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을 나누기로 결심하다
언제나 시작은 즉흥적이었다. 연휴 우울감을 느끼며 무거워진 몸과 머리를 제대로 가누지 못하던 어느 아침, 눈을 떴는데 갑자기 모임을 준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따라 밤새 뒤척이며 생각이 많았던 탓인지도 모르겠다. 최근 내 안의 불안을 혼자 정리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느낌이 있었고, 이제는 누군가와 나누어야 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곧바로 실행에 옮겨졌다.
내가 곧바로 행동에 옮긴 가장 큰 이유는 머릿속 생각을 실행으로 옮기는 데 있어, 일을 저질러버리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걸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낙장불입의 환경을 만들기 위해 제일 먼저 모임 장소를 섭외했다.
내가 수업을 받는 캘리그래피 선생님께 말씀드려 공방을 빌리기로 했다. 선생님께 모임에 대해 대외적으로 이야기하고 다른 분의 장소를 빌렸으니, 이제 계획을 취소하는 것은 선택지에서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그렇게 모임 장소가 정해지자, 막연했던 생각이 조금은 구체적인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그다음은 모임 주제를 정하는 일이었다.
처음엔 이혼과 같은 깨진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 했다. 하지만 주제가 지나치게 제한적이고 민감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실이라는 본질은 유지하되,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주제가 필요했다. 그러다 떠오른 단어가 ‘불안’이었다. 사실 요즘 나를 가장 많이 흔드는 감정도 불안이었다. 상실을 이야기하다 보니, 그 아래에 늘 깔려 있던 감정이 바로 불안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상실이라는 바탕 위에 ‘불안’을 더하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나온 이름이 바로 “수정 중인 밤(인생~ing)”이다. 3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 인생의 과도기를 지나고 있는 사람들이 각자의 상실과 고독, 불안을 나누고, 그 안에서 자신의 삶을 어떻게 수정해 나가고 있는지 이야기하는 모임이다. 그렇게 주제와 장소를 정한 뒤, 모임 플랫폼 “남의 집”에 기획안을 작성해 제출했다. 지금은 심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승인이 나면 3월 말쯤 첫 모임을 열 생각이다.
사고 치듯 일을 저지르기는 했지만, 그런 나의 행동에 후회는 하지 않는다. 이런 행동들 덕분에 나는 작년에 책을 출판하고 개인전을 열 수 있었다. 그리고 올해도 이러한 실행력이 나를 멈추지 않게 하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며, 모임을 준비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이렇듯 머릿속으로만 생각하다 실행하지 못했던 내가, 계산하지 않고 일을 저지르기 시작하면서 5년 전에 적어두었던 계획들을 느리지만 하나씩 실현해 가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가 완성된 사람이거나 성공한 삶을 살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나는 아직도 수정 중이다.” 모임을 연다는 것은 누군가를 가르치기 위함이 아니라, 나 역시 그 자리에 함께 앉아 내 삶을 다시 들여다보기 위함이다. 어쩌면 인생은 무언가를 완성하는 일이 아니라, 끊임없이 고쳐 쓰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