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까미노 프로젝트] 50, 그리고 순례자의 길

걷기 전에 이미 시작된 수정

by 나저씨

순례자의 길을 걷겠다고 결심했지만, 막상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 내가 아는 순례자의 길이라 해봤자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순례자』나 예능 프로그램, 그리고 몇 편의 영화에서 본 풍경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진짜로 갈 생각이 없었다면 그 정도의 낭만으로도 충분했겠지만, 본격적으로 내 두 발로 걸어보겠다고 마음먹은 이상 처음부터 제대로 알아보고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먼저 순례자의 길에 대한 역사적 배경과 최신 정보를 조사했다. 내가 걸으려는 길이 단순한 바이럴이나 유행에 휩쓸린 가벼운 선택이 되기를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간략하게나마 AI의 힘을 빌려 이 길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내가 갈 2027년의 의미를 찾아보았다.


순례자의 길, 그 천 년의 역사
간단히 요약하자면, 기독교의 12사도 중 한 명인 야고보(산티아고)의 무덤이 발견된 스페인 갈리시아 지방을 향해 걷는 천 년이 넘는 순례길이었다. 9세기 예배당이 세워진 이후 중세 시대 수십만 명이 걸으며 종교적 중심지가 되었고, 1993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면서 현대에 이르러서는 종교를 넘어 문화와 자연, 그리고 자기 성찰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누가, 왜 걷고 있을까? (최신 트렌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AI가 찾아준 2025년 통계에 따르면 연간 53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순례자 증서를 받으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 중 내가 선택한 ‘100km 최소 구간(사리아 출발)’을 걷는 사람의 비율이 31%로 압도적이었다. 무엇보다 눈에 띈 것은 나이와 동기였다. 46세 이상이 전체 인원의 50%를 넘었고, 종교적 이유보다는 ‘인생 재설계’와 ‘번아웃 회복’을 위해 걷는 사람들이 훨씬 많아졌다는 점이다.


소름 돋는 우연, 2027년의 특별함
내가 걷기로 계획한 2027년이 무려 5년 만에 돌아오는 ‘성년(Holy Year)’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성 야고보 축일(7월 25일)이 일요일과 겹치는 해를 성년으로 지정하는데, 이때는 산티아고 대성당의 ‘성문(Holy Door)’이 1년 내내 열리고 축제와 특별 미사가 이어진다고 한다. 평소보다 훨씬 많은 순례자가 몰리겠지만, 그만큼 상징성과 에너지가 응축된 해이기도 하다.


이 정보들을 찬찬히 훑어보며 나는 왠지 모를 깊은 위안을 얻었다. 46세 이상이 순례자의 길을 걷는 인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는 통계는 ‘50’이라는 나이가 사람에게 주는 무게감과 삶의 방향성에 대한 혼란이 결코 나만의 유별난 감정이 아니라는 증거처럼 느껴졌다. 인생의 절반을 지나오며 방전된 체력을 회복하고, 궤도를 이탈한 듯한 삶을 재설계하기 위해 기꺼이 배낭을 메는 중년들이 전 세계에 그렇게나 많았던 것이다.


아직 비행기 표를 끊은 것도 아니고, 체력을 다지기 위한 걷기 훈련을 시작한 것도 아니다. 여전히 산티아고까지의 길은 멀고 아득하다. 하지만 내가 걸어갈 길의 역사와, 그 길 위를 걷고 있을 나와 비슷한 사람들의 얼굴을 상상해보니 멀게만 느껴졌던 스페인의 흙길이 묘하게 친근하게 다가왔다. 더욱이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9월이 걷기 좋다는 말만 듣고 정해두었던 2027년이 특별한 의미를 지닌 성년이라니. 어쩌면 이 여정은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그 길이 나를 부른 것일지도 모른다는 기분 좋은 상상까지 들었다.


역사와 통계를 확인하며 머리로 하는 준비는 어느 정도 마무리된 듯하다. 나와 같은 마음으로 걷는 전 세계의 동기들이 있다는 것도 알았으니, 아주 외롭지는 않을 것이다. 자, 이제 남은 것은 이 무거운 엉덩이를 떼고 기초 체력을 기르는 일뿐이리라!


tempImage4h35EK.heic Buen Camino(나저씨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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