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영씨 Jun 14. 2017

철없는 아내의 행복을 위한 선택

행복을 위한 우리의 최선책은?

2년 전 5월. 국제전화 한 통을 받았다.

전화를 준사람은 나의 옛 직장, 당시의 사업 파트너이기도 했던 크루즈 회사의 아시아 지부 인사과 부장이었다.


"안녕하세요, 나영 씨, 우리 회사로 재입사하고 싶다는 말을 듣고 연락드려요."


엥. 이건 무슨 소리람.

재입사라니. 이력서도 제출한 적 없고, 온라인으로 취업 문의도 한적 없는데,  이제는 보이스피싱도 외국어로 활동하는구나 싶어 전화를 끊으려고 하는 찰나, 부장이 이어서 말을 했다.


"ooo 아시죠? 그분께 소개를 받고 연락드려요."


"아! 네? 알아요."




배경은 이러했다.



몇 주전 여느 때처럼 부두로 크루즈를 맞이하러 나갔었다. 3000명이나 되는 승객이 부산에서 기항지 투어를 하는 날인데,  새벽부터 70대가 넘는 버스, 70명이 넘는 가이드를 챙기느라 정신없이 움직이는데, 낯익은 얼굴의 옛 동료가 크루즈에서 내리는 게 아닌가.

너무 반가워 손님을 챙기는 것도 잠시 잊고 수다 떨기에 바빴다. 그녀는 3년 전 크루즈에서 내려 아시아지부에서 근무 중이라고 했다. 크루즈 안에서와 다르게 또 많은 것을 배우고 있고, 일하는 게 신난다며 아이처럼 좋아하며 사무실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신나게 이야기를 하는 그녀를 보며 나는 '부럽다며,  나도 기회가 되면 근무해보고 싶다'고 했었었다. 그녀는 그 후 상해로 돌아갔는데, 마침 인사과 부장이랑 사내식당에서 우연히 마주쳐 같이 점심을 먹게 되었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내 생각이 나서, 나를 언급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근데 설마 그때 나누었던 몇 마디로 인사부장이 연락을 줄 거라곤 나도 그녀도 아무도 몰랐으리라.





예상에도 없던 전화를 받고는 어떻게 통화를 이어나가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다 지금 근무중이니 자세한 이야기는 이메일로 하자며 메일 주소를 남기고 급하게 전화를 끊어버렸다.


대낮에 받은 갑작스러운 전화 한 통화로 온몸이 떨리고 화끈거려 일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오랫동안 숨기고 있던 비밀을 들킨 느낌이랄까? 짝사랑하던 남자에게 고백을 받은 느낌이랄까? 억지로 숨기려 해도 온몸에서 뿜어 나오는 열기, 그 떨림을 숨길 수가 없었다.



옛 동료와 우연히 나눈 대화가 어쩜 진심이었을까?내가 원하는 모습이기에 부러움에 그만 진심으로 "나도 일하고 싶어"라는 말이 나온 것이었을까?


그렇지 않다면 지금 내가 느끼는 열기, 떨림은 거짓이라는 건데, 거짓이라고 하긴 너무나 생생했고, 진심일 수밖에 없었다.



그 후 인사과 부장과 이메일로 연락을 주고받고, 긴 전화통화를 하였다. 그리고 2주 후,  왕복항공권, 묵을 호텔의 주소와 함께 상해에서 한번 만나보고 싶다는 메일을 받았고, 4개월 후 2015년 8월, 50킬로의 짐과 함께 상해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러나 이번엔 편도행이다.




우연이라고 하기엔 누구 하나 믿지 못할 만큼 3개월 만에 준비된 듯이 빠른 속도로 착착 진행되었던 나의 이직과 출국.


결혼 2년 차 새댁으로서, 아내로서 그리고 한집의 며느리로서, 새 가정을 이룬 딸로서 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 이 역할들, 일들을 뒤로하고 생전해보지 않은 역할로 단순히 하고 싶은 일을 위해서 떠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또한 높은 연봉, 안정적인 생활을 포기하고 어떤 환경일지 모르는 낯선 곳에서 적응하고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 역시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그러나 쉽지 않았던 선택이었던 반면, 오래 걸리진 않았던 선택이었다.


난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의 차이를 누구보다 정확하게 알고 있었고, 각각의 일들이 어떤 결과를 가져다줄 것인지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 주저하고 망설이다. 조심스레 이직 소식을 전달하는 내 모습을 지켜보던 남편은 선택을 하게 된 이유도, 과정도, 앞으로의 모습도, 어느 것 하나 묻지 않고 허락을 해주었다.


오히려 아직도 하고 싶은 게 많아서 좋고, 즐겁게 할 수 있어서 좋고, 행복해 보여서 좋다고, 그런 여자가 자신의 아내라서 좋다고 응원을 해주던 남편이었다.



2년 차 상해 생활.


300명 정도 되는 직원 중에 한국인은 나 혼자다.

한국인이라고 한국과 관련된 업무를 맡게 하지도 않았다.

한국인이라서 중국어가 서투니 이해 부탁드린다는 말도 통하지 않았다.

당서기, 정부의 비서관, 중국기업의 대표들을 만나도 당당함을 유지해야 했고,

만리장성을 대여해 회의를 주체할 수 있도록 해야 하기도 했다.

해가 바뀔수록 업무의 강도는 세지고, 기대치는 높아진다.



그러나 팍팍한 업무환경 속에도 따뜻함은 있었고,

서툰 중국어로 놀림을 받아도, 유머로 넘겼다.

우여곡절 정말 만리장성의 한 부분을 대여하기도 했다.

세지는 업무의 강도, 높아지는 기대치만큼 행복감과 성취감은 점점 커졌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 수 있다는 건 아주 행복한 삶이란 걸 매일을 살며 느끼는 요즘.


사실 이 순간이 얼마나 더 오래 지속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또한 지금 행복하다고 인생이 해피엔딩이 되는 것도 아니며,  앞뒤 생각하지 말고 좋아하는 일을 해라라는 말이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도 아니라는 것도 안다.


입시를 준비할때도, 입학할 대학을 결정할때도, 크루즈 승무원이 될때도, 그만둘때도, 결혼을 할때도, 그리고 상해로 이직을 할때도 인생에서 닥친 그 어떤 문제에도, 선택에도 정답은 없었다. 내가 선택한 것들도 정답이라고 할 수도 없다.

어쩜 우리가 선택해야 하는건 정답이 아닌 정답에 가까운 답, 최선책에 가까운 차선책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무엇을 선택하든 자신에게 가혹하게 정답만을 요구하지 않았음 한다. 오히려 정답이 아니기 때문에 조금은 힘들수도, 조금은 잃을 수도, 조금은 울어도 괜찮다.


넘어지고, 우는 과정속에 우리는 정답에 가까운 정답을 만들어 주고 최선책에 가까운 차선책을 찾아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