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0.
어떤 장소가 느닷없이 좋아지기도 한다. 그곳까지 가는 여정 때문일수도, 기대하지 않았던 호의때문일수도, 싸게 먹은 한그릇 국수 때문일수도 있는데, 한번 좋아진 다음에는 그 감정이 좀처럼 사그러들지 않고, 다시 한번 확인해보고 싶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이곳에 다시 왔다. 세가지 교통수단에, 하룻밤이 지나야 도달할 수 있는 이곳. 오후 두시 비행기에 몸을 실었는데, 섬에 도착하니 다음날 다섯시가 다 되어간다.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충동 때문에 여행을 한다. 가슴에 돌을 몇개 얹어놓고 사는 기분, 안풀리는 일 하나가 생각나면 그것만큼 안 풀리는 다른 일 몇개가 연달아 떠오르고, 심장과 명치가 바닥으로 잡아끌리는 기분을 하루에 몇차례씩 느끼고 나면, 한계가 다다랐다는 것을 안다. 어느날 더는 안될 것 같다는 기분과 함께 가장 가까운 기회를 노리게 된다. 일주일 전까지도 망설이고 삼일 전까지도 갈 수 없다고 느낀다. 그러다 다음날 가장 걱정되는 다음 일정을 바라보며 여행 결심을 굳힌다. 이미 비행기표 삯도 올랐고 숙소도 마음에 드는 곳에는 더 이상 방이 없지만, 그런 것들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번 여행도, 금요일 비행기 두시표를 수요일 오후 두시에 예매하면서 준비하기 시작했다.
사포로에서 첫날 자는 것은 좋은 계획처럼 보였다. 북해도, 사포로, 누구나 와보고 싶어 하는 곳 아닌가. 그러나 사포로 시내를 여기저기 쏘다닐 궁리는, 밤 여섯시에 사포로 역에 도착했을 때 밀려오는 피곤함, 떠나지 말았어야 했다는 후회, 돌아갈때는 얼마나 마음이 무거울까하는 두려움, 아직 남아있는 감기 기운 등등이 밀려 오면서, 따끈한 국물 한사발하고 자고 싶다는 생각 외에 다 귀찮아 진다. 가까스로 호텔을 나서, 어둑한 거리를 몇 블럭 걸어내려가, 있을법하지 않은 곳의 사거리에 라면가게 하나를 발견하고 속을 뎁힌다.
다음날 사포로에서 와카나이까지 기차를 탔는데, 지루했다. 의자는 고정되어 있고(당연하지만), 풍경은 고정되어 있지는 않았지만 전반적으로 기억에 남는 것은 고정된 의자와 비슷하다. 왼쪽 엉덩이에 힘을 주었다가 오른쪽 엉덩이에 힘을 주었다가 머리를 기댔다가 곧추 세웠다가 다리를 떨었다가 아무것도 안했다가 온 세상을 동시에 생각하다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으면, 한시간 정도 지나 있다. 이걸 네번 더 해야 한다는 생각에 기겁을 한다.
레분섬에 도착했더니 숙소에서 마중나온 중년 아저씨가 나를 반긴다. 첫인상이 간사하고, 보면볼수록 평범하고, 조금 더 보니 익살스러워 보이는 아저씨다. 십오인승은 되는 버스에 나 한명만 태운다. 버스에는 성게를 귀엽게(성게가 귀엽다니!) 표현한 로고가 그려져 있다. 이 숙소의 이름도 ‘펜션 우니’, 성게 펜션이다. 이 펜션의 여주인(그 아저씨의 아내)은 자상한 얼굴인데 눈이 작아 사람을 의심하는 것처럼 보였으나, 식사때마다, 도시락을 싸주면서, 배웅하면서 그 표정을 계속 대하니 오히려 작은 눈 덕분에 미소가 소녀처럼 수줍어 보인다. 그 아들은 올해 서른인데, 넉넉한 풍채지만 쟁반을 가져오는 모습이나 답하기 전에 생각하는 모습을 보니 신중한 성격이라는 것을 알겠다. 괜찮은 조화다.
페리 터미널 앞에서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섬 북쪽끝으로 온다. 이곳에는 수코톤 곶이 있는데, 섬의 최북단이기는 하지만 바로 앞에 무인도가 떡하니 시야를 막고 있다. 여기에서 사할린까지 180km라고 하지만, 사실 그보다 여기에서 저 무인도까지 500m라는 설명이 더 어울린다. 사할린까지는 저 무인도로부터 179.5km아닌가. 버스정류장에 붙어 있는 상점에 앉아 따뜻한 코히 한잔을 하며 그 무인도를 격려해주고, 트레킹을 시작한다.
이 수코톤 곶에서 시작하는 4시간짜리 트레킹에 대한 기억으로, 이 섬을 다시 찾은 것이다. 처음 방문하면 으례 느끼는 흥분을 빼내도 여전히 이 길이 좋은지 확인하고 싶었다. 처음 왔던 7월은, 계절은 좋은 때였으나 날씨는 않좋았는데, 이번에는 그 반대다. 더 이상 봄의 연두색 풀들은 볼 수 없었지만 햇볕은 잘 비추었다. 풀들은 바랬지만 바다는 여전히 시퍼랬는데, 그건 바다라서 그렇다. 날이 밝으니 바다는 지근거리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비안개를 통해 보았을 때는 더 멀리, 더 아련해 보였다.
