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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KFAK Jun 22. 2020

로맨스의 죽음

노라 애프론을 뒤늦게 애도하며


(작가의 서랍에 있던 2017년 작성한 글을 발행합니다.)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유브 갓 메일"을 감독한 노라 애프론 감독은 2012년 작고했고, 세상에서 가장 발랄하고 아름다운 여자였던 맥 라이언은 이제 세월을 속이기 위한 과도한 보형물 시술로 이전의 자연스러움을 찾아보기 힘든 모습이 되었다. 마흔을 바라보는 지금, 시간의 불가역적 직선성에 절망하게 되는 대목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새치가 늘고 피부 탄력이 떨어져 모공이 드러나는 피부를 보면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시간이라는 것의 냉정한 직진성.


2012년에 작고한 노라 애프론 감독과 그녀의 작품을 왜 이제서야 애도하냐고. 로맨틱 코미디나 로맨스 장르 영화를 본 지 아주 오래된 것 같고 요즘 마른 잎 같은 마음에 뭔가 다른 분위기의 계기를 줄 것이 없을까 생각해 보다가 내 인생 영화인 이 영화, "유브 갓 메일"이 문득 생각났다. 결혼 10년 차인 지금, 남자나 여자, 로맨스 같은 단어의 정의 같은 것들은 삶에서 진즉에 사라졌지만 그래도 기분전환이라도 될만한 경쾌한 변곡점이 필요했던 것 같다. 내 로맨스는 죽었지만, 노라 애프런과 맥 라이언, 톰 행크스가 창조해 낸 로맨스 이야기는 그 모습 그대로 릴(reel) 속에 남아있다.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면, 그들이 남긴 영화를 다시 보면 되지 않을까 싶어 오랜만에, 정말 오랜만에 ‘유브 갓 메일’을 본다.


영화의 배경이 되었던 맨하탄과 멀지 않은 뉴저지에 살게 되었을 때 남편과 동생과 함께 톰 행크스와 맥 라이언이 처음 오프라인에서 만남을 가졌던 Cafe Lalo를 찾아가 봤다. 어퍼 웨스트사이드까지 영화에서 본 카페를 찾으러 가겠다는 내 오지랖을 다소 귀찮아하는 듯한 남편을 간신히 설득해 간 곳. 생각보다 아담한 공간에 생각보다 특별하지 않았던 디저트들로 기억되는 그곳이 나를 얼마나 많은 시간 설렘으로 채워줬는지를 생각해보면 현실과 비현실은 서로 원래대로 있던 자리에 그대로 두는 편이 낫겠다 싶기도 했다. 남편은 지극히 현실주의자인데 반해 현실감각이 조금 늦되고 자유로운 영혼을 표방하는 나는 영화의 시작과 함께 연주되는 노래, Harry Nilsson의 "The puppy song"이 그런 나를 위로해 주고 고무하는 뭔가가 있어서, 영화를 볼 때마다 기대하는 마음을 갖게 하는 또 다른 요소였다.


Dreams are nothing more than wishes
And a wish is just a dream
You wish to come true

꿈이란 소망일 뿐이고
소망은 그저 꿈이야
이루어 지길 바라잖아

https://www.youtube.com/watch?v=kfZXTNoAL7g

해리 닐슨 - 더 퍼피 송


근 십 년 전까지 나는 기분이 우울해지면 어김없이 이 영화 VHS나 DVD를 틀었다. 내 생각에 한 마흔 번쯤, 아니 그보다 더 많이 본 것 같다. 한 번 로맨틱 코미디 영화에 꽂히면 주야장천 보는 나였지만 이렇게 자주 본 영화는 없었던 것 같다. 이 영화를 볼 때마다 경쾌한 로맨스에 대한 동경 같은 것이 생기기도 했고, 우울한 기분이 풀리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 오랜만에 아마존 비디오에서 스트리밍으로 영화를 보려고 하는데, 너무 오래된 영화 같은 느낌에, 노라 애프론 감독의 작고로 세 사람이 만드는 영화는 이제 더는 없다는 서운함이 겹쳐 영화가 시작되는데 조금 슬픈 기분이 드는 것이다.


영화는 두 주인공 맥 라이언과 톰 행크스가 바쁜 아침 서로 온라인 대화 상대에게서 온 메일을 확인하면서 시작한다. 슬쩍 각자의 남자 친구, 여자 친구의 동태를 살핀 후 무사히 출근을 위해 집을 나갔다 싶으면, 조심스럽게 랩탑을 열고 그 시절 추억 돋는 다이얼업 인터넷 연결 소리와 함께 AOL 메일 서버 화면이 열리고, 설레고 기대하던 그 메시지, “You’ve got mail.”이 뜬다. “메일이 왔습니다.”라는 짧은 문장은 두 사람의 일상에 활력이 되어 주고, 메일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서로에게 끌리는 감정을 갖게 되다가 결국 매너리즘으로 점철된 각자의 현실 오프라인(?) 관계를 정리하고 서로 만나고 사랑하게 된다.


