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였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난 대충 7살 부터 내가 나로서의 기억이 있다. 명확하게 긴 롱폼 영상으로 재생되진 않지만 짧은 숏츠 영상으로 재생 되며 기억이 난다. 나의 모든 순간에는 할머니가 있었다. 대학교까지 나의 부모 였다. 할머니는 맞벌이인 나의 부모님을 대신해 엄마, 아빠 역할을 맡으셨다. 모두에게 좋은사람은 아닌거 같았지만 나를 사랑한다는 확신을 주는 사람이었다. 할머니는 술을 많이 드셨었다. 술취한 할머니의 모습이 어린시절 너무 무섭기도 했고 마음에 상처가 될 만큼의 크고 작은 일들도 있었다. 너무 많은 참견에 버거울때도 있었고, 부끄러울 때도 많았고, 대놓고 할머니는 내 엄마가 아니잖아를 외치는 일도 많았다.
한사람이 어떤사람인지 정의할 때 나는 완벽히 편파적이고 개인적일수 밖에 없다.
엄마에게 좋지 않은 시어머니였다. 우리 엄마 성격의 사람이니까 감당하고 감수한거라 생각한다. 엄마가 임신했을 무렵 비정상적인 종교에 빠져 그 생활에 몰입하며 지냈다고 한다. 임신했던 엄마가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을지 감히 짐작하기 어렵다. 엄마의 월급날에는 월급을 전부 들고 마트에 가서 엄청난 양의 음식을 사서 교회에 나눔을 했다고 한다. 벌이가 어려웠던 그시절 엄마는 얼마나 화가났을까. 그리고 내가 태어나고 동네를 이사다니며 자연스럽게 그 종교와는 멀어졌다고 한다. 이제 알콜중독의 문제가 수면위에 떠오르기 시작한다. 할머닌 집안일과 육아가 버거웠는지 예전의 습관인지 술을 많이 드셨었다. 내가 7살에도 12살에도 만취해서 집을 다 뒤집어 놓은 할머니가 기억이 난다. 너무 무서워서 초등학생 때는 집에 들어가기가 무서웠었다. 하교길에 갑자기 쎄한 느낌이 들면 저멀리 우리집 아파트 창문을 올려다 본다. 창문들이 활짝 열려있으면 바로 엄습하는 두려움. 만취한 할머니를 마주해야한다. 10살쯤인가, 오바이트를 한 할머니를 챙기고 닦고 했던 기억도 있다. 너무 싫었다. 술에 취해서 울고 불고 물건을 부수고. 술이 뭘까. 술이 뭐길래 사람이 저렇게 되나. 됐고, 그딴거 알고 싶지도 않고 시간이 빨리 흐르기만을 바랬다.
할머니는 매일 나의 유치원, 초등학교 등하교길을 함께 해줬다. 횡단보도를 건널때 양옆을 살피고 건너라 가르쳐 주었고, 심심하던 하교길에 계단을 마주칠때면 가위바위보놀이를 알려주면서 심심함을 달래주었다. 소풍때 운동회때 오지말라는 나의 날카로운 말에 알았다며 걱정말라고 하셨다. 학급친구들 모두가 부러워 할 만큼 풍성하고 맛있는 도시락을 정성스럽게 싸줬다. 그리곤 친구들과 춤추고 노는 손녀가 궁금하셨는지 기둥 뒤에 숨어 박수를 치며, 환히 웃으며 나를 지켜보셨다. 어릴 땐 코피가 왜그리 많이 났는지 등교길에 휴지가 없는데 당황할때면 어디선가 할머니가 달려와 자기 옷으로 닦아주며 괜찮다고 안심시켜 줬었다. 어디선가 나를 항상 지켜보고 내가 위험하거나 당황스러워 하면 달려왔었다. 그모습들을 어린 나는 기억한다. 나는 그모습을 사랑으로 정의내리고 내 머리와 가슴에 입력 시켰다. 항상 나와의 대화가 재밌다고 이야기했다. 말도 안되는 이야기로 우기는 할머니를 앉혀 놓고 10분이 넘게 설명하며 회유시킬때 끝내 나는 이길 수 있었다. 할머니는 웃으며 맞아, 니말이 맞아. 들어보니 그렇네. 우리 손녀 똑똑하네. 수긍하며 마무리가 된다. 내가 머리가 조금 컸을때는 할머니를 둘러 쌓던 환경이 그리 친절하지 않았던걸 알게 됐다. 그래서 그랬던거였을 거라 짐작하며 사람 자체로 여성으로 이해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고 알콜이 문제였는지 그냥 자연의 흐름인지 할머니에게 인지장애가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