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1] 이혼하러 갑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 Von Voyage!

by 나저씨

날이 좋아서 밖에 산책을 나갔다. 밖에 산책을 나갔더니, 날씨가 많이 풀려서인지, 밖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공기는 깨끗한데 풀내음 까지 나서, 내 기분도 좋았다. 하지만, 기분이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왜냐하면, 밖에서 걸어 다니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내가 또 불행해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밖에 산책을 나온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이 부부끼리 나오거나, 아이와 함께 밖에 나온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난 그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가슴 한 켠이 아려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난 평생 동안 저 행복을 경험하지 못 하겠지.



이혼을 하고 나면, 결혼을 다시 한다는 것이 미션 임파서블처럼 느껴지는데, 아이를 갖는다는 건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인 것이다. 나의 아이를 갖고, 가정을 꾸리면서 살고 싶었던 나의 꿈이 사라져서 힘든 시기가 바로 지금 이 시간이고, 난 그 시기를 이겨 냈다 생각했는데, 내가 틀렸던 것이다. 이 감정은 아마도 오랫동안 잊어버릴만하면 한 번씩 내 앞에 나와서, 날 괴롭힐 것임에 틀림없다. 패배자와 같은 기분을 느끼면서, 가족동반으로 산책하는 부부와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속에서 열 불이 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다시금 하늘에 이렇게 외치고 싶었다.


도대체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나에게 이런 고통을 주는거냐고! 왜 하필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이냐고!... 왜 나한테 이런 일을...

결혼한 것도 나의 선택이었으니, 이혼도 나의 책임이라 말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정말 그런가?"라고 물어보고 싶다. 정말 이혼이 내 책임일까? 일전에 내가 가스라이팅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지만, 결혼도 상호간의 케어가 전제가 되어야 하는 관계이다. 하지만, 우리 부부의 관계는 한쪽이 일방적으로 베풀고, 당하는 입장이었다. 그리고, 베푸는 사람의 노력과는 별개로 수혜자는 자신의 기준에 부족한 사람이라 스스로가 불행하다 생각하고, 자신이 피해자라 생각하는 이상한 관계를 형성했던 것이다. 마치 "아낌없이 주는 나무"와 비슷하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냉정하게 보면, 나도 잘못이 있다. 그리고, 여러가지 나의 잘못 중에서 결정적인 걸 하나 뽑자면 아마 바운더리를 정하지 않았다는 것일 것이다. 상대의 요구나 바램에 대해, 나의 바운더리를 정하고 예/아니오를 이야기 했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상대가 원하는 것을 만족시켜주기 위해 노력을 했던 것이다. 그게 사랑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고, 내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상대가 도망쳐 버릴 것이라 생각하고 두려워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가 이렇게 되어버린 것이다. 여태까지 아내의 잘못에 대해 열변을 토하며 말했지만, 정작 내가 그녀를 그렇게 만든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또 다시 아내에게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나란 존재는 이 얼마나 멋진 호구인가!)


미안함과 우울함이 섞인 감정을 느끼면서, 난 나의 친한 멘토형에게 전화를 걸어 내 감정과 생각을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멘토형이 나의 호구력을 진정시킬 치료약을 건네줬다.


쓸데없는 생각! 너처럼 해줄 수 있는 사람은 좀처럼 없어! 널 만난 건, 네 아내의 복이야. 그리고, 네 아내는 그 복을 스스로 발로 찬 거고. 애초에 네 아내는 너라는 복을 품을 수 있는 그릇이 되질 못 한거야. 넌 너의 역할을 끝내고, 새로운 역할을 받기 위해 그 관계에서 벗어난 것 뿐이니,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 네 인생을 살아나가!

그의 말이 맞았다. 생각해보면 애초에 아내는 처음에 결혼할 때 부터, 자신의 꿈이 우선이었고, 자신의 꿈을 위해 준비했던 사람이다. 그리고, 상대를 존중하기 보다, 자신의 기준에 상대를 맞추려고 했던 사람이었다. 멘토의 말을 빌리자면, 인간관계 부분에서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아내와 살면서, 난 지금까지 자기를 희생하면서, 최선을 다 해 삶을 살아갔던 것이고 말이다. 이혼 자체가 환영할 일은 아니지만, 내가 이혼하는 것에 대해서 나 스스로 자책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난 자책할 만큼 잘 못한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번 인연에서는 그저 내 역할이 끝이 나서, 새로운 역할을 받기 위해, 떠나가는 여정일 뿐이라는 것을 말이다. 마치 반지 원정대의 프로도처럼 말이다. 앞으로 나의 이 경험이 날 어떤 삶으로 이끌어 갈지는 알 수가 없다. 그리고, 확실치 않은 미래에 두렵기만 하다. 다시는 새로운 인연을 만나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도 있다. 그리고, 혼자라는 것에 대한 외로움도 있다. 하지만, 두렵다 해서 가만히 웅크려 앉아서 귀를 막고 있는 행동은 피하고 싶다. 무서워도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더라도, 한 발을 내 디딜 수 있는 용기 한 스푼을 쥐어짜 내보려고 한다. 5년, 10년 후를 생각할 필요 없이, 지금 내 앞의 한 걸음을 가는 힘과 용기를 말이다. 이렇게 걷다 보면, 어느샌가 먼 거리를 걸어온 내 자신을 발견하지 않을까? 오늘도 이런 생각을 하며, 웅크린 내 자신을 달래며, 여행을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자 이제 옛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새로운 여행을 떠나도록 하자! Von Voy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