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하숙 -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조

카미노 데 산티아고와 호스피탈리에

by 정호성

어제 tvn에서 방영한 "스페인 하숙"을 보았습니다. 배경이 된 마을은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조.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가는 여정에서 손에 꼽는 아름다운 마을입니다.


이 마을로 진입하기 전에는 볼품없는 마을과 포도밭이 지루하게 늘어져있습니다. 사실 이 지역 와인밭은 스타 와인메이커 Alvaro Palacios 덕분에 세계적으로 유명해졌고, 저도 그 중 하나인 Petalos를 꽤 좋아합니다. 마을로 진입하면 우선 언덕 위에서 이 마을을 내려다볼 수 있는데, 오래된 건물들이 곡선을 그리며 늘어선 사이에 성당과 수도원이 불쑥 솟아 있어 마치 중세시대로 돌아온 것 같습니다. 마을 초입 높은 곳에 허름한 알베르게가 하나 있고, 겨울인데도 난방을 전혀 안해주었다고 누군가 투덜대는 얘기를 들었지만 그 앞에서 내려다 본 전망은 아주 좋았습니다.


마을로 걸어들어가면 꼬불꼬불한 골목길이 편안하게 느껴지고, 길바닥이나 건물 벽면이 언제부터 여기에 있었을까하고 상상하게 됩니다. 높은 문이 굳게 닫힌 큰 수도원 앞에 잠시 서성이면, 이 문만큼이나 금욕적이고 성마르고 키가 큰 수도사가 갑자기 나와서 아무런 관심 없다는 듯이 나와 내 배낭을 한번 쓱 쳐다보고, '이 길을 걷는다고 구원받기를 기대하진 마. 그렇게 쉬운게 아니라고.'내뱉고 다시 들어가버리고, 그 옆을 지나가던 수녀님이 씩 웃으며 '저런 늙은이가 하는 말은 신경쓰지 마요. 저 앞에 바르가 있으니 카페콘레체나 한잔 하고 가요.'라고 말해 줄 듯 합니다. 안개라도 낀 날에는 제법 환상적인 분위기가 되는데, 길가다가 야고보가 사도요한하고 같이 퍼질러앉아 가죽으로 만든 와인주머니를 주거니받거니 하며 꿀꺽꿀꺽 와인을 마신 뒤 왼손등으로 수염을 쓱 문질러 닦고, 어이 이리 와서 한잔 하라고,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가봤자 이만큼 운치있는 건 아냐. 나도 내 무덤을 여기로 옮겨오고 싶다니까, 하고 말을 걸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마을에는 뭔가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구석이 있습니다.


사실 이 마을의 진수는 이곳을 떠나면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마을을 빠져나오면서 야트막한 언덕을 몇 시간 걸었던 것 같은데, 약간 높은 곳에서 이곳 마을에 동이 트는 것을 바라보며, 내가 어젯밤 묵고 조금전 걸었나온 마을이 이렇게 환상적이었구나 하고 감동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주변 산들에 둘러쌓여 안개에 잠겨있는 모습에서, 이미 이곳의 속살을 보고 나온 나 자신과 이 마을 사이에 은밀한 비밀을 하나 공유하게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곳에서 순례자들이 묵는 숙소는 '알베르게'라고 부릅니다. 호스텔을 스페인어로 부르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을 '호스피탈리에'라고 불렀던 것 같습니다(프랑스에서는 이렇게 불렀던 것 같고 스페인에서는 호스피탈레로스?라고 불렀던 것 같습니다.). 카미노 데 산티아고를 통해 좋은 경험을 많이 했지만, 그 중 진지한 호스피탈리에를 만나서 그들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환대(Hospitality)를 받은 것이 가장 강렬한 경험이었습니다. 이번에 "스페인 하숙"의 호스피탈리에들도 그 면면을 보니 순례자들을 제대로 환대해 줄 것 같네요. 앞으로가 기대됩니다.


이하는, 2007. 3.중순경부터 같은 해 5.중순경까지 르쀠엥벨레Le puy en veley부터 피니스테레Fininsterre까지 걸었을 때, 인상적인 호스피탈리에들에 대해 메모해 놓은 글입니다.




[호스피탈리에]


