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휴가를 내고 가족 여행을 다녀오는 길이었다. 마지막 날 오전, 공항에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와중에 회사의 워크챗(메신저)으로 동료가 말을 걸어왔다.
“OOO님, 휴가는 잘 보내고 계신가요? ㅠㅠㅠㅠㅠ”
순간, 제주에서 보내고 있던 휴가의 상황이 떠올랐다. 2년 전쯤이었을 것이다. 모처럼 찾은 제주의 여름휴가는 무척 즐거웠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지만 나도 모르게 정말 푹 빠져서 휴가 자체에 몰입한 상황이었다. 발 닿는 곳, 먹는 것 하나하나 소중한 휴가의 추억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곶자왈에서 해설사의 재미난 해설을 들으며 더운 여름 햇살을 피하고 있던 그때, 무심하게 카카오톡이 울렸다. 회사 동료의 연락이었다. 그는 내가 휴가 중임을 알고 있었고, 휴가 전에 요청했던 업무의 상황이 바뀌어서 굳이 급하게 할 필요가 없다는 말을 전해왔다. 그와 더불어 한두 가지의 잡다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끊고 싶었지만 일단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는 받아 주었다.
딴에는 혹시라도 내가 회사 일을 걱정하며 휴가를 보내고 있지는 않을까 싶어 배려하는 마음의 문자였겠지만 실은 정말 그 반대였다. 휴가 중임에도 급하게 꼭 처리해야 하는 상황의 일이었다면 그의 연락이 무척 반갑고 고마웠을 일이다. 숙제를 안고 떠나는 상황이 반갑지는 않지만, 어쩌면 그게 걱정되어 내가 계속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었을 수 있다. 돌아가서 챙겨봐도 무방한 상황에 휴가임을 알면서도 말을 건 동료의 지나친 배려가 되려 진정한 휴식에 빠져 있던 나를 각성시키고 말았다. 이후에는 머릿속 한편에 계속해서 ‘회사’, ‘업무’, ‘할 일’이라는 꼭지들이 희미하게 자리 잡게 되어버렸던 것이다.
흔히 회식은 업무의 연장선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회사를 다니는 동안의 휴가 역시 그런 것일까? 궁금해서 찾아보니, ‘휴가는 근로제공의무를 면제’라고 한다. 회사에 근무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휴식의 기간인 만큼 근로자가 업무를 돌봐야 할 의무가 없다는 뜻.
“연차로 대표되는 휴가는 근로기준법에 의해 근로제공 의무가 면제되는 날을 말한다. 근로제공 의무가 없으므로 이 기간에는 당연히 업무 지시를 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1차적으로는 휴가라는 점을 재차 밝히고 이를 거부하는 것이 좋다.” (https://www.newsis.com/view/NISX20230804_0002402324)
물론 사회생활이라는 것이 법적으로 정해진 것을 그대로 따르기만 하는 것은 아닌 상황이 생기기도 하고, 어느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상황의 긴급한 일이라면 휴가 중에도 잠깐 연락을 받을 수는 있지 싶다. 그런 건 이해하고 필요한 것을 처리해야 하지 않겠나. 어쨌든 다시 처음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공항에서 받은 연락의 내용 상 급한 것이 아니라 앞선 제주의 상황처럼 나에게 상황을 전달해 주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임을 직감했다 (그날 아침, 상무님들의 회의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슨 얘기가 나오긴 했을 텐데 당장 의사결정하거나 긴급하게 처리할 주제는 분명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돌아와서 확인해 보니 예상대로였긴 하다).
제주에서는 바로 끊지 못했던 행동이 휴가를 망쳤다는 기억을 갖고 있었기에 나는 보다 직접적으로 메신저에 답했다.
“아직 휴가 중입니다만.. 꼭 받아야 하는 메시지가 아니라면 내일 얘기하시죠”
고맙게도 그는 알겠다는 표시를 보내왔고 채 하루가 남지 않았던 소중한 휴가 역시 잘 보낼 수 있었다. 나중에 그와 이 일에 대해 얘기를 나눠보니, ‘저는 휴가 가는 바로 그날부터 회사 일에서 자유롭지 못했거든요’라고 말을 들었다. 워커홀릭인 건 알고 있었는데 막상 휴가 중에도 머릿속에서 업무를 지워내지 못하는 그가 안쓰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휴가든 휴일이든 언제라도 회사 연락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으니, 다른 사람도 그럴 것이라고 추측하지 말지어다. 또한 휴가 중에 혹시라도 회사 일 걱정하고 있을까 봐 노파심에, 그런 걱정 그만하라는 연락도 굳이 일부러 하지 말지어다. 달콤한 휴가의 마지막 날을 하마터면 아침부터 방해받을 뻔했던 에피소드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