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지 않은 출장의 끝에서

by nay

가족과 해외로 떠나는 여행은 자주 있는 일이지만, 일 때문에 찾게 되는 타지 방문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얼마 전까지 근무했던 연구소는 다른 부문과 달리 기초 연구 성격이 강했던 터라, 출장이라 함은 ‘학회 발표’의 사유가 아닌 이상 외국 나들이는 어려운 현실이 되었다. 즉 연구 발표자가 아니면 출장의 자격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업무 성격 상 직접 발표할 일이 없기도 하고, 군색한 핑계 같지만 후배들에게 더 기회를 주는 게 맞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도 해서, 더더욱 업무 때문에 외국을 갈 기회가 사라졌다.


지난 몇 달 사이에 (말 그대로) 어쩌다 맡은 프로젝트가 점점 몸집을 키웠다. 결국 이 일로 실로 몇 년 만에 비즈니스 성격인 미국 출장을 다녀왔다. 어떻게 보면 진정한 비즈니스 출장이란 이런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아니, 해야만 했다. 중간에 미팅을 중재한 열정적인 투자자문사 덕분에 하루에 4-5개의 회사나 투자사와 미팅을 했다. 도시를 이동하며 업체를 만나고, 심지어 저녁 식사까지 함께하는 자리도 가졌다.


마지막 날, 출장자끼리 가진 저녁식사 자리. 출장을 함께한 본사 후배 동료가 기분이 어떠냐고 물었다. 그는 이런 종류의 출장 업무가 익숙한 사람이었다.


“기분이 어떠세요?”

“마음이 무겁죠”

“(놀라며) 아니 왜요?”

“돌아가서 할 일을 생각해야 하니까요”


힘들었던 일정을 다 마친 소감으로 홀가분하다, 이제 끝나서 편하다는 답을 기대했던 질문자의 의도와 다른 대답에, 그는 꽤 놀라는 눈치였다.


즐기러 온 여행은 물론 아니고, 다소 가볍게 새로운 세상을 돌아보는 업무 출장이 아니었다. 출장 목적이 분명했기에 그걸 이루기 위한 방안이 무엇일지 찾아야 했다. 한국으로 떠나기 전에 그 대답을 어느 정도 정리했는지 뭔가 확신이 없었다. 그래서 긴 생각 없이 즉각적으로 반응이 그렇게 나왔는지 모르겠다.


특히 이번 출장에는 꽤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각자의 목적과 이유와 관심으로 동행했다. 출장지에 함께하지는 않았지만 뭔가 정해지면 이를 처리해야 하는 현업 담당부서와 부서장도 무시할 수 없고, 무엇보다 당장 나의 직속 리더에게 어떻게 의견을 정리해서 보고할지 고민이다. 현재 내가 일하고 있는 기술 전략 부서의 입장일지, 더 많은 것을 고민하는 연구원장의 관점일지, 아니면 동행한 투자 부서의 이해관계도 봐야 할지. 이동 중이나 중간에 있는 식사 중에 우리는 많은 얘기를 나눴지만 기준이 어디에 있는지 나는 도통 오리무중인 상태였다.


복잡한 구도 안에서 어떻게 중심을 잡아야 하는지 아무도 속 시원한 답을 던지지 않았다. 어쩌면 다들 나에게 필요한 결정이 이뤄지기를, 그러나 짐짓 뒷짐 진 사람처럼 그럴듯한 이유를 하나씩 붙이며 책임을 회피하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연구소를 대표하는 사람이기에 단순히 객관적 기술 파악과 현장의 느낌을 건조하게 확인 전달하는 역할로 정의할 수도 있다. 그러한 무책임한 태도는 직무유기라고 생각하면서도, 전략적 기술 투자라는 건 대체 어떤 기준이어야 하는지 잘 모르는 점이 답답하다.


우리가 늘 주변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뭐 하러 그 먼 길을 떠나겠는가.
<여행의 이유, 김영하>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마침 김영하 작가의 여행 에세이를 읽었다. 작가의 말마따나 쉽게 얻을 수 없는 것을 찾으러 떠난 여정이었다. 다만 목적성이 큰 업무 출장은, 즐기기 위해 떠나는 일반 여행과는 다른 것이 맞지만, 익숙함과 주변을 벗어나 새로움을 찾아가는 건 본질적으로 같은 속성을 가진 셈은 아닌가. 이런 배경 때문에 출장의 끝은 결코 달지 않은 것일지 모른다. 3일 동안 10개 업체와 함께 그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아무 탈 없이 완수했으니, 후배가 기대한마냥 ”홀가분“ 해야 함이 옳음에도, 그게 안 되는 것이다. 출장의 끝이 달지 않은 이유는, 아직 정리되지 않은 질문들을 그대로 안고 돌아오기 때문일 것이다.


일로 떠난 출장에서 뭔가를 가져가야 한다는 부담은 크다. 먼 길을 떠났다가 돌아오는 자로서 결코 빈손이 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애써 마음의 짐에 대한 이유를 찾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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