고로타 곶에서는 바람이 너무 세서 잠시만 앉았다가 일어난다. 바람이 어찌나 센지, 순간순간 멈춰서서 몸을 웅크려야 했고, 내리막에서는 아찔하기도 했다. 한발을 떼면, 그 발을 바닥에 내딪기 전에 다른쪽 발에 가서 부딪치기도 여러번 했다. 겨울에 이 바람에 맞서는 것을 생각해보는 것만으로도 몸이 시렸다. 걸어 내려가다가 예전에 앉아서 무턱대고 바다를 바라보았던 지점을 기억해 내서, 다시 그곳에 앉아 본다. 생각해보니 그때는 칠월 이일, 지금은 시월 이일. 넋놓고 풍경을 바라보니, 그때의 감동이 기억나는듯 싶고, 지금의 감동도 새로워지는듯 싶다. 나무 하나 없는 구릉. 예전에는 푸른색에서 이제는 누릿끼리한 빛이 섞여가고 있다. 그 너머 바다. 예전과 똑같지만 비안개가 없어 오늘은 더 선명하게 보인다. 거센 바람덕에 풀들이 누웠다 일어서는 모습이, 햇볕이 빠르게 걷혔다가 다시 어두워졌다가 히는 것처럼 보인다. 나 자신은 세 달 동안 어딘가 갇혀 있다가 이제 빠져나오는 기분이다.
수카이 곶까지 가는 길은 좀 더 평이하고, 매점도 하나 있고, 벤치도 몇 개 있다. 좀전까지는 세상의 끝이었던 분위기에서 약간은 급작스럽다고 할만한 변화다. 그래도 따뜻한 캔커피를 마실수 있고, 가지고 온 도시락도 편하게 먹을 수 있다. 도시락은 그 내용물이 뭐든 간에, 땅바닥에 앉아 먹는것보다 의자에 앉아 먹는게 좋다는게 내 생각이다. 여기서부터 버스정류장까지 가는 길은 도로 옆에 붙은 인도를 따라가는 것인데, 뒤돌아보면 언덕 사이로 바다가 보인다는 것 말고는 평이한 길이다. 지루할 수 있는 길이지만, 안락하다는 기분이 더 컸다. 자전거를 탄 모자 말고는 아무도 만나지 않고 코스 끝 하마나카 마을에 도착한다.
버스 정류장까지 오니 다음 버스는 세 시간 뒤에야 있다. 근처에 있는 호수도 걸어보는데, 바다를 본 뒤의 호수는 지루할 따름이다. 그래도 한시간을 지나가게 해주었으니 유감은 없다. 호수 앞 호텔이 있어서 카페가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감에 들어가본다. 호텔 이름은 코린티안 호텔인데, 문 앞 기둥을 코린트식이라고 주장하고 싶은 의도는 알 것 같았다. 주인은 호텔 안에 카페가 없다고 하면서도, 친절하게 그 동네에 있는 카페로 가는 약도를 그려준다.
카페가 이 동네 어귀에 있는게 신기했다. 여기는 관광객이 굳이 올만한 곳은 아닌것 같고, 편의점도 없고, 자판기도 코드가 뽑혀 있는데, 일요일에 여는 카페가 하나 있는 것이다. 세시가 다 되어 들어갔지만 아마 내가 첫 손님일 것 같다. 아이스 커피를 주문했는데, 곱게 늙었지만 보이쉬한 매력이 남아 있는 여주인은 어찌나 미안해하던지, 그것을 주문한 내가 나쁜놈이 되어버린 기분이다. 메뉴를 신중히 보고 프렌치커피를 주문해본다. 프렌치프레스도 안쓰고, 크림도 안들어가는, 그냥 핸드드립 원두커피다. 왜 프렌치커피인지 물어보고 싶지만 다시 한번 내가 나쁜놈이 되어버릴까 두려워 그냥 내버려둔다. 디저트도 시킨다. 이음절에 있는 강세에 주의해서 발음하지만 전달이 안되었는데, 메뉴판을 손으로 가리키니 ‘데저또데저또’하면서 고개를 연신 주억거린다. 치즈케이크, 체리케이크, 초코케이크, 쉬폰 등 여섯가지 후식을 가지고 와서, 그 중 체리케이크를 고른다. 잠깐, 내가 어디에 있는지 혼란스럽다. 일본 최북단, 작은 마을, 일요일, 문 연 카페 하나, 프렌치커피, 체리케이크. 음, 커피와 케이크를 즐겼는데 내가 고양이로 변해있지 않기만을 바랄뿐이다.
