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7.
아침 8:30 비행기를 탔는데 레분초에 발을 디딘것은 그 다음 날 10:10. 약 26시간이 걸렸다. 비행기 두시간 반을 타고 삿포로로, 차량으로 여섯 시간 반을 타고 왓카나이로, 이곳에서 하룻밤을 자고 그 다음날 아침 일곱시 십오분 배를 타고 세시간 가까이 가야 섬에 들어가는 여정. 세 가지 이동수단에 하룻밤 잠자리가 더해져야 그 섬에 비로소 ’도달’할 수 있다.
26시간이라면 할 수 있는게 얼마나 많던가, 라는 생각을 해보다가 사실 그 많은 것들을 하기 싫어서 여행길에 오른 것 아니던가, 라고 스스로 위로를 한다. 그리고 비행기 타는 시간을 빼고는 딱히 지루하지도 않았다.삿포로에서 와카나이로 이동하는 동안 운 좋게 만난 맛난 소바집에서 따뜻한 소바 한 그릇 비웠다. 일어 메뉴판에 빼곡히 음식 사진, 이름, 가격이 적혀 있었고, 내가 고른 음식은 계란이 공손하게 올라 온 (이름모를) 온소바. 이 소바를 젓가락으로 휘휘 저어대고 탄탄한 녹색 면을 입에 넣고 오물거리니, 일본에 온 실감이 비로소 난다.
식당이 있는 동네(시간도 아끼면서 허기를 때우려고 가까운 고속도로 출구로 나왔던 터라 관광지와는 거리가 먼 곳이다)에서 초등학생 몇 명이 사이좋게 걸어가는 것을 봤는데, 경찰인지 교통정리인지 젊고 사람좋게 생긴 아가씨가 그 학생들과 사이좋게 인사하고, 그 학생들의 학부형 연배정도 되어 보이는 아줌마가 야광 잠바를 허리춤에 매고 교통정리를 하는 것이 눈에 띄었다. 순간적이지만, 나 자신이 후진국을 유람하면서, 음 아직은 때묻지 않았군, 이라는 감상에 빠져 있는 선진국인처럼 느껴졌다. 일본에서 말이다.
한참 가다가 Bifuka의 한 휴게소에서 쉬었다. ‘free wifi’와 ‘not tax free’를 선언하고 있는 곳인데, 아이스크림이 어찌나 빨리 녹던지 ‘fast melting icecream’ 표지도 하나 추가하면 좋을성 싶었다. 치즈 운송 트럭도 주차장에서 봤는데, 이곳 북해도는 유제품의 질이 뛰어나다고 한다. 나중에 호텔 술집에서 공짜로 딸려 나오는 안주에 치즈가 있어서 집어먹어 보았고, 돌아오는 날에는 호텔 조식에서 맨우유를 한잔 마셨는데, 둘 다 아주 훌륭했다.
왓카나이의 숙소는 항 바로 앞에 있는 곳이었다. 컴퓨터로 할 일이 있어 꼭대기 12층에 있는 바에서 술을 한잔 마시며 일을 했는데 통유리로 바다 저편이 모두 조망되어 전망이 멋진 곳이었다. 맥주한잔만 하려고 했는데 일본위스키가 메뉴판에 비중있게 모여있길래, 바텐더에게 추천을 부탁했다. 그 바텐더는 오십줄은 되어 보였고, 혼자 칵테일도 만들고, 맥주도 따르고, 서빙도 하고, 계산도 하고 제법 분주하게 움직였다. 선반에 물건을 넣고 빼는 폼이나 접시에 음식을 올리는 손동작이 모두 절제되어 있었고, 서두르기는 했으나 성급해 보이지는 않았다. 불필요한 친절도, 젠체하는 세련됨도 없었다. 신뢰가 가길래 위스키 중 추천해 달라고 했는데, 잠깐 고민하더니 나에게 다케쓰루 퓨어몰트 21년 병을 가져와 내 앞에 올려둔다. 한잔을 주문하니 작은 와인잔에 담아줬는데, 부드럽고, 여운도 길고, 끝에 감도는 초코렛 향도 좋았다. 며칠 뒤 삿포로 스스키노의 바에서 12년, 17년, 21년 산을 모두 맛보았다. (테이스팅용 깔개가 있다!) 12년산은 거칠어서 마음에 들지 않았고, 17년 산은 아주 뛰어나서 21년산과 가격 차이가 많이 나면 17년산을 사오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삿포로 공항에는 나이 없는 단순 퓨어몰트, 니카 커피 몰트, 니카 커피 그레인 위스키만 있었고, 직원에게 나이든 위스키는 없냐고 물어보자 없다고 하는 폼이 이미 오늘만 백번은 답한 것 같다. 결국 커피 몰트 위스키를 사왔는데 비행기 안에서 찔끔거려본 결과 이것도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 조식뷔페. 새벽 다섯시 반에 먹으러 갔는데도 열두시 반처럼 붐빈다. 모두 얼른 밥먹고 레분섬이나 그 옆 리시리 섬으로 들어가려는 인파다. 레분섬에 도착해서 숙소에 짐을 풀고 섬의 북쪽 수코톤 곶(Cape Sukoton)까지 이동했다. 이곳에서 시작하는 트레킹은 공식적으로 4시간 여정, 그래서 이른바 ‘4시간 길’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정식 명칭은 ‘Cape Tour Course’이다. 위 수코톤 곶에서 시작하여 고로타 곶, 수카이 곶 등을 지나게 되어 있어서 위와 같이 이름지어진 것 같다. 4시간이라고는 하지만 일부 여행기에는 사진찍고 밥먹고 하면 5시간 30분 정도 걸린다고 되어 있기도 하다. 수코톤 곶은 버스의 시점이기도 한데, 막차가 불과 3시간 50분 뒤에 있어서 나는 수코톤 곶을 보는둥 마는둥하고 일찍 걷기 시작했다. 수코톤 곶에서 출발한 버스가 위 코스 끝나는 지점의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는데는 십 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다.
