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 않기로 결정할 용기에 대하여

by nay
생략은 첨가보다 용감하고 힘 있다.
무언가를 하기로 선택하기도 쉽지 않은 세상이지만,
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일은 극악무도할 정도로 어렵다.
<에디토리얼 씽킹, 최혜진>


이 문장을 읽으며, 나는 회사에서 ‘무언가를 더하는 것’보다 ‘하지 않기로 결정하지 못했던’ 순간들을 떠올렸다. 성과라는 목표에 집착하다보면 하지 않아야 할 것, 안해도 괜찮았을 일을 손에서 쉽게 놓지 못한다. 안하기로 결정하는게 필요하다는 걸 알면서도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한정된 자원과 시간 안에 성과를 얻기 위해서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선택에 따른 손실 위험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보니 이도저도 아닌 어정쩡한 위치를 고수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이때 필요한 건 하지 않을 것을 결정하는 과정의 정합성이다. 무엇이 정합성을 제공하는 것일까? 내가 책임지겠다는 용기인가? 시스템과 기준에 따라 정해진 룰을 따라 ‘사람 보다 시스템‘이 결정했다는 면책권인가? 잘 모르겠지만 직관을 따르는 무모함인가? 아니면 이도저도 아닌, ’일단 해 보고’ 알아보자는 도전 정신인가?


무언가를 하기로 하는 데에도,
무언가를 하지 않기도 하는 데에도 결심이 필요하다.
그리고 결심들이 모여 불가역적인 과거를 만든다.
<일에 마음 없는 일, 김지원>


우리가 그런 결정의 순간을 망설이는 건 이후의 과정과 결과가 어떻게 되든, 되돌릴 수 없다는 점 때문이다. 영화나 소설처럼 멀티버스가 존재하고 다양한 가능성이 있는 세계가 제공된다면 ’결정‘을 내리는데 그렇게 많은 고민을 쌓을 이유가 없다. 결말을 알고 보는 영화나 스포츠 경기처럼 맥빠지는 것은 없다. 비즈니스 세계의 짜릿함(?) 또한 지금 내가 이 순간에 내리는 결정 하나 때문에 달라질 미래의 모습이다. 우리는 학습을 통해 잘못된 의사결정의 결과가 얼마나 잔인한지 알고 있다.


무엇을 하든 말든, 일단 지금 당장 뭐라도 해야하지 않겠냐.. 라는 경영진의 (보이지 않는) 의중과 압박, 이걸 해도 딱히 다를 것 같지는 않을게 예상되는 현업 담당자의 (뻔히 보이는) 내색 사이에서 갈등이 생긴다. 어쩌면 때로는 이미 마음 속으로 ’하겠다’ 결정한 것을 시스템의 힘을 빌려 그럴 듯하게 포장할 때도 있다. 그러므로 차라리 ’하지 않기로 담대하게 결정’하는 용기가 어느 시점에서 발휘되어야 하는 건 아닌가 고민한다.


이미 이 프로젝트로 판이 크게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다. 그럼에도 “일단 한 번 해보자”, “안 하면 책임질 수 없지 않나”라는 말이 나오고, 그렇게 또 하나의 과제가 조용히 추가된다. 결과가 나쁘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고, 결과가 애매하면 경험이 남았다고 정리된다. 아무도 ‘왜 하지 않기로 결정하지 못했는지’는 묻지 않는다.


마침내 우리는 마법의 단어를 하나 쓰기로 한다. ‘전략적 결정’이라는 모호한 표현이 그것이다. 그래, 내 책임은 없어(낮아). 이건 다분히 회사가 정한 전략적인 관점에서 판단한거야. 치밀하게 설계된 전략의 방향 속에서 내려지는 의사결정도 물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많은 경우, 전략은 여러가지 내용을 다층적으로 포함하다보니 - 어쩌면 전략마저 ‘하지 않을 용기’를 포기한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되는 결론에 이르기 쉽다.


어쩌면 전략이란, 아무도 모르는 미래를 위해 무엇을 할지 정하는 말이, 아니라 무엇을 하지 않겠다고 감당하는 태도에 더 가까운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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