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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한 일이 없다는 기분에 대하여

by nay

송길영 작가의 초청 강연을 들었다. 일하는 방식이 바뀌고, 기존 부서 간 밸류체인이라고 부르는 흐름들이 파괴되고 있음을 알렸다. 그는 이제는 제법 인공지능을 이용해서 실제 업무를 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고, 그래서 인공지능의 혜택을 끝까지 입으면 ‘나는 한 것이 없’게 된다는 말을 했다. 지위 상승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이 회사를 떠나 다른 곳에서도 ‘할 수 있는 일과 경력’ 쌓기를 강조했다.


직장인들의 구루, <일의 격> <커넥팅> 등으로 잘 알려진 신수정 작가의 최근 글을 읽었다. 그가 만난 사람 중 60세가 넘어 미국에서 일하는 분에게 들은 것이란다. “미국과 한국의 일하는 방식의 차이”에 대해 물었을 때, 미국은 나이가 들어도 자신의 일을 계속 유지하며 커리어를 유지할 수 있다고. 그러나 한국은 어느 정도 중간 관리자 이상으로 넘어가는 순간, 일은 바쁘지만 정작 자신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는 것, 그래서 결국 경쟁력을 잃고 만다는 것이다.


두 이야기는 서로 다른 맥락이지만 결국 같은 질문을 던졌다. ‘내가 진짜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내 경우, 지금 하고 있는 업무들이 흥미롭지만 어딘가 모르게 석연찮은 느낌을 갖고 있었다. 모든 종류의 일이 그렇지는 않은데, 어떤 업무는 하고 있으면 보람이나 해냈다는 뿌듯함이 느껴지지 않는 경우가 있달까. 왜 그런지 이유를 캐보려 한 적이 없다. 그보다는 빨리 해결하거나 해치우는 것이 시급하고 중요했다.


송길영 작가, 신수정 작가의 이야기에서 유추해 보니 그렇게 ‘보람을 느끼기 어려운 일’에는 나의 이야기나 관점이 없었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니라 남(주로 상사)의 이야기를 매개하는 사람의 역할을 해야할 때가 그랬다. 회사의 일에는 여러가지가 섞여 있고, 그 중 상사를 스태핑하는 일은 꽤 중요하다. 특히 상사가 임원이라면 무게감과 시급성은 남다르다. 그러나 상사가 보고할 내용에 대해 기깔나게 괜찮은 보고서를 완성해 내는 것은 과연 누구의 보람이고 발전일까. 남의 생각을 받아내기만 하는 건 어쩌면 일하는 기분을 내는 것이지, 진짜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서울 자가 김부장 드라마 중에서>


얼마 전 심장 스텐트 수술을 하고 유퀴즈에 출연한 김상욱 교수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그는 진행자인 유재석과 조세호에게 숫자를 부여하고 싶다고 했다. 유재석에게는 1, 조세호에게는 0을 각각 선사(?)했는데 그러면서 두 숫자가 의미하는 바를 설명했다.

-1은 존재하는 것

-0은 존재하지 않는 것

-존재는 부재가 있어야, 그리고 부재 또한 존재가 있어야 의미가 있다. 즉, 둘은 서로 상호 보완적이다. 그리고 출연한 게스트는 존재와 부재의 경계에 있는 조각작품처럼 두 진행자 사이에서 빛날 수 있다.

그가 풀어내는 이야기가 신비하고 놀라웠던 것이 아니다. 디지털 시대의 0,1 두 숫자가 가진 중요성에 깜짝 놀란 것도 아니었다. 두 진행자에게 어울리는 숫자를 정의해 주고, 그 정의가 주는 의미에 대해 자기만의 관점으로 설명해내는 과정이 인상적이었다.


주어진 역할과 임무를 완수하는 것에 더해서 내 관점을 녹여내 보는 시도가 필요하다. 상사의 눈높이와 요구에 대응하는 건 기본이지만, (여기에 더해 기회가 있다면) 내가 정의하는 어떤 것, 내가 이름 붙이는 어떤 것을 추가해 볼 수 있다. 시키는 업무를 완수해 내는 것은 반쪽짜리라는 결론에 이른다.


의미를 스스로 부여해 내는 과정과 결과물이 있어야 내가 한 작업물의 가치가 올라간다. 그게 있어야 비로소 일다운 일을 했다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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