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까미노] 연차

추석 연휴로 순례길을 가는 방법을 찾았다

by 나저씨

달력을 보다가 뭔가 맞아떨어지는 게 있었다. 2027년 추석 연휴. 대체공휴일까지 포함하면 사흘이다. 앞뒤로 연차 5일을 붙이면 13일에서 14일이 만들어진다. 사리아에서 산티아고까지 110km, 걷는 데 대충 8일 정도 생각하고 있으니 숫자가 맞았다.


근데 그 순간, 이상하게 기쁘지가 않았다.


생각해 보니까 나는 20년 동안 연차를 제대로 쓴 적이 없었다. 아프거나, 집에 무슨 일이 있거나, 정말 어쩔 수 없을 때만 썼다. 그냥 쉬겠다고, 어디 가겠다고 쓴 적이 없다. 정확히는, 그렇게 쓰는 게 허락되지 않는 분위기라는 걸 언제부턴가 몸으로 알고 있었다. 일하는 곳이 휴가에 어느정도 관대한 집단이다 보니 연차를 쓰는 것 자체는 당연한 권리로 여긴다. 근데 10일 이상 자리를 비운다는 건 다른 얘기다. 누군가 그 자리를 메워야 하고, 돌아왔을 때 쌓인 일이 기다리고 있고, 눈치 없다는 소리를 듣거나, 듣지 않더라도 그 시선을 감당해야 한다. 그게 귀찮아서가 아니라, 그냥 그게 불편했다. (지극히 내 입장에서 느낀 바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연차는 소진하는 게 아니라 쌓아두는 것이 됐다. 언제 쓸지도 모르면서. 쓸 일이 생겼을 때를 대비해서. 주변에 열흘씩 해외 나가는 사람을 보면 솔직히 속으로 ‘저 사람은 눈치가 없나’ 했었다. 근데 지금 생각하면 그게 아니었다. 부러웠던 거다. 그렇게 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20년 동안 달력을 보면서 나를 끼워 넣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항상 팀 일정, 사업 일정, 보고 일정을 먼저 보고, 그 빈틈에 내가 들어갈 수 있는지를 봤다. 들어갈 틈이 없으면 그냥 넘어갔고, 그게 당연한 줄 알았다.


처음으로 내가 먼저 날짜를 잡고, 거기에 맞춰 일정을 보는 게 4n살이라는 게. 이게 성장인지, 아니면 그냥 늦은 건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이렇든 저렇든 2027년 9월 3일을 순례길 시작일로 잡았다. 아직 확정은 아니지만, 이번엔 취소 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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