수코톤 곶에서 시작하는 그 길은 처음에는 찻길로 시작해서 차를 보고 걷다가, 땅 바닥을 보고 걷다가, 바다를 보고 걷다가, 꽃을 보고 걷다가, 하늘을 보고 걷다 보면 고로타 곶에 도착하게 된다. 고로타 곶에서 바다의 막막함과 무심함에 서운함을 느껴 잠시 주저앉아 멀리 바다 위 한 점에 시선을 던져두고 퍼질러 있다보면 엉덩이가 젖고 아랫도리가 시려서 자리를 털고 일어날 수밖에 없다.
꽃, 꽃. 가는길은 여기저기 산발적으로 핀 야생화들이 초록을 단조롭지 않게 해준다. 남들은 꽃 이름을 잘도 아는데 나는 그 오묘한 성명의 세계에 발들일 엄두를 못내고, 색과 크기와 높낮이로만 분류해 보다가 그조차도 지쳐서 쳐다만 보게 된다. 꽃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는 시 구절이 있긴 하지만, 이름 기억도 어렵고 잘못된 이름을 부르는 불경을 저지르기 보다는 그냥 입 다물고 잠시 응시하여 망막에 새기려 해보고, 다시 걷다가 비슷한 꽃을 만나면 그 응시를 기억해 내려 해보지만 몸짓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꽃 구경하다 질리면 폐부에 시린 공기 들이마시고, 소리 몇 번 지르고, 알싸한 목구멍과 후련해진 속마음에 좋아하는 노래 가락 잠시 흥얼거리다, 기억나는 가사만 웅얼거리다 보면 어느덧 시간이 지나 있다. 내가 그 바다를 보면서 마음에 떠 올린 노래가사는 바로 이것이다. ’Time is on ocean but it ends at the shore, you may not see me tomorrow.’ 밥 딜란의 '오 시스터'라는 곡.
비는 계속 흩뿌린다. 주룩주룩 머리 위로 내리다가, 사선으로 얼굴을 때리다가, 옅은 덩어리처럼 어깨를 감쌌다가 한다. 판초우의를 덮어 쓰고 있어도 몸이 모두 축축해지고 머리는 막 감고 난 것처럼 젖어있다. 자주오는 비 때문인지 길은 양 옆의 수풀로 덮여 있는 곳이 많고, 자연스레 신발 안에도 물이 가득 찬다. 잠시 멈춰 앉아 양말에서 물을 짜내고 넋놓아 풍경을 바라본다. 새푸른 언덕과 시퍼런 바다 사이의 경계를 희뿌연 물안개가 흐려놓는다. 생각의 과잉으로 멀미가 날 것 같아 자리를 털고 일어나보면 좀전까지 느껴지지 않던 다리의 뻐근함이 느껴진다. 걸을때는 피곤함을 느끼지 못하다가도 쉬고 나면 오히려 실감한다.
수카이 곶 전 마을 말미에서 길을 놓쳐 잠시 헤매었다. 길이 원래 좁았는데 우기이다 보니 수풀이 금새 자라기 때문인듯 길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버스를 놓칠까봐 아쉬움을 뒤로 하고 도로를 택해 좀 걸었고, 30분 정도 뒤에 원래의 루트와 합류지점을 찾았다. 수카이 곶을 못본게 못내 아쉬웠다.
정류장으로 향하는 길에 소학교를 마주쳤는데, 비석 위에 나무를 해오는 소년이 그 무게를 간신히 버티며 걷는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학교 앞에 이런 조각을 해 둔 이유는 무엇일지 상상해 본다. 공부 못하면 평생 무거운 나뭇짐이나 해야 한다는 경고라고 상상하자니 너무 세속적이고, 추운 부모를 위해 나뭇짐을 해오다가 행방불명 되어 버린 소년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 궁상맞다. 더 상상해보려고 하다가 처량한 벨소리가 울리기 시작해서 잠시 귀를 기울여본다. 나무를 해 오면 나무를 때든 팔든 해야할 것인데, 저 소년은 나뭇짐을 매기 위해 나무를 했을 것 같다. (이때는 뒤만 보고 앞을 보지 않았는데, 다음번 여행때 소년의 앞모습을 보니 나뭇짐을 하고도 책을 읽는 상이었다. 싱겁다.)
