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이유가 뭔지 모르겠다
사무실 형광등이 유독 더 밝고 하얗게 느껴지는 날이 있다.
무슨 회의였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회의에 참석해서 이야기를 나누지만, 나는 그들의 이야기에 집중하기보다 창문 밖을 쳐다봤다. 하늘은 곧이라도 비가 올 것처럼 어두웠다. 그때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고, 그제야 내가 한참 딴 곳을 보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때 처음 생각했다. 여기서 "튀고" 싶다고 말이다.
20년이었다. 입사할 때 받은 사원증 사진 속 얼굴은 지금의 내가 알아보기 어렵다.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굳이 나열하고 싶지 않다. 다만 20년이 지난 지금, 나는 여전히 같은 자리에 앉아 같은 일을 하고 있었다.
내가 스페인 순례길을 가겠다고 주변에 말했을 때 반응은 대략 세 종류였다.
"멋있다." "갑자기 왜?" "굳이?"
그중에 난 "굳이"라는 말이 가장 듣기 불편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어떤 기분이었는지는 한 마디로 설명하기 어렵다. 분하다기보다는, 몇 년 전의 내가 떠올라서였던 것 같다. (솔직히 그게 맞다.) 나도 그 시절엔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그렇다면 이런 질문이 생길 수 있다.
"20년 직장인이 스페인으로 튀는 이유가 뭐냐?"라고.
"회사 말고 나는 뭔가"라는 질문에 아직 답을 못 해서라고 하면 될까. 아니면 그냥, 창밖 하늘이 너무 어두웠다고 하면 될까.
사람들은 순례길을 영적인 여정이라 말한다. 나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다. 지금은 좀 다르게 생각한다. 굳이 영적인 여정이어야 할 필요가 있나. 그냥 내가 살아가는 하나의 흐름이면 안 되나?
카미노가 뭔지도, 걷고 나서 뭐가 달라지는지도 아직 모른다. 아는 건 하나다. 지금 이 형광등 아래서는 그 답을 못 찾겠다는 것.
110km다. 걸어서 간다.
도망이냐고 묻는다면, 도망 맞다. 근데 가만히 있어도 달라지는 게 없다는 건 이미 20년이 증명했다.
그러면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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