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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영 Apr 04. 2024

나도 모르게 썅년이 된 이야기.

스쳐간 옷깃들(가제)

평소와 다를 것이 없던 날이었다. 인생에서 가장 여유롭던, 졸업한 대학교에서 조교로 있었을 때, 동기와 함께 근무하면서 노닥거리던 시절.


반쯤 의자에 누워, 나른한 상태로 인스타 스토리를 보고 간 사람을 훑는데 낯선 프로필 사진이 보였다. 지은 죄가 많아 누가 뒤에서 각목으로 날 내리친다면 의심 가는 사람들이 열 손가락을 넘어간다고 이야기하던 때라 내가 또 죄를 지었나.. 싶어서 보는데 외모가 세상 내 취향이라 각목을 들고 온다고 해도 이야기는 들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옆에 앉아있던 동기와 도대체 뭐하는 사람이길래, 왜 보고 갔을까 의논을 하다가 대충 OO대학교 OO학과라는 걸 알아내고, 딱 그 학과에 다니던 친한 동생에게 이 사람을 아는지, 모른다고 해도 여자친구가 있는지 몇 살인지 뭐하는 사람인지 알아오라고 부탁..을 가장한 협박을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학번 차이가 꽤 나는데다가 전과였는지 편입이었는지 했던 사람이라 바로 찾기는 어려웠던 것 같고, 시간이 한참 흘러 그 낯선 사람이 내 남자친구가 되고 나서야 동생은 연락이 왔다.


"누나, 그 사람 OO학번 OOO인데요. 여자친구 있어요. 제 동기 OOO이랑 만나요!"


언제부터 내가 네 동기였니, 우린 학교도 다른데.

거기서 끝냈으면 좋았을걸 사람 좋은 동생은 기어이 자기 동기한테 가서 남자친구랑 헤어졌는지를 물어봐왔고, 정확히 언제인지는 말해주지 않았지만 헤어진지 얼마 안 된 것 같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당시에는 덮어두고 지나갔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내가 썅년일 수도 있겠구나, 싶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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