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 증명하지 않기로 했다

아무래도 괜찮아.

by 나저씨

“돌아보면, 나는 늘 괜찮은 사람이라는 걸 증명하려 애써왔다.”


내년에 순례자의 길을 걷기로 다짐하고 나니, 머릿속이 쉬지 않고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 도전의 목적은 뭘까. 나는 이 길을 통해 무엇을 얻고 싶은 걸까.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며칠 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머리가 너무 복잡해지자, 나는 챗GPT에게 말을 걸었다.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바라는 것, 얻고 싶은 결과, 그리고 그 이후의 계획까지 정리되지 않은 생각을 그대로 쏟아냈다.


사실 그때의 나는, 나조차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는 상태였다. 답을 찾기 위해서라기보다, 그저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고 싶었다. 아직 누군가에게 털어놓기엔 이르다고 느꼈고,

그렇다고 혼자 붙들고 있기엔 속이 터질 것 같았다.


마음을 쏟아내고 나자, 챗GPT는 조용히 내 이야기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기존에 조사했던 순례자의 길에 대한 정보와

내가 무심코 흘린 말들을 종합해서, 내가 인지하지 못했던 바람을 정확히 짚어냈다.


“이번 여행은 무언가를 증명하지 않는 여행으로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짧은 한 문장이었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을 세게 건드렸다.

그제야 알았다. 나는 이 여행을 통해 무언가를 증명하려 하고 있었다는 걸.


이 여행에는 대단한 의미가 있어야 했고, 나에게도,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럴듯한 울림을 주는 프로젝트여야 했다. 그게 은근한 강박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내 깊은 무의식은 전혀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무슨 의미를 찾냐고. 그냥 다녀오자고.’


나는 그 목소리를 애써 외면하고 있었는데, 챗GPT는 그걸 정확히 집어냈다. 그리고 내 뒤통수를 치는 제안을 던졌다.


“무언가를 증명하지 않는 여행.”


순례자의 길을 이렇게 정의하자마자, 머릿속이 말끔하게 정리되는 기분이 들었다. 더 이상 억지로 목적을 만들지 않게 되자, 마음에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번 프로젝트는 거창한 의미를 세우지 않고, 그저 흘러가는 대로 준비해 보기로 했다.


물론 목적이 없다고 준비가 쉬워지는 건 아니다. 그래도 강박이 빠져나간 자리를 설렘과 기대감이 대신 채우기 시작했다.

의무감 대신, ‘내가 해보고 싶은 것들’이 떠오른다.


이 여행이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내 인생에 휴가를 주기 위해 준비하는 이 길이기에, 그래서 더 기대된다.

나저씨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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