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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호성 May 14. 2019

교토 음주 여행

십수년 전 군생활을 같이 했던 동기와 교토 음주 여행에 나선다.



#첫날 점심 - 가츠쿠라 돈까스


산토리 맥주공장 견학을 세시에 예약해 두었다. 이 시간에 맞추려고 교토역까지 정신없이 이동했는데, 공장이 있는 나가오카쿄역행 기차 시간까지 사십분 못되게 여유가 생겼다. 그 사이 교토 이세탄 11층 식당가 돈까스집 "가츠쿠라"에서 점심을 먹었다. 아지후라이(전갱이튀김)와 돈까스를 시켜서 나눠먹었다. 제법 맛이좋았고 특히 튀김옷이  바삭하면서도 거칠지 않게 씹히는게 마음에 들었다. 돈까스집 사장을 해봤던 P가 알려주기를, 이렇게 튀김옷을 입히려면 (튀김꽃이 핀다고 표현했다) 반죽하는데 체중을 실어야 한단다.





#첫날 오후 - 산토리 공장


견학은 꽤 유익했다. 공장을 이곳에 지은 이유는 물이 깨끗해서라고 한다. 맥아도 씹어보았고 홉 냄새도 맡아보았다. 안내원이 이리저리 데리고 다니면서, 담금, 발효, 정제, 포장 등 라인을 설명해 주었다. 포장 과정이 생각보다 인상적이었는데, 각 캔의 중량을 재고, 24개들이 박스의 중량도 확인한다. 중량 미달 맥주라면, 그것을 마셔보는 관능검사를 할 것인가 아니면 그냥 버릴까. 그 검사자가 술꾼이라면, 불량이 났을 때 근무시간에 한 잔 할 수 있어서 좋아할까 아니면 불량 맥주라서 싫어할까.


돌아오는 길에 엄청낳게 쌓여있는 캔맥주 박스와 생맥주통을 보니 약간 겸손했졌다. 술꽤나 한다고 거들먹거리는 놈의 콧대를 눌러주려고 죽자살자 마신들, 실은 먼지만큼도 마시지 못하는 것이다.


견학 막바지에 맥주 세 잔을 준다. 프리미엄 몰츠, 카미가와(신의거품), 마스터스드림. 역시 프리미엄 몰츠가 최고다.






#첫날 저녁 전, 둘째날 아침, 셋째날 아침 -카페 코나야


삼일동안 이곳 카페를 세번 들렀다. 첫날 저녁 여섯시 임박해서, 둘째날 아침, 셋째날 아침. 사이폰으로 커피를 내리고, 아이스커피는 막 내린 커피를 셰이커로 얼음과 함께 흔들어서 만든다. 오래된 가옥을 개조했고, 편안한 책상 높이의 길다란 바를 두고있다. 블렌드 커피 값은 오백엔도 안하고, 아침에 가면 샐러드와 계란, 크라상(아니면 토스트)을 커피에 곁들여 육백엔에 판다. 빵도, 생일케익도 직접 만든다. 집 근처에 있었다면 매일 들렀을테고, 가끔은 출근하지 않고 숨어있다가 점심에 이곳에서 파는 카레에 맥주한잔 한 뒤, 주인이 눈치주면 오후 두시쯤  집으로 돌아가면서, 그 날이 애초부터 달력에 없었던척 하고 싶은 날에 어울리는 장소, 낮의 아지트로 삼고 싶은 곳이다.   





#첫날 저녁, 둘째날 저녁 - 카페 위위


카페라고는 하지만, 커피하고는 거리가 멀다. 사케, 소주, 맥주, 와인, 칵테일, 술은 다 있다. 사케는 와카야먀 등 3종, 소주는 오키나와 등 2종, 맥주는 기린 이치반시보리, 와인은 그때그때 다르고, 칵테일은 오로라빛 나거나 불이 확 피워오르는 것은 못하지만 재료만 있으면 뭐든 만들어 준다. 실용적인 술꾼이 원하는 모든 것이 있다.  


음식도 제법이다. 지난 겨울에는 오뎅을 한솥 끓여놓고 팔았는데, 어찌나 맛있었던지 하룻밤에 열다섯 조각씩 이틀을 먹었다. 이번에는 간장계란, 파절임, 스테이크, 참치파스타(세베제?파스트라고 한다)를 만들어주었다. 음식 하나 시키면 미안할정도로 부지런히 움직이고, 땀도 뻘뻘흘리고, 요리시간도 한참이나 걸려서 약간 미안한데, 그래서 그런지 더욱 맛있다.


음식을 내주고, 바를 가운데 두고 마주서서 까스불의 화기를 달래며 드와스를 계속 찔끔거리는 주인 아키짱을 보고있으면, 딱 잡히는 것은 아니지만 뭔가를 느끼게 된다. 올때마다 둘도 없는 친구처럼 대해주고, 손님이 없는 날이 많지만 별로 개의치 않고, 워낙 좁은 곳이라 어수선해 보이지만 하나씩 뜯어보면 모두 정돈되어 있고, 주방도 화장실도 항상 깨끗하고, 노골적인 농담도 잘 받아주고 잘 하고, 문닫는 시간인 두시 넘어도 개의치 않고, 숙취해소제든 위장약이든 하나 건네면, 소용없어 '기분다케'(기분 뿐이야)라고 하면서도 우리와 함께 그 자리에서 입에 털어넣고, 동네사람들 하나하나를 잘 알면서 험담도 칭찬도 하지 않는다. 대책없이 프랑스로 떠나서 시골 식당에서 삼년 동안 일했다고 한다. 가끔씩 취해서 불어좀 해보라고 추켜세우면 나름 멋들어지게 혀를 굴리는대 아마 '아 이녀석들 귀찮게 하네. 하지만 오늘도 취했으니까' 정도 의미 아닐까. 술집주인이 매일매일 이렇게 마셔도 괜찮은걸까 싶을 정도로 많이 마시지만, 몇 달에 한번씩 찾아오는 나에게 대거리를 해주려고 이틀동안만 과해지는거라 믿는다. 언제만나도 기분 좋고, 같이 마셔주기만 해도 위로가 되는 술집 주인. 이곳이 나의 심야식당이고 그가 나의 마스터이다.   





