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회를 준비하며...
내가 그림을 배우기 시작한 지도 1년 이상의 시간이 지난 듯하다. 처음에는 내가 처한 상황을 벗어나고 싶어서 무작정 시작한 일이었는데, 이렇게 오랫동안 그림을 그리게 될 줄은 몰랐다. 남들처럼 1년 만에 실력이 확 늘어나지 않았지만, 그래도 난 그림을 통해 많은 것들을 얻었다. 그중 가장 큰 배움은 아마도 삶의 후반전을 달려가고 있는 나도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 게 아닐까 싶다.
난 인생 전반전을 정말 치열하게 살았다.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일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 한국에 귀국해서 공공기관에 근무하면서, 전 세계를 무대로 열심히 일했다. 그러던 중, 국제기구에 대한 열망이 생겨서, 다니던 회사를 휴직하고, 모아뒀던 돈을 다 털어서 해외로 대학원을 가고, 이후에 방콕에 있는 국제기구에서 근무도 하면서, 차근히 나의 꿈을 준비해 왔다. 그러던 중, 전 처를 만나서 결혼을 했다. 결혼을 할 때는, 결혼이 나의 꿈을 완벽하게 해 줄 마지막 퍼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을 그리 만만치 않았다. 난, 전반전에 날 이끌어줬던 꿈을 포기하고, 내 가정(family)을 선택하는 중대한 결정을 내렸지만, 아내와 이혼을 하게 되면서, 내 선택은 실패로 끝이 났고, 난 내 인생이 실패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패배감에 물들어 살던 나를 구해준 게 바로 그림이었다. 그림을 통해, 삶의 활력을 얻었고, 인생 후반전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인생 후반전을 준비할 수 있는 마음 근육을 나에게 만들어 준 것이 바로 그림이었던 것이다.
전시회를 한번 해보지 않으시겠어요?
시작은 미술 선생님과의 가벼운 대화로 시작했다. 처음에 전시회라 해서, 선생님의 전시회를 이야기하는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바로 내가 그린 그림을 보여주는 전시회를 말한 것이었다. 더 정확히는 내 그림만 가지고 전시회를 하는 게 아니라, 선생님의 문하생 전부와 함께 공동 전시회를 하는 것이었다. 처음에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고민을 많이 했다. "나처럼 그림 못 그리는 사람이 전시회를 하면, 사람들이 내 그림을 보고 비웃을 거야."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전시회에 참석하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바꿔먹었다. "내 인생 후반전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전시회에 참여하기로 했고, 열심히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제 2주 후면, 전시회가 열리는데, 내가 그린 그림을 고르고, 인쇄하는 작업이 나에게 너무나 새로운 경험과 자극이 되어주고 있다. 그리고, 이번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아직 나에게 시간이 남아있다"는 생각과 함께 인생 후반전을 준비할 수 있는 힘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번 전시회가 내 인생 후반전에 불을 붙여주는 기회가 되어주길 바라면서, 오늘도 열심히 그림 연습을 해보려 한다. 그런데, 내 그림을 다른 사람이 본다는 생각을 할 때마다, 내 마음이 간질간질한 건 부끄러움일까 설렘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