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0] 이혼하러 갑니다

'유종의 미' 준비하기

by 나저씨

회사에는 아직 나의 이혼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가 없었다. 내 이혼 이야기를 회사에 한다는 것은 나의 치부를 드러내는 부끄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회사 사람들의 가십(gossip) 거리가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이혼 후에도 어떻게 평범한 척, 이혼 안 한 척하면서 살 것인지를 곰곰이 생각하는데 시간을 더 많이 쏟고 있는 중이다. 그러던 어느 평범한 토요일 아침이었는데, 그때도 여느 때와 같이 미술 수업을 받으려고 준비하고 있는데, 갑자기 나에게 한가지 의구심이 들었다.


난 이혼 후에 대한 준비를 잘하고 있나?




문득 생각난 이 질문은 길을 걷고 있던 나의 발길을 잡기에 충분한 질문이었다. "이혼 후 삶에 대한 준비?" 한번도 생각을 제대로 해 본 적이 없는 주제였었다. 아니 깊이 생각해 볼 고려도 하지 않았던 그런 주제였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미리 하자면, 난 여태까지 이혼 후 삶에 대해 제대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아니 그걸 생각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 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 같다. 하지만, 이혼 후 삶, 즉 유종의 미를 준비하는 것이 나의 삶에서 얼마나 큰 역할을 할 것인지 본능적으로 느끼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유종의 미'를 준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기 시작해봤다.




1. 이혼 후 내 삶을 예상해보기


이혼은 중요한 사건이다. 삶을 살아가면서, 평생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는 사람들이 더 많은 일인것이다. 게다가 남에게 자랑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주위에서도 보기 쉽지 않기 때문에 참고가 될 만한 것도 없다. 그렇기에, 이혼 후 내 삶에 대해서 예상해 보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혼 후에 내 삶이 어떨지는 나도 예상이 되질 않는다. 아직 해보지도 않았는데, 무슨 차이를 느낄 수 있을까? 다만, 내가 생각하기에 마음이 아프고, 정말 혼자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 것 같았다. 누구는 자유로움을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을 보면, (미안하지만) 뒤통수를 세게 한 대 때려주고 싶다. 이혼은 누군가를 사귀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특히 나처럼 혼인신고까지 한 사람이라면, 평생 마음속에 남는 흉터를 갖게 되는 삶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자유라고 이야기하는 주위 친구를 보면, 난 화가 나기까지 한다. "넌 이혼을 해 보지도 않고, 어디서 자유를 이야기하냐고"말이다. 하지만, 그 사람 말이 틀린 것은 또 아니다. 어떤 면에서는 아내와의 관계와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열심히 학교를 다니던 학생이 방학을 맞이하면, 아무것도 안 하고 시간을 허비하듯이, 나도 가정에서 자유로워지면서 시간을 허랑방탕하게 사용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하고 있다. 내가 이혼 후 가장 경계해야 하는 내 삶은 바로 "계획 없이 시간을 허비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더 이상 아무것에도 신경 쓰지 않고 자포자기하고 그냥 삶을 살아가는 것 말이다.




2. 인간관계에서 내 마음 열기


아내와의 문제로 인간관계에서 내 마음이 닫혀 버린 것을 나 스스로가 느낄 정도이다. 상처를 받고, 괴로운 경험을 하다 보니, 새로운 인연을 만난다는 게 두려워진 것이다. 그냥 혼자가 낫겠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내가 누구인가? 난 사람을 좋아하는 호구이다. 그렇기에 절대 혼자 살 수는 없는 인간인 것이다. 그래서, 이혼 후에, 사람을 만나지 않고 배척하지 않도록 마인드 컨트롤을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새로운 이성을 만나도, 이혼남이라는 사실에 위축되지 않도록 나 자신에게 긍정적이 마음을 심어주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계속 만들어나가자라는 생각도 했다. 사실 주위에서는 "이혼이 인생의 실패"인 시대는 지났다며, 이혼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한다. 나도 그들의 말에 동의한다. 하지만, 그들의 말에 동의해도, 내 마음속 한 켠에는 부끄러움의 감정이 있다는 걸 숨길수가 없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다시 만난다 하더라도, 또다시 이런 일이 일어날까 싶어서 두렵고 걱정스러울 뿐이다. 만약 또 이런 일이 일어나면 그땐 진짜 다시 일어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3. 일어나지 않은 미래에 대해 걱정하지 않기


아마, 이게 나에게 가장 힘든 일이 되지 않을까 싶다. 내가 우울해하고 두려워하고 수치스러워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아직 일어나지 않고, 평생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그런 일들을 미리 생각하면서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아직 이혼도 하지 않았는데, 이혼 후 결혼을 다시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이혼하기도 전에, 이혼 후에 새로운 사람과 인연 맺는 것을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난 내가 예측할 수 없는 미래의 불확실성을 걱정하면서, 나 자신의 손발을 다 묶어 버리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혼을 하기도 전에 이미 날 패배자에 루저로 생각하고, 앞으로의 삶에 대해 걱정하고 있는 것이었다. 내가 이혼을 대비하면서, 지양해야 할 가장 큰 문제가 바로 이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일어나지 않은 미래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이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일어나지 않은 미래에 대해 고민하거나 걱정하고 불안해할 필요가 없음을 누구보다 잘 알지만, 정작 내가 이혼과 그 이후의 삶에 대해 생각할 때 9할 이상은 이 생각만 하다 잠을 설치는 일이 허다하다. 정말 초등학교 때 도덕 시험과 비슷한 거 같다. 상식이지만, 실천하려면 참 힘든 그런 도덕 시험문제처럼 말이다.




이렇게, 오늘도 난 제대로 된 이혼을 하기 위해 준비하면서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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