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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란공방 Apr 25. 2024

오긴 왔는데 좀 망한 것 같다.1

우당탕탕 스페인 체류기-집주인 편

너무 많은 일이 있어서 뭐부터 얘기해야 할 지 고민될 정도로.


스페인 체류기간은 내내(과장이었으면 좋겠을 정도로 정말 내내)순탄치 않았다.


그 시작으로는 한국에서 부터 홈페이지를 통해 알아보고 간 


스페인 집주인이 연락이 없었다.


쎄했지만 일단 비행기는 타야 했기 때문에 나는 바르셀로나로 향했다.


그리고 나는 스페인에 체류하는 내내 쎄한 느낌이 들 땐 


확인의 확인을 거쳐서 따져봐야 된다는 걸  몸소 깨닫게 되었다.


공항에선 바들바들 떨며 준비했던 고양이 관련 서류들은 


밤 늦게 도착해서 그런지 확인하지 않았고,


내가 내민 수화물표의 번호를 확인하는 둥 마는 둥 하고 바로 고양이를 내어 주었다.


나는 시험준비를 열심히 했는데 선생님이 시험을 까먹은 것 마냥 좋긴 좋은데 아쉬워졌다.


그리고 생각보다 더운 날씨에 호기롭게 패딩을 벗어 쓰레기통에 넣어버리고(나중엔 추워서 후회했다)


택시를 타고 동물동반 호텔에 짐을 풀었다. 가장 긴장했던 비행을 마쳐서 한시름 놓았던 그 순간.



집 주인과 연락이 되지 않았다.



호텔 로비에서 직원의 도움을 받아 그리고 파파고의 도움을 받아 전화를 했지만 닿지 않아 결국 문자를 남겨두고 고속철도인  renfe를 타러 택시를 타고 갔다.


그렇게 문 앞에 도착해 겨우 연락이 닿았으나,  


짧은 내 스페인어와 짧은 집주인의 영어가 만나 알아낼 수 있었던 사실은


나는 바르셀로나를 떠났는데


집주인은 바르셀로나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발렌시아 사는 사람이 왜 굳이 그 날 여행을 갔을까)


그렇게 굳게 닫힌 문 앞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날 보고 


마침 영어가 가능하던 이웃 주민이 도움을 주었다.


집주인은 알 수 없이 욕설 섞인 짜증을 냈고 자신이 어디 사는지


낯선 남자가 알고 있다는 사실에 민감하게 반응했는데,

(스피커 폰으로 통화했기에 알아는 듣지 못하지만 분명 욕하는 게 맞았다.)


그래서 어떻게 할건지 알 수가 없었다.


결과적으로 나는 그 이웃분 집에서 신세를 지고 다음날 저녁이 다 되어서야 집주인을 만날 수 있었다.



집주인에 대한 첫인상은


'망했다.'


였다. 걸걸한 목소리, 듣지 않는 태도로 빨간 뿔테 안경을 금발 위로 걸쳐 올리는 세뇨라는 


나랑 안맞을 게 너무나 눈에 보이는 사람이었다.


La luse muy caro.( 전기가 진짜 비싸.)


피곤한 나를 이끌고 집의 이것 저것을 설명해 주는 집주인은


전기가 너무 비싸다는 걸 강조했고


대체 왜 설명해 주는지 모를 부처상 앞에 인센트 스틱을 피우며


내 종교가 크리스찬이란 걸 알아 낸 후에 샤워하고 쉬고 싶다는 날 앞에 두고


돈을 달라고 했다.


중개인이 내가 오면 현금으로 돈을 줄 거라고 했다는 집주인과


필요한 비용은 미리 다 냈다는 나 사이에 


파파고를 이용한 치열한 공방전이 계속 되었다.


나는 말이 통하지 않아도 번역기를 통해 충분히 치열하게 싸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됨과 동시에


두시간 정도의 실갱이 끝에 알아낸 사실은 집주인이 이메일 주소를 잘못 적었다는 것이었다.


일단 내일 다시 전화해서 확인해보겠다는 얘길 끝으로,


우리는 소모적인 핑퐁을 일시 정지하고 쉴 수 있었다.



날 안내해 준 방은 사진과 달랐으며, 옷장엔 본인 옷으로 가득 차 있는 걸 보니


원래 다른 방을 세 놓은 게 분명했지만


지쳐버린 나는 그냥 있기로 했다.


보기만 해도 머리 아픈 파랑과 빨강이 섞인 강렬한 색채의 이불을 고양이와 함께 덮으며 


나는 아직도 귀에 쟁쟁한 집주인 목소리를 뒤로하고 심란한 마음을 잠재우려 애썼다.



여러 모로, 쉽지 않은 정착기가 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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