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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영씨 Mar 22. 2020

코로나가 가져다준 봄의 기록

봄에 감사하기

하루에 코로나라는 단어를 몇 번이나 듣고, 읽고, 말하고 사는지 모를 정도다. 
언제부터 바이러스에 관심이나 있었다고 지금은 꽤나 바이러스 전문가가 된 것처럼 떠들고 있다.  

중국에는 일 년에 두 번의 긴 7일 휴일이 있다. 2월의  춘절 그리고 10월의 국경절.  
이 긴 휴일 동안 여행을 가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중 춘절은 국경절에 비해서 여행보다는 고향의 가족들을 만나고, 그동안 대도시에서 돈을 버느라 만나지 못했던 가족들에게 작년 한 해 아끼고 모은 돈으로 빨간 속옷과 빨간 봉투를 준비해 드리는 그런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이번 춘절은 의미 있는 시간은 사치이자 죄악이 되어버렸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위험 경보를 알리고, 근원지가 봉쇄되고, 도시로의 전염을 막기 위해 각 도시들이 자체 봉쇄를 하고, 사람들은 격리를 했다. 마스크가 동이 나고, 마트에는 먹을 것들이 떨어졌고, 사람들은 남은 물과 빵을 가져가기 위해 싸우고 욕을 했다. 1월 말, 가족들과 가장 단란한 시간을 보내야 할 춘절에 벌어진 일들이다.  그리고 두 달이 지났다.

신기하게도 오지 않을 것 같았던 봄은 왔고, 거리에 꽃은 폈다. 언제 마트에서 헐뜯고 싸웠는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도시는 편안해졌다.

상해가 불안한 시기 동안 호주로 출장을 가있다 엊그제 중국으로 돌아온 친구가 있다.
시드니-상해 직항은 이미 결항되었고, 싱가포르, 태국, 마닐라를 경유해야만 올 수 있었다. 표 값은 30시간의 레이오버에도 불구하고 200 만원이 훌쩍 넘었고, 다른 선택사항이 없었기에 그 표를 살 수밖에 없었다. 호주는 상해보다 더 불안한 도시가 되었고,  불안한 도시를 떠나 (그나마) 안전해진 도시로 올 수 있는 기회에 돈을 쓸 수밖에 아니 당연히 써야 했다.  


상해 푸동 공항에 도착해서 비행기 안에서 한참을 기다렸다고 한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온 몸을 보호 장비로 무장한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단다. 내리는 승객의 체온을 먼저 쟀고, 체온이 높은 사람을 분류했다. 체온은 높지 않지만 의심 증상이 있는 사람들 분류하고 그리고  과거 14일 동안 중국이 정한 위험국가를 방문했던 온 사람들은 따로 라인을 만들어 분류를 했다. 그 사람들은 바로 병원행이란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공항에서 지정한 장소로 이동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바이러스 검사를 하고 1인 1실의 작은 방에서 검사 결과를 기다렸다. 검사 결과에 따라 양성은 당연히 병원행 그리고 음성인 경우 공항에서 지정한 버스를 타고 직접 집까지 이동한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자신이 사는 집이 속한 구의 주민자치위원회의 비상팀이 직접 인계를 받고 14일 동안 집에서 자가격리를 하도록 조치한다고 한다. 집 앞에는 대문짝 만하게 ‘외출금지 14일 자가격리 중’이라는 안내문을 문과 벽 사이에 붙이는데 바로 안내문을 뜯기면 외출 상태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과정이 장장 40시간이 걸렸다.


내가 지금 느끼는 이 도시의 편안함과 안정감 그리고 야외에서 마실 수 있는 30분의 커피 한 잔의 여유는 그냥 시간이 흘러서 된 것도 봄이 왔기에 괜찮아진 것도 아니었다.
오로지 보호장비에 기대어 지금 살아있는 우리를 위해 숨 쉴 공간을 지켜주는 누군가들이 있고, 또 자신의 귀중한 40시간을 쓰며 협조해주는 누군가들도 있었다.
 


친구에게 이 이야기를 듣는데 갑자기 내가 앉아 쉬고 있는 이 공간이 특별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생각했다.

누군가들의 노력이 그리고 그들의 시간이 봄을 오게 한 것 같다고.
살면서 처음으로 봄이 왔음을 온몸으로 느꼈다. 그리고 봄이 왔음에 감사했다.  


주인이 없는 곳에도 벚꽃은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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