#둘째날 오전 - 가모가와 산책


교토를 관통하는 강 가모가와가 아니라면, 교토를 이만큼 좋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조깅하는 사람, 한가한 노인네, 점심먹으러 나온 회사원 등, 이러저러한 사람들을 보기만 해도 여유가 느껴진다. 강바닥이 훤히 보일만큼 물이 깨끗하고, 큰  물고기도 가끔 눈에 띈다. 이 날은 왜가리인지가 날개를 말리고 있는 모습도 보았다. 저 멀리 산을 바라보면서 여기 강둑을 걷고 있는 한, 뭐든 괜찮아질거라는 느낌이다. 이 강을 따라 쭉 걸으면, 여기 교토에서 한번 살아보고 싶어진다.




#둘째날 점심 전 - 재즈 스팟 야마토야


가모가와를 걸어서 재즈 스팟 야마토야에 왔다. 한시간 넘게 강변을 걷고 난 뒤, 칼피스 한 잔. 여름 초입에 먹는 그 해 첫 칼피스는 정말 기분좋다. 그리고 빌에반스와 듀크엘링턴을 들었다. 자동차 여행에 지친 듀크에게 누가 칼피스를 한잔 대접해주었으면, 기가막힌 스탠다드 재즈 명곡이 하나 나오지 않았을까. 시원하게 시작하고 달착지근하게 끝나는.




#둘째날 점심 - 우 뗌 뻬르듀(Au Temps Perdu)


맑디맑은 시라카와 천 앞에 자리잡은 레스토랑. 처음 교토에 왔을 때, 시라카와를 산책하다 우연히 발견한 여기 식당 실외를 혼자 독차지하고 샤도네를 한잔 마신 기억이 있는데, 그 기억에서 시간만 지워져있다. 잠깐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몇 시간 동안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가만히 앉아서 일부러 넋을 잃기 좋은 곳. 점심 세트는 음료를 포함해서 1800엔이었는데, 평소 접하기 힘든 프랑스음식이 나왔다. 나쁘지 않았지만 숙취가 남은 상태에서 고기와 연어를 먹고 있자니, 뼈다귀해장국이 생각나는건 어쩔 수 없다. 우아하지 못하게.  




#둘째날 오후 - 코다지


도요도미 히데요시의 부인이 남편을 위해 만든 절. 내력은 꺼림찍하지만 사람도 많지 않고, 정원, 돌 정원, 대나무길까지 제법 조화롭게 꾸며져 있다. 경사면에 자리잡고 있어서 전망도 괜찮다. 한바퀴 돌고나서 오차야(찻집)에서  마차를 맛본다.  




#둘째날 늦은 오후 - 사케테이스팅

에어비엔비를 통해서 사케테이스팅 코스를 예약했는데, 술집이 아니라 콘도뮤지엄이라는 도자기박물관에서 했다. 여주인이 삼대에 걸친 이곳 도자기 작가에 대해서 설명해주는데, 제법 자부심을 갖고 말해주지만, 과거 일본의 도자기 제작 기술은 변변치 못해서 우리 선조를 납치해간 사실은 모르고 있나보다.


아무튼 박물관 한쪽 구석에 기대기 좋은 넓직한 바가 있는 것은 참 마음에 든다. 후시미 지역 사케의 준마이, 준마이 긴죠, 준마이 다이긴죠, 나마자케 등을 마셨다. 우리 두명만이 넓고 긴 바를 차지하고, 기모노를 입은 여주인이 세심하게 따라주는 술을 마시고 있자니, 귀빈이 된 기분이다.  




#둘째날 저녁 전 - 사케 테이스팅 바 소소구

위위 카페에 가기 전 잠시 들렀다. 숙소 밑에층이라 가봤는데, 그럭저럭. 잠깐 마시고 나니 오만원. 술집을 하고 싶어하는 P와 객단가 얘기만 객쩍게 나눴다.  




#셋째날 점심 - 야마자키 증류소


산토리 위스키의 야마자키 증류소. 삼사십분 정도 박물관을 들러본다. 인상주의 화가 전시회에 가도 손뻗으면 닿을 거리에 그림이 있지만, 그 그림을 떼어가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그런데 이곳 공장에서는 나도 모르게 술병으로 손이 갈 것만 같았고, 이를 익히 예상한듯 방범카메라 작동중이라는 글씨가 여기저기 붙어있다.  


막바지에는 돈내고 시음하는 곳에서 히비키 30년, 야마지키 25년, 하쿠슈 25년을 각 15ml씩 마셨다. 도쿄에 있는 산토리 위스키바 히비야에 가도 이건 못마신다. 여기서도 1인당 딱 1잔만 판다. 여행 막바지가 씁쓸하거나 아쉽지 않았던 것은 전적으로 이 위스키들 덕분이다.  


매번 혼자 다녀오던 교토에 P와 함께 가니 같은 곳도 다르게 느껴졌고, 더 재밌었다.

 

이로서 체중이 1kg 늘었고, 음주인으로서 한 단계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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