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익숙한 곳에서 잠시 이별이다. 해외여행을 주로 하는 사람들에 대한 통계를 살펴본 적은 없으나, 보통 도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을까 추측해 본다. 큰맘 먹고 아프리카의 초원이나, 아이슬란드의 대자연을 보러 가는 경우가 아니라면 대개 여행은 그 지역에서 이미 살고 있는 타인과 일상을 공유하는 도시에서 이뤄지기 마련이다. 온 동네가 여행지로 구성되어 있지 않다면 모를까, 휴가를 맞아 다른 나라의 도시를 찾게 되면 낯설지만 실은 익숙한 ‘삶의 환경’에 노출되기 쉽다. 그러므로 도시를 여행하는 건 원주민(원래 그 도시에 살던 사람들)이 하루를 보내는 속도를 느껴보는 기회이기도 하다.
전문 여행가가 아니라면, 또는 휴직이나 특별한 휴가, 은퇴 후 시간적 여유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보통 일반인들이 가질 수 있는 여행 시간은 일주일 내외가 된다. 7일의 시간만으로 한 도시를 충분히 느끼는 것은 쉽지 않다. 그렇지만 우리는 소위 느낌적 느낌으로 내가 지금 머무는 공간의 바이브를 체감할 수 있다. 심지어 아주 짧은 환승지에서 느끼는 분위기에도 도시의 색깔은 묻어난다. 빵빵거리는 차량의 소음, 공기의 차가움과 따뜻함, 사람들이 거리를 걷는 속도, 음식점에서 손님을 대하는 종업원의 태도, 공원을 거니는 사람들의 얼굴, 심지어 노숙자들의 행색 등 ‘느낌’을 ‘확신’으로 만드는 장치들은 다양하다. 일주일을 머물면서 평생 단 한 번만 마주칠 누군가에게 받은 인상으로 그 도시에서 겪은 많은 경험들이 한쪽으로 쏠릴 수도 있다. 사람의 편견이 형성되는 것은 매우 쉽지만 한 번 만들어진 확신이 바뀌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모든 여행자들이, “나는 편견 없는 여행을 해야겠다”라고 마음먹을 이유는 없다. 각자 여행지에서 자신이 기대했던 것(볼거리, 먹을거리, 즐길 거리)이 있을 테고, 그게 이뤄지면 그저 여행은 성공적으로 진행되었다는 결론에 이를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고작 일주일 남짓한 시간이 주어지므로 여행자들의 마음은 바쁘다. 거기 살고 있는 현지인들이 어떤 일상을 사는지 크게 궁금하지 않아도 된다.
비행기로는 10시간 정도 걸리는, 하지만 우리와 전혀 반대의 위도에 있는 남반구의 한 도시에 도착했을 때 어딘가 모를 편안함을 느꼈다. 한국과 달리 여름을 지나고 있어서 따뜻한 공기와 온도, 파란 하늘이 주는 청명함이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여행을 하면서 점점 노년을 보내기에 좋은 곳이 어딜까 관심을 쏟게 된다. 꼭 살겠다는 마음 보다, 그냥 내가 어디를 좋아하는지 취향의 견적을 내어보는 별 의미 없는 상상이긴 하다. 일단 현재까지는 온화한 날씨가 일 순위다. 우리나라를 좋아하지만 너무 덥거나 너무 추운 날씨를 극단적으로 겪는 상황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런가 싶다.
어쨌거나 이번 여행지에서 특히 마음에 들었던 것은 도시의 속도였다. ‘도시의 속도’라는 말을 딱 이거다,라고 정의하기는 어렵다. 내가 느낀 속도의 느낌은 그저 거리를 거니는 사람들이나 도로 위의 차만 해당하지 않는다. 가령 음식점에서 음식을 준비해서 테이블에 내어주는 속도도 있고, 무언가 해결해야 할 질문이 있을 때 그에 대한 답변을 얻는 시간까지의 속도도 있다. 또는 이동을 위한 운송 수단의 배차 간격이나 걷거나 차를 타고 목적지까지 닿기에 필요한 시간도 있다. 어떤 것 하나로 대변할 수 없는 이 모호한 ‘속도’라는 느낌에 대해, 하필이면 왜 이 나라의 이 도시에서 만족감을 가졌는지 알 수 없다. 어쩌면 여행을 떠나기 전 날까지 너무 많은 일상의 일들과 회의, 할 일을 급하게 처리하느라 내게 필요한 것이 적당한 휴식이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만약 그런 거라면 내게 필요한 건 모든 것을 바쁘게 하나씩 쳐냈던 to-do list로부터의 자유가 아닌가 싶다.
여타 평범한 여행자들과 마찬가지로 일주일 조금 넘은 시간을 여행지에서 보내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있다. 가끔 나는 여행을 다녀왔다는 사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며칠 전만 해도 지구 반대편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그저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들이 내가 그곳에 있었음을 증명해 줄 뿐이다. 하지만 찰나의 순간으로 기록된 사진에는 담기지 않는 ‘속도의 만족감’이 제법 커서 그것은 어떻게 기록해 두어야 할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걱정은 없다. 좋았던 느낌은 기록이 아니라 기억이 되고, 어느 순간 추억으로 남아 있을 것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