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5. 26. 일기
월요일에 누군가 물었다. 나에게 지난주 있었던 일 중에 기억에 남는 일이 무엇이냐고 했다. 나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토요일에 러닝 후 맥주를 한 잔 한 것이라고 했다. 엄밀히 말하면 두 잔이었지만 작은 잔이었으니까 별 차이는 없다. 술을 마신 것이 왜 좋았나요.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켰나요. 나는 이 질문을 잠깐 생각했다. 무엇이었지. 나는 약간의 행복감이 든다고 했다. 약간의 행복감? 나는 내가 말하면서도 반신반의했다. 그렇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일까.
나는 적당한 바를 좋아한다. 주황색 백열등이나 네온등, 바 뒤에 늘어선 술병들, 그 술병들에 붙어있는 라벨들, 둥근 와인잔, 위태로운 마티니잔, 듬직한 락 잔, 새침한 샷 잔, 피곤한 셰이커, 피곤함을 감추는 바텐더, 구겨지고 손때묻은 메뉴판, 그 메뉴판을 펼쳐보지도 않고 주문할 수 있는 내 기억. 이 모든 것들이 좋다. 그리고 한손으로 온전히 움켜질 수 없는 넉넉한 유리잔에, 발음은 할 수 있지만 의미는 알지 못하는 이름의 맥주 위로 떨어지는 소음들이 좋다. 괜찮은 음악을 틀어주는 곳이라면 더욱 마음에 든다. 세 곡 중에 하나는 익숙하고, 하나는 익숙한 곡과 비슷하고, 나머지 한 곡은 귀에 안들어와서 잠깐 딴 생각하기 좋은 비율이면 적당하다. 살 찔까봐 손 안대는 과자들을 예쁜 그릇에 담아서 내주는 것도 좋다. 누군가 추상예술을 좋아하거나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것처럼, 나도 이런 것들을 좋아하는 것 아닐까.
그리고 한 잔 뒤에 집에 돌아와, 된장찌개에 밥을 먹으면서 감사해한다. 술을 마시지 않았다면 감사함이나 그 비슷한 기분을 느끼지 못하였을 것이다. 술 덕분에 된장찌개를 끓여준 사람의 사랑과 같이 먹지 못하는 사람에 대한 사랑을 깨닫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생활이 언제까지 계속 될 수 없고 언젠가 끝이 날 것이라는 사실을 잠시나마 실감한다. 서운해지기도 하지만 곧 담담해진다. 그것이 시간이고 인생이라는 사실을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을 맥주 한 잔, 두 잔이지만 작은 잔이니까 한 잔이나 다름없는 맥주에 기대서 느낀다. 술 없이는 이 모든 것을 느끼기 어렵다.
이것들은 술을 마시는 합리적인 이유일까 아니면 구차한 변명일까. 이유와 변명은 과연 어느 지점에서 갈라지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