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제법 걸음걸이가 빠른 편이다. 남들과 함께 길을 걷기 시작하면 어느 순간 보통 맨 앞에 있다(길을 모르는 경우가 아니라면 말이다). 다리가 길어서 보폭이 크기 때문이 아니라, 급한 성격 때문일 것이다. 이런 성격은 추측컨대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듯하다. 언젠가 가족 여행에서 다른 가족들은 뒤로 하고 아버지 혼자 누군가에게 쫓기듯 우다다다 앞으로 전진했던 기억이 있다.
어쨌든 목표 지점이 있으면 제법 먼저 도착하는 것이 익숙하다. 빨리 도착하다 보니 시간을 버는 만큼 반대로 잃는 것이 있다. 주변에 있는 풍경을 여유롭게 관찰하지 못하기 일쑤다. 그럼에도 원래 가고자 했던 곳, 하고자 했던 목표를 이루면 되니까 여유 없었음에 대한 후회는 별로 없다. 아내는 나와 영 반대라서 이것도 봐야 하고, 저것도 봐야 한다. 운전 중에도 산만함이 느껴지는 그녀 덕분에 나도 불가피하게(?) 주변을 관찰하게 될 기회가 생긴다. 그녀는 나와 달리 아마 목적지에만 직진했다면 화를 낼 것이 분명하다. “아유, 너무 빨리 오느라 제대로 못 봤네”. 각자 목적지를 찾아가는 과정과 결과를 대하는 태도에서 오는 차이가 만족도를 다르게 만든다.
회사에서 일하는 속도는 내가 가진 빠르기의 개념을 능가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제법 빨리 일처리를 한다고 생각함에도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특히 임원들의 시계는 유달리 빠르게 흐른다. 회사에서 느림의 미학, 주변을 관찰하며 여유를 찾을 명분은 거의 없다. 이처럼 빠른 리더의 시간표는 항상 아랫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기 마련이다. 문제는 빠름과 함께 완성도가 있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내가 생각한 데드라인에 대해 남들은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최종 보고일이 1월 말이면, 1월 중순까지는 어느 정도 정리된 버전이 필요하고, ‘어느 정도’ 정리되기 이전의 초기 드래프트는 그보다 빨리 완성되어야 하며, 그 완성을 위해 지금 당장 뭔가를 꺼내 놓아야 하는 압박에 늘 시달렸다. 그나마 명확한 데드라인이 사전에 설정되면 나름대로 결과물을 준비할 계획을 세울 수 있어 다행이다. 갑자기 생기는 일은 도리가 없다.
어쨌거나 아무리 급하게 떨어지는 일도 군말 없이 하(려고 노력하)는데 사람인지라 화가 치밀어 오를 때가 있다. 충청도의 돌려 말하기 화법에 ’그렇게 급하면 어제 오지 그랬슈~’라는 게 있다더니만, 회사 일을 하다 보니 공감되는 일이 자주 있다. 그렇게 급하면, 지난주에 요청했어야지!
사실 알고 보면 분초를 다투는 급한 일도 아닌데, 괜히 관성적으로 빠르게 대응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 것은 아닌가 싶은 일도 있다. 이럴 때 합리적인 의심은 일을 시킨 사람을 향한다. 그/그녀는 분명 더더더 급한 성격일 것이 분명하다. 일을 시킴과 동시에 아랫사람들을 계속 닦달하니 이미 몸에 밴 습관으로 진행되는 것이다. ’(급하게 드려 죄송하지만) 이거, 언제까지는 답 주셔야 합니다’라는 멘트가 영 마뜩지 않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회사의 녹을 받는 입장에서 할 일은 해야지. 그저 나만의 속도 따위는 가볍게 무시받은 채, 다른 사람의 시간과 생각의 속도, 기대의 속도를 최우선으로 존중해야 하는 월급쟁이 신세가 한탄스러울 뿐이다.
그럼 나의 속도는 가볍게 무시한 채 하달되는 업무를 잘 처리하는 괜찮은 해법이 있을까?
자료를 정리하는 화려한 기법 대신 더 많이 고민하고 답을 얻기까지 숙고와 숙성의 시간이 필요할 것 같은데 말이다. 아마 일을 시키는 입장에선, 숙고와 숙성의 ‘절대적 시간’ 보다는 ‘밀도 있는 고민의 압축’을 더 기대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밀도가 높은 생각을 단시간에 완성도 있게 정리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결국 평소에 중요한 주제나 이슈에 대해 생각해 두는 것이 있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생각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누가 요구하지 않았더라도 완성된 형태의 문서로 만들어 본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미리 생각과 고민을 쌓아두는 것만으로도 훌륭하지만 정리된 형태로 만드는 것은 또 다른 일이라는 것은, 평소 글쓰기를 통해 익히 경험으로 알고 있는 사실이다. 글쓰기를 통해 ‘그거 있잖아’를 구체화/구조화하는 역량은 결국 회사 일의 속도와 완성도를 동시에 잡는 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