저녁에 돌아와 식사를 하고, 온천에 몸을 담갔다가(한국어로, 몸에 문신이 있는 분은 ‘단단히’ 거절한다고 안내되어 있다), 다음날 아침에는 모모이와 트레킹에 나선다. 이 길을 걸을때는 비가 와서 좀 더 처량한 분위기를 즐겨 본다. 지난번과 다른 점은, 경사가 있는 등산로는 폐쇄되었고, 군데군데 길 정비를 위한 자재들이 쌓여있는 것이 보인다. 헬기로 내렸을까, 자재들을 손으로 들고오기에는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이 섬까지 오는 길이 멀다고 불평했는데, 이 먼길을 일을 하러 오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생각이 미치니 조금 겸손해지고, 그 일꾼에게 고마운 마음이 든다. 배를 타기 전에 온천에 다시 갔는데, 비를 맞으며 트레킹을 한 뒤의 온천은 아늑했다. 항구에서는 펜션 주인이 내가 펜션에 놓고 온 펜을 가져다주러 나와 있었다. 하루 네 번 배가 뜨는데, 나는 첫 뱃시간 이전에 체크아웃했고, 내가 타려는 배는 세번째였으니, 그는 아마 세번이나 항구로 나와서 나를 찾으려 했을 것이다. 이 길이 멀다고 불평했던 것이 더 부끄러워진다.
저녁에 왓카나이로 나오는 배를 탔다. 여기서는 도미인이라는 호텔에서 머물렀는데, 옥상에 온천이 있고, 노천탕도 근사하게 만들어 놓았다. 사람도 없어서 노천탕에 혼자 앉아 비를 얼굴에 맞으며 몸을 녹여본다. 평이 괜찮은 스시집에서 열두 점이 나오는 스시를 먹고, 사포로 맥주를 조끼(생맥주를 이렇게 말하는듯 하다)로 마신다.
그리고 아나호텔 꼭대기에 있는 바에 왔다. 세달 전 이곳에서 내 인생 최고의 위스키인 타케츠루 21년을 맛보았다. 이를 추천해 준 바텐더도 다시 한번 그 인상을 확인해보고 싶었다. 큰 키, 검은 양복, 하얀 셔츠, 회색 넥타이, 명찰, 호텔 뱃지, 모두 세 달 전 그대로다. 머리도 그때와 같은 스포츠머리인데(아마 평생 이 스타일이었을 것이다) 가운데가 희미해져가는 것을 지난번에는 몰랐다.
이번에도 타케츠루 21년으로 시작해, 계속해서 일본 위스키 중에 추천을 요청했고, 그는 요이치 12년, 이치로몰트 MWR, 츠루 17년(블렌디드 위스키), 니카 미야기쿄(이건 별로였다), 히비키 17년, 산토리 치타(이건 최악이었다) 순으로 나에게 가져다 주었다. 그리고 챈들러를 위해 김릿을 한잔, 근사한 색의 칵테일 류호와 오로라, 만드는 폼이 너무 멋져서 주문하지 않을 수 없었던 마티니, 가장 마지막은 다시 타케츠루 21년 더블을 마셨다.
그 바텐더가 얼음을 부수기전 오른팔을 몇 번 굽혔다 펴는 것을 보면 직업병이든 노환이든 있는 것 같은데, 그 모습이 멋져보인다. 바 안에서 무슨 일이든 감당할 수 있어 보이는 사내이지만, 팔꿈치는 조심해야 하는 것이다. 삼십 후반에 접어든 노련한 투수가 선수생활 내내 자신을 괴롭히는 약지손가락을 신중하게 점검하는 느낌이다. 그가 얼음을 부순건 옆에 앉은 중년 아저씨가 버번을 시켰기 때문인데, 나는 그 사람이 포로지즈 더블 온더락과 하이볼에 담긴 얼음물을 아무렇지 않게 마시는 것을 보며 순간적으로 호통을 칠 뻔했다. 여기 한 남자가 영혼과 육체와 나이를 바쳐 얼음을 부수고 술을 준비했는데 당신 태도가 그게 뭐냐고.
그러나 이 바텐더에게는 어떤 작위, 부작위의 모욕도 영향을 줄 수 없을 것이다. 내가 베리굿베리굿을 연발해도 굳게 다문 입술에 한번 힘을 줄 뿐 표정의 변화가 없는 것처럼, 그 반대의 상황도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릴 것이다. 이 바 안에서는 나를 치켜세울 것도, 나를 떨어뜨릴 것도 아무것도 없다는 듯이. 내가 술을 한잔 산다고 해도, 집에 운전해서 가야 하니까 안된다고 한다. 세상의 끝에 들어가기 전, 이런 술집을 하나 알아두는 것도 나쁠것 없다. 통유리 창문 밖으로는 오오츠크해가 보이는 곳. 일본 위스키를 여럿 갖추고 있는 곳. 바텐더가 두 손으로 따뜻한 타월을 건네고, 신중하게 얼음을 부수고, 세련되게 마티니를 젓고, 무지개빛 칵테일도 척척 만드는 곳. 자신 안에 단단한 무언가를 갖추고 있어서, 다른 사람이 그를 보는 것 만으로도 든든해지는 느낌을 주는 사나이가 지키는 곳.
다음에는 겨울에 와보아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