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책없는 인간 맞습니다.
나는 일하고 있던 학원도 마저 그만둔다고 말 한 후 텅 비어버린 오전 시간 내내
그간 배우고 싶던 것들을 배우기 시작했다.
배우고 싶었지만 방학이면, 그리고 시험기간이면 뒤집히는 시간표 때문에,
이것 저것 배우는 것은 엄두도 못내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5년 넘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들을 미루며 살았다.
그렇게 기타도 치고, 운동도 다니며 몇년간 눈여겨만 보던 시에서 운영하는 체육교실에 가 스킨스쿠버 자격증을 따기 까지 하는 생활은 굉장히 팔자가 좋아보이지만,
사실 나는 그렇게 잘 지내지 못했다.
고양이까지 데리고 갈 생각으로(많이 고민했으나 맡길 데도 없고 얼마나 걸릴지 기약도 없었다.) 서류를 준비하다보니 절대 계류되거나 틀리면 안된다는 압박감에 미래에 대한 고민까지 더해져
불면의 밤이 시작된 것이다.
"어머, 고양이가 팔자도 좋다. 나도 못가본 스페인을 다 가보네."
내가 고양이를 데리고 스페인을 간다고 했을 때 가장 많이 들었던 반응이다.
동시에 각종 예방접종과 서류준비로 찌들어 있을 때 들으면 별로 좋지 않은 말이기도 하다.
사실 저렇게 대답하는 사람들이 왜 저런 말을 하는지는 알고 있었다.
평소 여행으로만 해외를 갔었기 때문에 '해외=놀러가는 곳'이란 공식이 성립됐을 것이다.
하지만 웃으며 좋게 받아주기에는 내 정신상태가 썩 좋지 못했다. 걱정이 너무 많았던 것이다.
나는 불안해서 걷고 또 걸었다. 그리고 스마트 폰에 코를 박다시피 하며 현실을 피했다.
전주에 살던 나는 효자동에서 시작해 삼천동, 평화동, 심하면 중화산동까지 큰 원을 그리면서 걸었다.
그렇게 하루에 4-5시간을 오로지 걷는데만 할애했지만,
불안한 마음은 좀처럼 다스려 지지 않았고 밤에 잠은 잘 못자면서 시간은 계속 갔다.
그리고 나는 더이상 스페인어 공부를 미룰 수 없었다.(그동안은 공부를 거의 안했다는 뜻이다.)
누가 시켜서 이걸 하는 것도 아닌데 공부는 어렵고 재미없기만 해서 대충 알파벳만 뗀 정도였다.
설상가상 전주엔 스페인어 학원이 없어서
크몽에서 구한 과외선생님은 아주 프로페셔널하게 문법을 공부시켜 주셨다.
이러나 저러나 상관없이 가장 적극적인 과외 선생님을 구한 것이었는데 따질 필요도 없었던 게
내 스스로 상태를 돌아봤을 때 공부할 상태가 아니었다.
일과 스트레스로 바싹 마른 명태같은 머리에 문법이건 회화건 들어올 리가 없었다.
순전히 뭐라도 해야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3개월을 듣는 둥 마는 둥 수업을 듣고 나니 어느덧 비행기 날짜가 코앞에 다가왔다.
내가 준비가 됐던 말던 가야할 시기가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