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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y May 12. 2024

브랜드 화장품 회사를 다녀 보니.

회사 연구원에 대한 책을 낼 수 있었던 계기 중의 하나는 어지간해서 이에 관련된 글을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회사를 다니는 연구원들의 숫자가 많지 않아서는 아니다. 2021년 기준에 따르면 우리나라 연구개발 인력은 58만 명, 정규직에 해당하는 연구원은 47만 명으로 세계 5위 수준이라고 한다. 생각해 보건대 아마도 다들 열심히 일하는 것에 비해 자기 생각을 글로 남기는 데는 소홀해서가 아닐까 싶다. 그런 이유로 더더욱 동종 업계 연구원의 글을 만나면 반갑기도 하고 공감이 많이 된다. 아래 블로그는 네이버에서 이웃을 맺고 포스팅을 주로 눈팅하며 끄덕끄덕 하게 되는 곳. 나처럼 재미없게 글을 쓰지 않기에 매력적이기도 하고, 브랜드 회사가 아닌 OEM 업체의 상황에 대해 간접적으로 이해할 수 있어서 좋다.


https://blog.naver.com/destinc/223422717943


최근 그분의 포스팅 - 브랜드 회사 연구원에 대한 - 을 보고 느끼는 점이 있다. 

특히 (상대적으로) 제형 개발에서 많이 배울 수 없다는 것에 대해 나름대로 해석해 본다. 기본적으로 제형 연구원 관점에선 다양한 제품과 카테고리를 경험해 볼 수 있다는 측면에서 위탁생산 업체에서 일해 보는 것이 주는 장점이 명확해 보인다. 그녀의 포스팅에도 언급되듯 브랜드사에서 출시하는 제품이 많이 줄었다. 예전에는 다양한 이유로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제품이 있으면 일단 만들었다. 국내 시장 중심으로 성장하던 때에 유통까지 꽉 잡고 있으면 사실상 거의 모든 시장을 가져간다고 봐도 무리가 없을 정도였다. 2009년 기사를 보면, 아모레퍼시픽의 한국 시장 점유율이 37%라고 나온다. 이건 실로 어마어마한 수치다. 여하튼 그땐 만들고 팔면 시장은 다 우리 거.. 가 되는 시대였다. 

지금처럼 화장품의 경쟁이 치열할수록 브랜드의 가치가 갈수록 중요해진다. 그걸 지키기 위한 전략적인 선택으로 제품도 선별적으로, 그리고 공을 들여 개발한다. 하나의 제품을 설계하고 개발, 생산하는 과정에 다양한 부서가 관여하므로 OEM, ODM 업체의 제형 연구원과는 개발 속도, 다양성, 기회, 대응력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여유 있는 연구개발이라는 뜻은 절대 아니다. 브랜드 회사는 나름의 고충이 엄청나다는 것.. (하나하나 풀어서 쓰기엔 정말 복잡다단하고 회사 내부의 일이라 쓸 수가 없다).


대신 전통과 유산이 많은 브랜드 회사에 오랜 시간 다니면서 느낀 점은, 연구원으로써 단지 처방만 짜고 개발하는 것 외에 챙겨야 할 것이 많다는 것이다. 챙겨야 할 것이 많다는 건 그만큼 제형과는 별개로 회사라는 조직과 일에 대해 배우는 기회가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회사의 전략도 고민해야 하고, 스킨케어나 메이크업 카테고리의 트렌드 자체를 공부하며, 각 제품의 차별성을 브랜드 가치에 맞게 스스로 설계해야 한다. 소재 개발의 일부는 내부에서 독자적으로 진행한다. 이러한 일을 떠나 그녀의 말처럼 워라밸이나 연봉, 스스로 느끼는 자부심(?) 같은 부수적이지만 또 분명한 베네핏을 생각하면 브랜드사의 장점도 극단적이긴 하다.


한편으로 나처럼 바이오 기술쟁이는 ODM, OEM 회사에서 일할 기회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브랜드사에서는 주요하게 보는 일 중에 하나가 바이오, 피부 과학과 같은 연구 영역이다. 새로운 기술을 찾고 발굴하기 위해 피부에 대한 깊은 이해와 통찰이 요구되는 까닭이다. 그런 점에서 솔직히 말하면, 현재 다니는 회사를 벗어났을 때를 상상하면 나의 포지션에 대해 늘 고민이 떠나지 않는다. 그래서 일부러 전략이나 혁신 업무를 통해 역할을 더 확장하는 기회를 엿보기도 하는 것이다.


단순히 브랜드사 vs. 위탁업체를 놓고 누가 더 좋다 나쁘다를 단기적으로 판단하기는 어렵다. 자신의 장기 커리어를 살필 때, 브랜드사에서 일하는 것이 좋을지, ODM에서 일하는 것이 나을지는 가치 판단의 영역으로 가야 한다. 브랜드사에서 일하던 사람이 위탁생산 업체로 이동하고, 역으로 브랜드사에 취업하여 각자 가진 장점으로 활양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다만 막연히 ‘화장품 업계에서 일하고 싶어요’라는 대전제만 가지고 있는 분들에겐, 분명한 장단점을 알고 접근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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