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부코스키 우체국, 팩토텀, 여인들
술마시고 토하고 다시 술마신다. 섹스하고 헤어지고 다시 만난다. 이 모든 것을 되풀이한다. 여자가 달라지고 술 종류가 가끔 바뀐다. 빨간머리에서 금발로, 스카치에서 샴페인으로. 싸우기도 하고 얻어맞기도 한다. 나이를 먹으면 만나는 여자는 더 젊어지고 마시는 술은 더 많아진다. 우체국에서 10년 넘게 일한 것이 대단한 경력이고, 잡역부를 전전하는 것이 신나는 모험이고, 아무 여자나 후리고 다니는 것이 특권이다.
이 모든 것이 당연하게 느껴지는 직업이 하나 있다. 바로 작가다.
부코스키 작품은 2006년도에 처음 접했다. 잡역부(factotum). 대단한 소설이었다. 배경도 없고 맥락도 없다. 돈이 떨어지면 일하고, 일한 뒤나 혹은 일하는 중이라도 술을 마신다. 여자들은 알아서 따라 붙는다. 소설을 읽다보면, 마시지도 않은 술에 취하는 것 같고, 숙취를 느끼는 것이 그렇게 나쁜 일은 아닌 것처럼 여겨진다. 문장은 짧고, 생각은 솔직하다.
주인공 헨리 치나스키는 자신에게 어떤 세속적인 기준도 적용되지 않는다는 듯이 행세한다. 그렇다고 어떤 고매한 정신세계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일년에 삼백일을 숙취에 괴로워하면서도 술을 마시는데, 그 이유는 어떤 고통을 잊기 위한 것도 아니고, 쾌락을 좇는다는 인상도 주지 않는다. 그저 마시는 것이다. 누추한 방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돈이 떨어져서 며칠을 굻어도, 돈이 생기면 바로 술부터 산다. 취직을 하고 여자와 사귀기 시작해도, 몸이 아프고 여자가 떠나도 마신다. 모든 인생사가 술병과 다음 술병 사이에서 일어나는데, 그 이유에 대해서는 전혀 고심하지 않는다. 어떠한 고민도, 어떠한 목적도 내비치지 않는다. 그저 마시는 것이다.
그리고 쓴다.
그가 단순한 주정뱅이처럼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끊임없이 쓰기 때문이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 술마시는 것이 정당화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가 성공한 작가가 된 것은 더욱 다행인데, 적어도 그가 마시는 술이 작가로서의 실패 때문이라는 오해를 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가 쓴다는 사실보다 더 마음에 드는 것은 그의 태연한 태도다. 일을 시작하고 관두는 것도, 여자를 만나고 헤어지는 것도, 술을 마시고 다음날 숙취에 시달리는 것도 모두 태연하게 받아들인다. 글쓰는 사람의 울분도, 지적인 사람의 우울함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 태연한 태도에 빠지면 어느새 나도 모르게 술잔을 홀짝이고 있게 된다.
영화는 맷딜런 주연의 "삶의 가장자리"(원제 "Factotum"), 미키 루크 주연의 "술고래"(원제 "Barfly")가 있는데, 둘 다 볼만하다. 연기는 맷딜런이 마음에 드는데, 너무 깔끔하게 생긴 것은 어쩔 수 없다. 미키 루크는 말투가 흥미롭기는 한데, 실제 치나스키라고 하기에는 너무 다정한 것 같다.
이번 주말 한잔 해야겠다. 어제도, 그제도 했는데, 오늘이라고 안될게 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