 다녀오소"


그제야  가로막던  문지기는 아버지에게 길을 터준다.


12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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