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이 지나갔다. 작년 이맘때는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그냥 좋지 않았다는 말로는 부족하고, 뭔가 싫은 느낌. 그런 감정의 이유는 단순했다. 매년 돌아오는 생일이 새로운 건 아니지만 10년에 한 번씩 찾아오는, 앞자리가 달라지는 경험은 반갑지 않은 것이다. 누군가는 그저 나이 먹는 것에 유난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너도 나이 들어 봐라’는 말이 괜히 있는 표현은 아니리라. 최근 여러 프로에 출연하는 모 개그맨이 60살을 앞두고 본인은 그 나이 ‘안 받는다’고 말하는 이유를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는다. 그렇지만 처음이 어렵다고, 반백살의 출발선을 넘어서고 나니 한 살 더 먹는 것쯤은 대수롭지 않게 바라보게 되었다.
대학원생일 때 생일이라고 집에 전화를 드린 적 있다. 어머니가 전화를 받았는데 대뜸,
“무슨 일이냐?”
“저 오늘 생일이잖아요”
“어머 그랬니,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다”
서운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게다. 당시 어머니나 집안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기억나지는 않는다. 그러나 아들의 생일을 잊을 정도로 큰 사건이 있었던 건 아닐 듯하여, 나의 서운함은 꽤 오래갔다. 아니,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살짝 그런 기분이 남아 있으니 뒤끝이 참 긴 셈이다.
그러다가 언제였던가, 또다시 생일이라고 전화를 했는데(그때도 내가 걸었을게다. 생일이라고 먼저 전화 주시는 적은 없으니), 이번에는 대뜸,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해야 하지 않겠냐는 말씀을 던지셨다.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실은 그게 어머니식 농담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그 이후 무슨 얘길 나눴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계속 뜬금없는 요청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고민했던 것 같다. 전화를 끊고 추측해 보았을 때, 어느 모임이든 누군가에게서든 이런 얘기를 들으신 게 아닐까 싶었다(합리적 의심).
“아, 글쎄 우리 애가 지 생일이라고 전화를 해서는, 낳아줘서 고맙다잖아 호호”
그런 넉살이 부러우셨을까, 아니면 한 번도 그런 생각 안 하고 살다가 나이 들어 돌아보니 자식 놈들이 어미에게 태어난 것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한 적 없다는 사실에 부아가 나셨을까. 이유를 확인하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다만 그날의 나는 당황스러웠고, 이후에 생일이 다가오면 정말 저 말을 해야 하는 것일까 의문과 머뭇거림이 계속 생겨났다.
어머니에게는 죄송한 생각이지만, 세상에 태어나게 해 준 그 사실 자체에 고마움을 느낀 적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되바라진 불효자가 되고 싶다는 의미는 아니다. 솔직한 내 생각이 그렇다는 말이다. 아들을 위해 애쓰고 노력하신 부모님의 마음과 헌신에 대한 고마움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이 세상 어느 누구와 마찬가지로 내 의지를 가지고 태어나지 않았다. 시작은 그러했지만 태어나 살아가다 보니 이런저런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70년대 생으로 80-90년대의 격동기를, 2000년의 새로운 밀레니엄을 지나 이제는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인공지능의 시대를 겪고 있다. 시시각각 변하는 세계와 주변의 모습 속에서 적응하며, 나의 삶이 의미를 갖도록 애쓰고 있다. 태어나지 않았다면 경험하지 못했을 경이로운 일들이 많지만, 그만큼 숨 가쁘게 변하는 세상에 나를 끼워 맞추며 버텨온 시간 또한 녹록지 않았다.
하지만 삐딱할뿐더러 편하게 너스레 같은 건 떨지 못하는 아들내미의 마음은 ‘당연한’ 감사가 여전히 자연스럽게 나오지 않는다. 이것은 이성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논리적으로 설득되는 고마움도 있을 수 있지만 이 상황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어머니의 저 순수한 질문이자 요구는, 당신의 고단했던 세월에 대한 보상을 '고맙다'는 말 한마디로 갈음하고 싶으셨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내가 불편한 지점은 감정은 요구될 수 있는 성격이 아닌데 있다. 또는 전화를 받았을 당시 내가 처한 상황에서 힘이 되기보다는, 부담으로 남아서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생일이 오면 떠오르는 에피소드가 되어버린 것인지도.
그런 마음이 드는 이유는 어쩌면 나도 아이를 낳아 키우다 보니 더 그런 것 같다. 이제 고등학생이 된 아들을 보고 있으면 대견하면서도 미안하다. 특히 입시라는 큰 산을 넘기 위해 어려서부터 처하는 경쟁 사회가 진심으로 안타깝다. 왜 나는 이 아이를 세상에 나오게 해서 이 어려움을 겪게 만들었나. 무거운 가방을 메고 학교와 학원을 다니는 아이에게 부당한 의무를 지운 것 같기만 하다. 그래서 차마 농담으로라도 ‘너는 아빠나 엄마에게 태어나게 해 준 것을 고마워하라’는 말은 꺼내지 못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