다음날에는 모모이와 언덕을 트레킹했다. 정식 명칭은 ‘Momoiwa Observation Course’ 시작점은 카푸카 항(선박 터미널)이지만, 나는 카푸카항의 정 반대편에 있는 숙소 모모이와소부터 걸어서 시작했다(이 숙소의 운영은 나름 유쾌하고 합리적으로 보이나, 정치적으로 매우 못마땅한 부분이 있다). 제법 걸어 모모이와 전망대에 도착했지만 안개가 짙어 사오십미터 밖은 보이지 않았는데, 수십 분 더 걸으니 막힌 숨을 놓듯 시야가 탁 트이는, 바다와 섬이 한눈에 들어오는 지점이 있다. 그 갑작스러움에 놀라 잠시 주춤거릴 수밖에 없다.
이곳을 지나 좀 더 걸어가면 상상력을 자극하는 언덕 위에 등대가 하나 보인다. (유감스럽게도, 이 때 나에게는 셔터아일랜드의 등대가 떠올랐다.) 미천해 보이는 무인등대 철문의 밖에서 잠긴 자물쇠를 만지작거리다가, 안에서 인기척이 들리면 무서우면서도 일본어를 몰라 곤란해질것 같으므로 다시 길을 떠난다.
여기서부터 마을까지는 야트막한 내리막. 비가 제법 내리는데도 단체로 트레킹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대부분 노인이고, 노인이 아니라고 강변하는 듯 보이지만 반은 체념한 것 같은 중년도 좀 있었고, 젊은치들은 몇 있었다. 확실히 이 섬은 일본 노인들에게 인기가 많은 것 같다. 내가 이곳 섬에서 본 비일본인 여행자는 나를 포함한 우리 일행 여덟명, 이스라엘에서 군복무를 마치고 온 스물 넷 정도 되는 남녀 커플(여자가 하루키 책에 푹 빠져서 일본에 오게 되었는데, 하루키 책도 잔뜩 사는 바람에 이를 짊어져야 하는 남자쪽이 불만이 좀 있다고 했더니, 여자는 다른 짐은 떠넘겼을지 몰라도 책은 자신이 전부 들고 있다며 당당하게 변명했다), 체코에서 온 큰 배낭을 맨 중년 남자(이 사람은 별다른 계획이 없이 지구 반대편에 와서 움직이는 것 같다. 레분초에 도착해서도 항구에 마중나온 우리 숙소 직원을 통해 자신의 숙소도 즉석으로 잡았고, 와카나이로 돌아오는 배에서도 어느 일본인에게 ‘와카나이에는 뭐가 좋죠’라고 물어보는 것을 들었다. 그 일본인은 한참이나 고민하다가 와카나이는 레분초를 가기 위한 곳이라고 멋적게 답했다)가 전부였고, 나머지는 모두 일본 사람들 같았고, 그 중 대부분은 일본 노인인 것이다.
일본인에게도 레분초는 특별하고 비용이 많이 드는 여행지라고 하는데, 정작 이곳을 방문한 일본 노인들의 얼굴에서 흥분을 읽기는 쉽지 않았다. 일본 노인들도 참 굴곡의 현대사를 살아온 사람들이다. 전후, 전공투, 버블, 침체, 아베. 그런데 마주치는 표정들은 대부분 심심하고 멍해 보인다. 계속 살아지는데 내가 어쩔 수 있겠느냐는 체념처럼 보인다. (어디까지나 내 상상이다.) 바다를 보나 초목을 보나 하늘을 보나 모두 색이 선명한 이곳에서 그들의 얼굴은 더욱 흐려보인다. 아침에 일어나 등산복 옷에만 색을 칠하고 얼굴에는 칠하는 것을 잊은 것처럼 느껴진다. 이번 여행에서 일본 노인하고 단 한번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왓카나이에서 아침 식사 후 산책을 하다가 두 노부부가 기도하는 자세로 서로 한참이나 마주보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그들이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아까 당신들이 한 것이 무엇이냐고 내가 물었다. 할머니는 환하게 웃으면서(일본인 기준으로 그렇다는 거다) 이번 여행이 무사히 끝나게 해달라고 일본 신에게 빌었다고 설명해주는 동안, 할아버지는 으레 그 무채색의 표정이다.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시시한 소원이기는 했지만 그들의 얼굴색에 어울리는 내용같다.
돌아오는 길도 가는길만큼 시간이 들었다. 삿포로 공항에서는 날이 맑았는데, 인천공항에 내리니 아주 궂다. 한번 더 가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