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했던 이별 (2)

같은 말을 반복하는 할머니랑 같이 산다는 건

by Thenoir

할머니는 차츰 많은 것들을 잊어갔다.

잊는다기보다 잃어버린다는 게 맞는 거겠지 싶다.

도어락을 열고 닫기 어려운 할머니가 되더니 날짜를 잊고 내가 어디에 있는 건지도 잊었다.

끝까지 잊지 않았던 건 우리 가족 이름. 아들, 며느리, 큰손녀, 작은손녀, 사랑으로 키웠던 강아지 이름.

그리고 시계를 읽는 법.

할머니가 가장 많이 했던 말은. 손녀인 내 이름을 부르는 것과 밥은 먹었냐는 말.

내가 밥 해야 한다는 말. 할머니의 머릿속은 내가 초등학교 때쯤으로 멈춰있나 싶었다.

너무 힘들고 귀찮은 날에는 모진 목소리와 말투로 대답을 하거나 무시하는 날도 있었다.

매일 죄인이 되는 기분이었다. 엄마랑 산책할 때면 우린 천국 못 가겠다. 할머니한테 모질게 해서. 이런 말을 자주 했는데 난 큰소리로 말했었다. 엄마는 천국 간다고, 엄마 같은 며느리가 어디있냐고. 평생을 같이 살고 치매 온 시어머니 모시고 사는 게 어디 쉬운 일이냐고. 나한텐 좋은 할머니지만 엄마한텐 모진 시어머니였을텐데. 작은엄마는 십 년 넘게 얼굴 하나 비치지 않고 엄마가 시어머니 모시기 독박쓰고 있는데 내가 다 열받는다며 씩씩 거렸었다.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엄마는 됐다고, 너 있어서 다 됐다고 이런 일 저런 일 크게 엄마를 흔들만 한 일들이 아니라고 했다. 우리 엄마 참... 연약해 보이지만 세상에서 제일 강한 여자구나 감탄했다.

할머니랑 친구처럼 지냈던 나여서 싸우기도 하고 같이 웃기도 하고 학습지를 가르쳐주며 혼내기도 하고 칭찬하기도 했다. 많은 시간을 할애하진 않았지만 할머니의 상태를 일상으로 받아들이려 노력했었다.

나는 직장을 가진 성인이니까, 독립도 할 수 있고 환경을 적극적으로 바꿀 수 있었지만 그냥 지내기로 했다.

내가 너무 따듯하다고 느꼈던 집이 내내 불이 꺼져 있는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무렵 나는 강아지를 키워야겠다 생각했었다. 첫 번째 강아지를 19년 키우고 떠나보냈었다. 많이 힘들었지만 후회 없는 시간들이었고 생기 넘치는 시간들이었다. 곧 강아지를 데려왔고 내 예상대로 갓 피어난 새싹같이 푸릇푸릇한 생명덕에 집안에 전등이 하나씩 밝아졌었다. 엄마아빠의 마음이 온통 할머니에 대한 스트레스와 죄스러움으로만 채워져 있었는데, 조금씩 새로운 생명을 향한 사랑 또한 채워지는 게 눈에 보였다. 사랑을 나눌 수 있는 대상이 생기는 건 삶에 다시 숨을 불어넣는 거니까.


할머니의 치매는 천천히 깊어졌다. 어렴풋했던 할머니의 증상이 짙어지기까지는 4-5년이 걸렸던 거 같다.

그 시간 동안 무뎌지고 다시 화가 나고 또 그러다 미안해지고 무한한 반복의 시간이었다.

약도 먹고 주간보호센터를 다니시면서 여러 활동은 했지만 할머니의 시계는 느려지고 느려졌다.

할머니를 등교시키고 하교시키는 건 오로지 아빠의 몫이었지만 나의 퇴근시간과 겹칠 때면 같이 기다리곤 했었다. 집에 가는 길에 할머니 손을 잡고 지금 계절이 뭘까~? 빨간 꽃이 폈지? 꽃피는 건 무슨 계절일까? 봄이야~ 곧 더운 여름이 올 거야 할머니... 어릴 때 유치원 하굣길에 꽃반지를 만들고 꽃목걸이를 만들어주던 할머니가 떠올라 마음이 욱신거렸었다.


그 후 여름을 보지 못하고 할머니는 병원에 일주일 채 안 계시다 돌아가셨다.

돌아가시기 전에 딱 두세 번 정도 배변 실수를 하셨는데 그 이후 갑자기 위독해지셔서 병원에 입원하셨다.

병원에서 엄마가 기저귀를 갈아드렸는데 기저귀를 갈아주는 엄마를 보고 환하게 웃으신 다음에 그다음 날 눈을 감으셨다. 자존심 강하고 뭐든지 혼자힘으로 해내는 성격의 할머니가 많이 답답하셨을 거라 생각한다. 또 엄마한테 미안한 마음도 있었을 거 같다. 다 내 뇌피셜이지만 할머니의 가장 친했던 친구로서 알 수 있다.

아직도 글을 쓰면서 눈물이 마르지 않는다. 그 귀찮고 힘들었던 할머니의 손짓과 말들이 분명한 사랑이었으니까. 나를 사랑했던 존재, 내가 사랑했던 존재가 세상을 떠나는 건 엄청난 상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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