사실 많은 곳이 사업장이다. 가격을 제시하고 침대와 샤워를 제공하는 곳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그들은 도장을 크레덴샬에 찍고 날짜를 기입하고 거스름돈을 주고 잘 가라는 말을 하는 것으로써 의무를 끝난다. 상거래의 의무 말이다. 사실 잘 가라는 말을 듣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은데, 전날 계산을 마치면 다음날 아침 일곱시에 길을 나설때는 ‘접수계원’이 자리에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런 곳은 대부분 고용된 접수계원이거나, 시에서 운영하는 곳이므로 여행 안내소에 근무하는 공무원의 여러 작업 중 하나거나, 혹은 도장과 돈통을 두고 알아서 하시오라는 식의 다소 관리가 소홀한 곳이다. 스페인의 포르토마린 숙소에서는 관리자가 저녁에 와서 돈만 걷고 바로 가버렸는데, 큰 건물에 많은 침대와 샤워시설에 화장실까지 모두 신식이었지만 샤워장에는 커튼 하나 없고 화장실에는 휴지 한조각 없고 주방 찬장의 수많은 수납장에서 내가 발견한 거라고는 덩그러이 놓여있는 일회용 접시 하나와 포크 하나였다. 누군가 상징적인 의미로 놓아 둔 것 같았다. 동전으로 돌리는 신식 세탁기는 있었으나 빨랫줄 설치는 엉망이어서 양말 한 짝만 널어도 축 늘어졌다. 방의 전등불은 어디서 조작하는지 알길이 없어 사람들은 밤 열한시까지 백열등 아래서 잠을 청하다가, 에스빠뇰 아주머니 한 명이 길길이 날뛰며 스위치를 기어코 찾아내 불을 끄자 누워있던 사람들 전원이 한참이나 박수를 쳤다. 이런 곳에서 당신은 하나의 숫자, 지방 관광수입에 기여하는 지면 위의 숫자 1이다.


자기가 하는 일에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이는 호스피탈리에도 있다. 벤토사의 젊고 이국적이고 친절한 호스피탈리에는 저녁이 되면 바에서 술을 들이부으며 시간을 보내서 뭔가 문제가 생기면 그를 만나러 바까지 가야했다. 빌라카자 데 시르가에서는 멕시코 출신의 노년 아주머니가 본국에서는 자신이 늙었기 때문에 일할수 없지만 이곳 스페인에서는 가능하며, 아마 이곳에서 좀 더 큰 숙소로 직장을 옮길거라고 했고, 멕시코에 한국인이 너무 많다는 불평까지 들어주어야 했다. 이 호스피탈리에는 저녁 시간쯤 되어 사람들이 더 이상 오지 않자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나 오십일의 여행동안 닷새에 하루꼴은 훌륭한 호스피탈리에를 만날 수 있었다. 그중에 잊을 수 없는 사람은 누구보다 프랑스 에스띠앙에서 만난 뱅쌍이었다. 그는 수년 전에 순례를 마쳤고 사년 전부터 이곳에서 생활한다고 했다. 이곳은 성직자가 없는 종교 공동체였고, 그 목적은 순전히 순례자를 돌보는 것이었다. 그는 여기서 청소를 하고 잼을 만들고 요리를 하고 순례자와 같이 식사를 하고 설거지를 하고 석식 후에 그리고 조식 전에 짧은 종교 의식을 하고 의식 중간 중간에 성경 구절을 낭독 하기도 했다. 그리고 다음날 오후가 되면 새로운 순례자를 맞아 들여서 화장실과 침대를 보여주고 빨래도 해준다며 헤 웃으면서 말했다. 다시 아침이 되면 어제 아침과 마찬가지로 아쉬워하며 순례자들을 보낼 것이다. 이십대 젊은이고 한쪽 눈이 심한 사시인 그는 무언가 고뇌를 안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슬퍼 보이기도 했는데, 말을 건낼때 얼굴에 갑자기 피어나는 순진해 보이는 미소가 아름다우면서도 어딘가 내 마음 한구석을 내려앉게했다.


씨리누에나의 유타는 가장 프로페셔널한 호스피탈리에였다. 산토 도밍고 델 칼자다를 오킬로미터 정도 남겨둔 작은 마을에서 서른명 남짓한 마을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그녀는, 쓰레기와 잡동사니로 가득한 집 한 채를 사는 것으로 그 일을 시작했다. 농부 한 명을 고용해 안에 있는 것들을 모두 끄집어 내고 물은 이십여미터 떨어진 파운틴에서 길어다가 생활하면서, 기어코 집 안으로 수도관을 끌어오고 화장실도 만들고 샤워장도 손수 만들었다. 그녀는 나의 크레덴샬을 보면서 한국에는 순례길이 없는지, 왜 굳이 이곳에 와서 걷는지 직설적으로 물었다. 대부분의 서양인이 궁금해하지만 묻지 않는 질문 말이다. 그리고 이 숙소는 기부금으로 운영되지만 그것은 전적으로 나의 선택이며 다음날 아무것도 놓여 있지 않아도 나를 비난하지 않을 것라고 빈틈없이 설명했다. 그리고 휴식을 위해 음악을 틀어주었고(그 당시 음악을 틀어놓은 숙소는 단 한 곳도 없었다), 얼음과 음료수를 가져다 주었고, 식전 술을, 그리고 밥을 (나도 모르게 도착한 후 음식 이야기를 하다가 쌀밥 타령을 했는데 그 날 저녁 메뉴는 밥이었다) 포함한 저녁식사를 차려주었다. 천장에 매달려있는 신발을 포함해서 순례자들이 남긴, 혹은 다시 찾아와 그녀에게 주었던 볼품없는 선물들이 알베르게에 가득했다. 그녀는 딸과도 그리고 어머니와도 사이가 좋지 않았고, 모국 오스트리아를 떠난지는 꽤 오래되었고, 왕년에 괜찮은 탱고 댄서였지만 나이가 많으니 잘 생각해보라는 코치의 말을 받아들인, 무뚝뚝하면서 강인한, 그러나 위층의 발소리가 얇은 간이 마룻바닥을 통해 아래층에 울려서 순례자들의 잠을 방해할까봐 조심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녀는 까미노를 두 번 걷고 난 후에 이 길이 에너지로 가득하다는 확신과 함께 이 알베르게를 시작했고, 유명한 도시 바로 앞이라 찾아오는 사람이 별로 없는데도, 그리고 겨울에는 일주일 동안 찾아오는 순례자를 손으로 꼽을 정도임에도 그들을 위해 겨울에도 한달을 제외하고는 계속 이곳을 지켰고, 자동차 없이 오킬로 미터를 걸어가서 장을 보고, 동네 사람들의 쑥덕거림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세가지 언어를 말하고 다섯가지 언어를 이해할 수 있어서 위기에 처한 순례자를 잘 돌볼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자랑이라기 보다 다행스럽게 여기는, 약하지 않지만 아직 방황하는 50대의 호스피탈리에이다.


