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지

선멍과 인생에서 힘 빼기

by 나저씨

그림을 배우다 보니, 나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선 그리기였다. 그림을 그리는데, 미세한 선의 차이로 그림의 인상이 확 바뀌는 것을 보면서, 가장 기본적일 수 있지만 그 기본적인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고 내가 부족한 것이 무언지 알아낸 것이다.




그래서, 선 그리기 연습을 시작했는데, 연필 잡는 것부터 쉬운 게 하나도 없었다. 선 그리기는 너무나도 당연하고 기본적인 것이지만 그 기본도 잘 소화하지 못하는 나 자신을 보고 있자니 한심해 보였다. 선 하나하나를 그리는데, 내 맘과는 다르게 삐뚤 빼 둘하게 그려지는 걸 보면, 화가 나고 다 때려치우고 싶은 유혹이 스멀스멀 피어오곤 한다. 하지만, 이런 유혹을 이겨내고 선 그리기를 이어 나가면, 어느 순간 시간이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게 빠르게 흘러간다. 선 그리기가 재미있어서라기보다, 선을 그리다 보면, 아무 생각을 하지 않고 그저 선만 그리게 되기 때문이다. 이른바, '선멍'을 때리는 것이다.




이런 선 그리기 연습을 하는 데 있어서 준비할 것들이 있다. 우선 연필과 종이가 필요하다. 연필과 종이가 준비되면, 그 후엔 연필을 쥐고 종이에 선을 긋기 시작하면 된다. 선을 그을 때는 어깨에 힘을 빼고 팔꿈치는 최대한 몸에 붙이고 어깨를 축으로 하여 선을 종이 위에 그어 나간다는 느낌으로 그려야 한다. 또한 선을 그릴 때도, 일정한 간격으로 그려야 한다. 그런데, 이 선 그리기 이론은 글로 보면 참 쉬운데, 막상 실습을 하려면 생각과는 반대로 잘 되질 않는다. 머리로는 아는데, 몸이 안 따라 주는 느낌으로 말이다... 특히, 어깨에 힘을 빼는 것이 제일 안된다. 익숙하지 않은 자세로 선을 그려서인지 몰라도, 몸이 긴장하게 되고, 그러면 자연스레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었다. "몸에서 힘을 빼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선긋기 연습을 하면서 깨닫게 되었다.




선긋기 연습을 하고 있자면, 잡생각을 하지 않게 된다. 지금까지 아등바등 살면서, 인생에서 무언가 이루고자 노력하고, 세상에서 중요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던 나 자신을 말이다. 그리고, 세상에 태어난 목적이 있다고 굳게 믿고, 소명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26살의 나 자신이 생각난다. 사실 인생을 잘 살기 위해서는, 내 인생에 대해서 힘을 빼는 것이 가장 중요할 터인데, 나는 지금까지 어깨에 힘을 주고 아등바등 산 것이다. 만약, 내가 선긋기처럼, 내 인생에서도 힘을 빼고 살아갔다면, 지금처럼 삐뚤빼뚤한 인생이 아닌 일직선의 바른 삶을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난 이미 오래전부터 "인생에서 힘을 빼야 한다"는 답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단지, 그 답이 너무 쉽게 느껴져서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 아닐까 싶다. 좀 더 고상하고 어려운 목적이 있을 거라 믿고, 실행은 하지 않고 생각만 하면서 시간을 허비하다, 인생의 선이 완전히 삐뚤어져서야, 인생을 태어난 김에 살아가는 것임을 인정했으니 말이다.




오늘도 난 갱지 연습장에 선을 그으면서, 태어난 김에 사는 인생에 대해 생각하고, 한 번밖에 없는 인생을 후회 없이 살기 위해 어깨에서 힘을 빼는 연습을 한다.


IMG_0894.jpeg 갱지위에 선 긋기 (아이폰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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