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지방에는 서리가 끼어 잘 열리지 않는다. 굳어버린 다리를 들어 힘겹게 문을 여니 교방을 관리하는 관노비가 싸리 빗자루를 들고 엉거주춤 눈을 쓰는 척을 한다
"죽은 줄 알았더니 살아 있구먼."
"화심 애기씨, 끼니 때문에 온 게 아니구, 누가 찾는구먼. 교방에 기녀들한테 창호지 대는 자인데 자네를 찾는구먼. 자네도 창호지 갖다 쓰고 입딱은 거 있나?"
생전 모르는 소리를 하지만 잠시 느낌이 다른 것이 느껴져 관노비 뒤쪽 평상을 슬쩍 쳐다본다. 열대여섯 살 먹은 사내 아아와 땅바닥에 구른듯한 차림에 남정네가 내쪽을 쳐다보고 있다
날씨는 벌써 어두워져 인적이 드문 교방 앞마당에는 그 흔한 등불조차 없어 어둠이 깔려 있었다. 눈발이 휘날리는 밤이어서 그 사내들은 눈 속에 서 있는 나무처럼 얼어붙은 얼굴로 그 자리에 굳어 있었다.
"어이 진가놈아, 얼른 와. 다른 놈들 보기 전에 싸게 오라니까."
한쪽다리를 절면서 한 사내가 눈 덮인 계단 위를 힘겹게 올러온다. 짧은 숨을 내쉬며
땀에 의해 그의 몸에서는 흰 연기가 품어 오른다
"화심이... 아니 화심 아기씨여?"
"난 화심은 아니지만 여기 사람들이 그렇게 부른다오."
"이 밤중에 무슨 일로 저를 찾아오셨소?"
"고갯길 주막 주모가 이걸 전달해 달라 그래서 왔소."
그 사내는 주머니에서 곱게 싼 종이 뭉치를 꺼내 나에게 준다
"무슨 분칠 할 때 쓰는 꽃가루라는데 날 잘 모르겠구먼."
"이걸 그 왜 주모가 나한테 준단 말입니까?"
나는 당황스러움 반 그리고 기대감 그리고 불안감이 동시에 교차하였다
"난 모르겠구먼. 난 전달하였수다."
계단 밑에서 관노비가 눈을 쓰는 둥 마는 둥 하며 소리를 친다
" 진가놈아. 어서 가게. 나 문 닫아야 하니께"
"덕신아, 덕신아 어디 있노. 이놈아, 어서 지게 지고 가자."
"아부지, 갑니더. 나 부엌에서 동치미 국물 좀 얻어먹었심더."
문밖에서는 남정네 소리로 씨끌번쩍하다. 곰곰이 앉아 생각을 해본다.
누가 나에게 이 종이 뭉치를 주었는가?
이러한 구렁텅이에서 날 구원해 줄 수 무언가가 있을까?
종이 뭉치를 조심 스레 펼쳐보았다.
안에는 약간의 흙과 종이 안에 설단축시라고 한글로 휘갈겨 적혀 있었다
" 설단이 가 설단이 가 여기에 있었구나"
얼어붙은 얼굴에 터져버린 눈물은 주체할 수 없이 내 볼을 흘러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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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