내가 본 호스피탈리에 중 가장 연로한 분은 프랑스의 미라도에서 보았다. (숙소 이름도 그녀 이름도 불분명하다) 70세가 넘어 보이는, 그렇지 않다면 적어도 그 만큼의 고생은 이미 다 해버린 그녀는 불어 외에는 한마디도 할 줄 몰랐고, 저녁식사하라는 말 대신 먐먐이라고 당신이 말하고 나서 그것이 그토록 우스운지 껄껄대는 웃음을 멈출줄 몰랐다. 침대는 단 네 개 뿐이어서 가득 차봤자 그녀를 포함해서 다섯명이 한계였고, 우리 다섯명은 그녀가 꺼내온 라벨이 분명치 않은 알마냑과 함께 저녁식사를 시작했다. 그녀는 식사전에 울트레이아 노래를 불러제꼈는데, 난 그녀가 술을 손에 잡는 것 만으로도 취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미 한잔 걸쳤거나. 그러나 허름한 집에서 술취한 노파가 만든 것이라고는 믿겨지지 않는 음식들로 저녁을 먹었다. 사실 그 집은 보면 볼수록 아늑했고, 그녀는 술에 취한 것도 아니었다. 식사 후에는 연도별로 정리된 방명록에서 몇 번 뒤적이지도 않고 일본인과 중국인의 글을 가리키면서 나에게 우리말로 꼭 글을 써달라고 부탁했다. 이제 다음 순례자들에게는 한글로 쓴 내 글을 보여주면서 자랑하리라. 액자와 편지와 엽서를 우리 넷에게 끊임없이 보여주며 자랑하고 그러다 갑자기 감정이 복받치는 그녀를 보자, 그녀의 젊은시절 행복했던 모습과, 노후에 이 일을 시작하기 전에 함께했을 외로움이 눈에 선했다. 그 다음에 이 일로 인해 얼마나 행복해 하고 있는지는 누가 봐도 알 수 있었다. 다음날 아침 푸짐한 아침식사 후 설거지를 하겠다고 나선 우리를 위엄있게 가로막았고, 내 얼굴을 잠시 응시하더나 갑자기 무언가 생각 난 듯 부엌으로 들어가 마른과일과 견과류를 손에 한웅큼 쥐고 나왔다. 그리고 주변에 마땅한 봉지가 없는지 두리번거리더니 마침 안에 빵이 들어있는 빵봉지에서 빵을 끄집어내고 거기에 손에 있는 것을 쏟아 넣고, 역시 먐먐 이라고 말하고 역시 껄걸 웃었다. 그리고 우리를 배웅하기 위해 당신이 소중히 여기는 것이 분명한 오래된 지팡이를 들고, 마을 교회 앞까지 같이 걸어간 후에 한명씩 꼬옥 껴안았다. 내가 걸어가는 동안 그녀는 뒤에서 울트레이아 노래를 이번에는 아침 공기에 취해 노래한다. 한다리는 절고 왠만한 농부보다 두툼한 하박과 보통 남정네보다 굵은 손가락 사이로 얼굴을 가리려는 머리털 몇 올을 끊임없이 쓸어올리면서 쉽지 않았던 옛날을 서운해하거나 자랑하지 않고, 이 길을 한번 걸은 다음에, 그녀가 걸었던 길을 걷는 우리들에게 애정을 나누어 주고 있었다. 가끔은 예의없는 젊은이들과 너무 가벼운 기부금통에 실망하기도 하겠지만, 아마 굵은 팔뚝을 한번 내저으며 힘들고 지친 순례자들은 그래도 돼라고 스스로 위로하며 오후 네시 반이 되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큰 개 두 마리와 함께. 이것이 그녀가 미라도에서 사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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