'설렘'이라는 기분. 그 감귤류 과일 같은 싱싱하고 상큼한 기분은 왜 오래가지 못하는 걸까. 지난해, 사람들이 송중기가 연기하는 유시진 대위에 그토록 열광했던 이유는 태양의 후예가 끝난 지 불과 몇 주 후에는 내용도 가물가물 했지만, 방영 당시에는 유 대위의 사과와 고백을 넘나드는 대상에 감정이 이입돼서 잠깐이지만 가슴 웅성거리는 감성을 가져보게 됐기 때문일 것이다. 나처럼 결혼한 지 오래된 분들에게는 잠깐 어디 안 보이는 곳에 넣어두었던 '여자'가 알고 보니 오른쪽 두 번째 서랍에서 발견된 것 같은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그 '여자'는 '아내'와 '엄마'로 바뀌어 버린 것이 아니라 잠깐 어디 안 보이는 곳에 고이고이 있었던 걸까. 사실 아이를 낳고 나는 엄마가 되었고, 여자는 잠시 접어두는 걸로 여긴 몇 년이 지난 후, 그 ‘여자'는 자연스레 실종 수순을 밟았다. 여자이고자 하는 마음은 조금 민망하기도 했고, 아이한테 온전히 나를 쏟아부어도 늘 미안한 마음이 그로 인해 더 미안해지고 싶지 않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결혼 생활의 일상을 ‘권태'로만 표현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면 그런 권태로 점철된 내 인생이 한없이 초라해져 버릴 것 같아서. 그냥 모든 게 당연해져 버리고 나서 느끼는 허무감, 다시는 썸 타던 그때, 썸만이 줄 수 있는 설렘을 다시는 느낄 수 없다는 아쉬움과 실망감은 어떻게 보면 우리는 그런 설렘이 사랑이라고 일반화해 버렸기 때문인지 모른다. 그래서 내 생각 속에서 우리 집에 함께 기거하고 있는 아저씨는 이제 더 이상 사랑의 대상이 아닌 그저 일상 공존의 대상이 되어 버렸는지도.


야속하게도 시간은 직진만한다. 물론 ‘챗바퀴 돈다'는 표현으로 설명될 시간의 원형성이 아마도 우리에게 더 친숙한 개념일 것이다. 그 수많은 챗바퀴를 굴려 앞으로 직진하다 보니 지금에 함께 다다른 남편이라는 대상과 썸 타는 듯한 감정을 갖게 되려면 시간의 불가역적 직선성을 거슬러야만 가능한 일일까. 그래서 자꾸 시간 여행자의 아내와 애인들이 나오는 영화들이 나오는 걸까.


그래서 그냥 사랑은 여러 모습의 감정을 갖고 있다고 믿고 싶다. 심장이 내려앉는 설렘 말고도 두둑하게 나온 배를 깔고 트렁크를 입고 비스듬하게 누워서 스마트폰을 뚫어져라 보고 있는 저 사람도 가만 보면 좀 가엾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고, 항상 피곤에 시달려도 새벽에 출근하는 뒷모습을 한 30초 정도 더 바라봐 줘야겠다 싶기도 하고, 쉬는 날에 아이랑 놀아주고 싶은 마음은 있겠지만 이내 피곤함에 져서는 드러눕는 그 모습에도, 턱까지 내려온 다크서클을 보면서 또 한 번 측은지심을 가져주자 싶고...


관계가 처음과 중간과 끝이 같을 수는 없다. 모든 일이 그렇듯이. 나도 더 이상 남편을 처음 만났던 학생 때의 내가 아니고, 결혼 연차만큼 늙었고, 연륜도 좀 생겼고, 육아와 가사에 짬밥은 생겼지만, 대신 화려할 것 같았던 커리어는 지지부진하게 이어 가고 있고... 그렇게 달라진 나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말이다.    


구혜선과 안재현의 신혼일기를 보고 있자니 신혼의 풋풋함이 정말 예쁘지만 그런 모습은 첫 시작에만 어울리는 모습인 게 맞는 것 같다. 10년, 20년 함께 살아온 부부가 저런 모습으로 일상을 함께한다면 억지스러워 보일지도 모른다. 어떤 것을 좋아하고 어떤 것을 지독히도 싫어하는지, 어떤 취미를 가지고 있고, 어떤 이해 불가한 성격의 일면이 있는지, 언제 주로 배변활동을 하고, 언제 혼자만의 동굴 속에 들어가고 싶어 하는지, 전부는 아니겠지만 남편의 많은 부분을 알게 되어버린 결혼 생활 10년 차 지금. 로맨스는 죽었는지, 아니면 어느 서랍 안에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현실처럼 톡 쏘는 지독한 향의 숙성한 홍어 같은 지금의 모습도 사랑의 일면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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