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생연분

꼭 그렇게 다 가져가야만 속이 후련했냐? (영화 해바라기 대사)

by 나저씨

어머니가 폐암 소견이 나왔다.

말이 소견이지 확진이나 다름없다.

아버지가 암으로 돌아가셨는데,

어머니까지 암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땐,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저 '아니겠지'라는 부정만 반복하면서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뿐이었다.

울먹거리며 나에게 전화를 하는 막냇동생의

목소리를 뒤로, 어머니와 통화를 나눴다.

그리고 난 어머니에게 말했다.

"그렇게도 싸웠던 아버지와 똑같은 병을

진단받은 걸 보면, 두 분이

천생연분이 확실하네."

라며 시답지 않은 농담을 던졌다.


어머니는 잠시 침묵하시다

쓸쓸하게 답을 하셨다.


"그러게 말이다."


말씀하는 어머니의 목소리에

어딘지 모를 쓸쓸함과 두려움

그리고 체념이 느껴졌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11년 전,

나는 완전히 무너졌다.

세상이 끝난 것 같았고, 무서웠다.


그때는 죽음이라는 것이 너무나

낯설고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하지만 그때에 비해 더 나이를

먹고 많은 이들을 떠나보낸 지금은

훨씬 더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거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가 없는

세상을 받아들이기가

지금의 나로서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와는 달리

견딜 자신이 없다.

그냥 이 상황을 피해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뿐이다.


어머니와 함께 서울대 병원에 다녀온 후,

어릴 적 기억들이 물밀듯이 생각났다.

아픈 나보다 더 아파하면서

내 옆에서 밤을 지새우던 어머니.

항상 싫은 잔소리를 하시지만

그 안에는 내가 행복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계셨던 어머니


이제서야 나도 이혼의 상흔에서 벗어나고

집도 생겨서 어머니의 걱정을 덜어드리고

이제 좋은 일만 있을 거라 기대하면서

시작한 2025년이었는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겠다.


정말 세상이 나를 억까하는 것 같다.


어머니와 함께 진료 순서를 기다리며(나저씨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